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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11 권력의 중추, 옥스브리지
코리안위클리  2009/02/25, 22:52:33   
▲ 18세기에도 대학은 여전히 모든 계급의 집합소였지만 점차 부자들의 독점 현상이 나타났다. 옥스브리지는 다양한 성격의 독립적인 컬리지들이 느슨하게 연합된 컬리지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옥스퍼드 베일리얼 컬리지(왼쪽)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컬리지 전경.

신분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사회 변화 따라 대학도 변화
전문지식 가르치고 각 부문 지도층 배양 역할 담당

19세기까지 영국 사회의 엘리트를 키워낸 기관은 이튼과 해로로 대표되는 사립학교와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이었다. 엘리트 형성에는 사실 사립학교가 더 중요했는데 엘리트 대부분이 사립학교 출신이었지만 대학을 나온 경우는 그 중에서도 일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가장 돈 많은 사람들과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게다가 고등교육 없이도 정치와 언론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 진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다고하여 곧 사회적 신분이 낮다는 뜻은 아니었다. 대학은 그 자체 엘리트 형성의 도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1820년대까지 600여 년 동안 잉글랜드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두 대학만이 존재했는데 이들 대학이 지적 문화나 과학적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19세기 초만 해도 벤담·맬서스·리카도·패러데이·다윈 등의 중요한 지식인들 가운데 대학교수는 아무도 없었으며 1826년에 설립된 런던대학에서나 몇 안 되는 과학자들이 발견될 뿐이다.
그러나 사회의 세속화·전문화 현상과 함께 과학교육 및 전문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근대적 대학체제에 대한 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엘리트 대학에서 경시되던 과학·기술교육을 위한 ‘민립civic’대학들이 산업자본가들의 출자를 통해 지방도시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압력 하에 옥스퍼드·케임브리지도 중세 대학에서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대학의 변화는 신분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나아가는 전반적인 사회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었다. 즉 전문지식에 대한 사회의 요구와 능력에 의한 출세라는 원칙에 부응하는 가운데 전문지식을 가르치고 각 부문의 지도층을 배양하는 기관으로 변모한 것이다. 1854년에 도입되어 확대 적용된 ‘경쟁시험을 통한 공무원 임용제도’는 영국 사회가 전문화와 능력주의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945년에도 영국에는 스코틀랜드의 5개 대학을 포함하여 모두 22개 대학이 있었지만 1960년대 이후 평등주의의 바람이 몰아치면서 그 수가 더 늘고 학생들의 출신 배경도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권력의 중추에는 여전히 옥스퍼드·케임브리지가 자리 잡고 있다.

옥스브리지의 권위는 6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부침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취 없이는 영국 문화를 말할 수 없다.


1990년대 초반에도 보수당 하원의원 370명 가운데 무려 166명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이었다. 또 현재 영국 행정부 고위 관료의 절반 이상이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이며, 특히 가장 특권적인 재무부와 외무부는 거의 두 대학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아이작 뉴턴이 가르쳤으며 찰스 다윈이 지루하게 빈둥거리며 허송세월한 곳, 또 컴퓨터와 인공지능 원리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되는 찰스 배비지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컴퓨터의 시조로 간주되는 앨런 튜링 그리고 DNA의 나선형 구조를 발견한 크릭과 왓슨이 활동한 곳이 바로 케임브리지다.
요즘에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유사한 실리콘 펜Fen-케임브리지가 늪지인 점을 감안하여 붙여진 별칭-이 형성되어 있다.
케임브리지가 옥스퍼드에 비해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면 옥스퍼드는 애틀리·이든·맥밀런·더글러스 흄·윌슨·히스·대처·블레어 등의 20세기 전·현직 총리 대부분을 배출했다.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의 모교는 옥스퍼드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여자대학인 소머빌 칼리지인데 이 학교는 또한 인도 총리를 역임한 인디라 간디의 모교이기도 하다. 대처 총리가 첫 내각을 구성했을 때 22명의 각료 가운데 9명이 케임브리지 출신이었고 블레어의 노동당이 1997년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 노동당 의원의 6분의 1이 옥스퍼드 졸업생들이었다.
1980년대에 전후 경제 부흥의 효과가 사라지고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여 영국 경제의 상대적 쇠퇴가 분명해지자 그 책임을 영국 교육제도에 돌리려는 주장에 제기되었다. 전통적 엘리트의 형성과 대학의 관계가 집중 분석되었고 더불어 대학이 교육의 기회를 확대했는지 여부와 영국 교육이 지닌 고질적인 서열제의 본질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이어졌다.
옥스브리지의 권위는 6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부침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취 없이는 영국 문화를 말할 수 없다. 옥스브리지 출신들은 영국을 통치하고 운영해 왔으며 고급영어와 수준 높은 문화를 전파시겼을 뿐만 아니라 영국 문화를 다채롭고 풍부하게 만들어 왔다. 그 때문에 못 말리는 급진 좌파였던 버트런드 러셀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수행하는 사회적이며 정신적인 엘리트 기능만은 언제나 옹호했다.
“이 두 대학은 특히 일류 인간에게 적합하다. 하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미래에 대한 보장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이류 인간에게는 해가 될 뿐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경험도 교육의 평등주의와 능력주의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임을 보여준다. 사회적 정의와 효율성을 다함께 증진시키는 절묘한 방법이 진정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때 21세기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자명한 것 같다.


필자 박지향(朴枝香) 교수는
1953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1978),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유럽사학 1985), 영국사학회 연구이사
현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저서: ‘영국사’‘제국주의’‘슬픈 아일랜드’‘일그러진 근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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