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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히브리어 성경 중 하나인 ‘코덱스 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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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사람이 “영국아, 이리 좀 와 봐!”하고 부르면 대답하기를 “com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국아, 이리 잠시 좀 와 볼래”하고 부르면 “네 곧 가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한다.
어떤 차이가 날까? 영국에 갓 도착한 한국 아이에게 “한국아 이리 좀 와 볼래?”하고 부르면 틀림이 없이 “I Go”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혼선이 바로 인간은 언어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증거이다.
우리의 삶과 생각을 투영하는 언어
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민족에 대해서 말하기를 공동체의 특성이 강한 나라라고 했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 말에 ‘우리’라는 말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볼 때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부분에서도 ‘우리’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별 저항감 없이 ‘우리 남편’ 혹은 ‘우리 아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서양인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이러한 언어의 실제적인 행동으로 보여 준 예가 바로 IMF시절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국난을 극복한 것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한국 민족이 가지는 언어의 힘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의 언어 속에 그 사람의 생각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평소에는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이 생각을 축적하고 기억하는 창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디지털 시대를 겪어오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 확장자 명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며 살아왔다. 확장자 명에 따라 저장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는 관계와 공감을 중시하고
생명을 살리는 제사의 언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신약과 구약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아무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성경이 쓰여진 본래의 언어는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졌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 두 언어는 각기 특징을 가지고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 대한 대표성을 간직하고 있다.
구약 성경이 쓰여진 히브리어는 흔히 관계를 중시하는 생명의 언어라고 한다.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이 이어지고 또 끊어진 관계를 이어가는 인간 창조와 타락에 관한 이야기,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과 집단들의 모임이 족보 형태로 나타나며 세대와 세대 간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되고 이어가게 되는지 각 가계의 영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장자권인 것이다.
이런 끈끈한 생명의 관계를 이어져 가는 피와 생명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 구약성경이다.
헬라어는 분석적이고 냉철한 심판의 언어
당시 세계의 정복을 꿈꾸며 막대한 자금을 준비했던 마케도니아의 빌립공은 그의 아들 알렉산더를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수학하게 하여 왕자의 수업을 받게 한 것에서 부터 시작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왕자의 수업을 마친 알렉산더는 30세에 칼을 빼 들고 세계를 정복하는 말을 몰았고 ‘세계 헬라화’라는 헬라 문화 전도자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올림푸스 산에서 벌거 벗고 운동을 하는 신들의 향연을 주제로 문화의 꽃을 피운 헬라 문화를 자신이 피로 정복한 땅에서 만개시키고 싶어했다. 알렉산더는 바람과 같이 당시의 세계를 휩쓸어 버렸지만 그가 극복하고자 했던 육신의 불꽃은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탓인지 하나님의 콧김으로 금방 꺼지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언어로 세계를 정복하는 길을 연 것이다.
헬라어는 감정도 쪼개어 표현을 하고 시간도 나누어 분석을 한다. 그래서 시간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과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섭리의 시간으로 나누었다.
이 언어 위에 또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소리이다.
이 소리는 광야에서 사람들의 죄를 위해 죽어가던 희생의 제물들이 남긴 외마디의 비명이었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희생 당하시는 예수님의 희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 소리를 헬라어 위에 입혀서 신약으로 만들어 내신 것이다.
언어의 길 위에 선 바울
세상의 역사는 알렉산더를 기억하지만 우리는 30세에 공생애를 시작으로 많은 삶의 본을 직접 보여 주시고 33세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온 몸의 피와 땀을 흘려 주신 예수님의 복음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복음의 소리를 헬라어에 입히셨을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이 복음을 로마가 닦아 놓은 길 위에 올려 놓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이 된 사도 바울에게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을 들려 주시고 세계 언어의 통일을 이룬 헬라어로 로마가 닦아 놓은 길 위에 서게 하신 것이다. 이를 본다면 복음은 히브리어로 출발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헬라어로 표현하게 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세상의 힘에 의해 압제와 고통을 당하는 모든 영혼들을 로마의 길을 빌려 찾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완벽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면서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히브리어로 주셨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어를 창조의 언어로 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보다는 자신들의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살다가 결국은 이방인의 포로가 되어 이방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마침내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풀어 주시며 명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라는 것이다.
‘우리 언어’ 쓰는 차세대 지도자 양육
이들은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며 깨달은 것이 바로 하나님이 창조의 언어로 주신 히브리어의 정신과 의미를 상실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수문 앞 광장에서 성경을 읽으며 회개하고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원했을 때 모든 백성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출세를 위해 당시의 세계 공용어인 아람어 만을 사용하며 히브리어를 소홀히 하였고 심지어는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들을 강제로 이혼시키면서 강력한 신앙개혁을 추진했다. 히브리어 회복 운동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정체성과 신앙을 회복하려 했던 것이다.
이제 어쩌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신앙의 영성을 회복하고 세계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는 우리 민족교회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도 우리의 언어로 복음을 표현할 수 있는 차세대의 지도자들을 양육하여 번영신학에 물든 한국교회를 구조해 낼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병기 목사
런던영광교회 담임
revbkah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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