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옌지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매점에 들르면 한국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 있는 세계적인 환전소 토머스쿡의 외환시세표에는 한국 원화를 가리키는 ‘KR’이 태극기와 함께 표시돼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공항 환전소에서도 원화는 미국 달러나 일본 엔화처럼 언제든지 환전이 가능하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원화의 국제유통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원화의 국제유통 규모가 지난 85년 이후 엔화 강세기에 일본 돈이 미국 하와이에서 유통되던 것에 견줄 만큼은 되지 않지만, 2000년 이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통화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97년 외환위기 때 쓰레기 취급을 받던 것과는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금융권에서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를 구축하고 한국 기업의 글로벌화를 강화하기 위해 원화의 국제화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잇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이 원화를 해외에 내보낸(수출) 규모는 2002년 514억원, 2003년 594억원, 2004년 1,142억원으로 늘어났으며 지난해에는 1,200억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원화 수입도 2002년 43억원, 2003년 72억원, 2004년 277억원, 지난해 350억원(추정)으로 급증 추세에 있다. 변재영 한은 외환기획팀장은 “2002년부터 원화 수출입이 허용되면서 해외에서 유통되는 원화 규모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원화의 국제 수요가 크게 늘면서 중국은 올해부터 현지에서 원화를 위안화로 환전하도록 허용했으며 동남아·몽골 등지에서는 원화가 상당량 유통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열풍으로 일본·홍콩 등에서도 원화의 인기가 올라가 아시아에서는 사실상 원화가 국제통화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제통화로서의 원화의 위상은 미약한 게 현실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비해 원화의 위상은 아직 부족하다”면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원화를 국제통화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화의 국제화를 위해 해외에서 원화 통화관리 능력과 위조지폐 문제 등 전문성을 함께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