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Great Russell Street, WC1B 3DG 전화번호 : (020)7323-8299 개관시간 : Great court 일~수 9:00~18:00, 목~토 9:00~23:00 갤러리 토~수 10:00~17:30, 목~금 10:00~20:30 입장료 : 무료 휴무일 : 12월 24, 25, 26일, 1월 1일, Good Friday웹사이트 : http://www.thebritishmuseum.ac.uk 이메일 : admin@britishmuseum.ecircle-ag.com 가는 길 : 지하철 Central, Piccadilly Line Holborn역, Central, Northern Line Tottenham Court Rd역, Northern Line Goodge St.역, Piccadilly Line Russell Sq.역버스 7, 8, 10, 19, 22b, 24, 25
연간 전 세계에서 약 500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는 대영 박물관은 런던에서 가장 많은 입장객을 맞이하는 최고의 관광 명소다. 의사이자, 박물학자이고 여행가이기도 했던 한스 슬론 경Sir Hans Sloane(1660~1753)의 유물이 국가에 기증되자 이때부터 이 유물들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해졌고 처음으로 박물관 설립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한스 슬론은 첼시의 식물원 건립에도 관여했던 지식인이었다. 이후 의회의 고문서, 옥스퍼드 백작의 각종 문서들 그리고 1756년, 튜더 왕조 이래 수집된 12,000권의 장서 등 왕립 도서관 자료를 기증한 조지 2세의 후원에 힘입어 1759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박물관이 바로 대영 박물관이다.
루브르나 바티칸이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미술품 위주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면 이에 비해 대영 박물관은 문명사를 조감해 볼 수 있는 유물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잡동사니를 모아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20세기 말에 출현한 신용카드 같은 것도 소장품 목록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동서양 각 지역의 선사 시대 유물부터 최근의 생활상을 돌아볼 수 있는 유물까지 전시하는 대영 박물관이 나름대로 매력적인 곳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 복권을 발매해 모은 기금 21,000파운드로 몬태규 하우스를 구입해 박물관으로 사용했다. 17세기 말에 지어진 이 건물은 개보수되어 1759년 문을 열었다. 당시 제작된 판화를 보면, 박물관 입장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제한되어 있었고 박물관이 개관되었다는 사실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을 보면 박제 기린, 초상화, 화석, 필사본, 건조한 식물 표본들, 대리석 흉상, 동전, 도자기 등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후 유물은 개인 소장가들의 기증과 유물 구입 정책 등에 의해 날이 갈수록 확대되어 간다. 1762년 조지 3세의 기증(1642~1660년 사이 내란과 공화국 시절 발행된 각종 정치 팸플릿), 1779년의 데이빗 개릭 문고의 기증(초판본을 포함한 1,000편의 희곡 대본), 윌리엄 해밀턴 경의 고대 도자기 구입, 고대 그리스 로마 및 이집트의 각종 유물 구입이 이어졌다. 1804년의 타운리 대리석 작품 소장품 구입, 35,000파운드에 구입한 엘긴 마블, 알렉산드리아 조약에 의해 영국으로 넘어온 로제타 스톤 등이 모두 19세기 초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풍부하게 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각종 격문과 유물들도 이 당시 들어온다.
현재의 건물은 처음 건물이었던 몬태규 하우스를 허물고 1844년에 그 자리에 기둥으로 정면을 장식한 네오 클래식 양식으로 건축가 로버트 스머크Robert Smirke가 다시 지은 것이다. 1857년에는 도서 열람실이 증축되었고 1914년에는 에드워드 3세 관이, 1938년에는 그리스 관이 각각 증축된다. 이런 증축 공사는 이후에도 이어져 1978년과 1991년에도 이어졌으며 21세기 밀레니엄을 맞이해 노만 포스터 경이 설계한 그레이트 코트Great Court가 문을 열기에 이른다.
그 사이 유물들도 소장처가 바뀌는 등 변화가 있었다. 자연사 유물들은 19세기 말에 사우스 켄징턴으로 이전했고 신문 등 언론 자료는 콜린데일로, 그리고 인류학 자료는 1970년에 인류학 박물관으로 각각 옮겨갔다. 장서 역시 세인트 판크래스로 이전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