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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얼 디포는 영국 소설의 창시자였을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연합왕국을 면밀히 관찰하고 명백한 통일국가의 비전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디포는 <여행기>에서 스노도니아 산맥을 일컬어 “한니발조차 군대를 이끌고 넘어가기가 불가능함을 알았을 것”이라는 표현으로 더욱 생동감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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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풍광과 잉글랜드 역사를 찬양하는 애국적 서사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대니얼 디포(1660~1731)는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1660년 적당한 경제적 여력을 지닌 런던의 장로교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비국교도로 교육받았다. 그 후 사업을 시작하여 양말 제조업과 포도주 수입 등의 여러 사업에 손을 댔는데, 결과는 좋지 못하여 1692년 결국 파산하고는 직종에서 쫓겨났다. 일생에 걸쳐 위대한 상인을 칭송하고 상업의 영광을 노래했지만 그러한 영광을 몸소 실현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 후 디포는 저술로 일곱 명의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다. 상인보다는 저술가로서 운이 따랐는지 그는 영국 소설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안겨준 여러 편의 소설을 썼으며, 저널리스트로도 필명을 날렸다.
디포는 60대의 비교적 평온한 노년기에 <로빈슨 크루소> <몰 플랜더스> <록사나>등의 소설을 집필하여 소설이라는 장르를 창조해낸 선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았지만 영정의 대부분을 저널리즘, 선전, 정보수집 등에 쏟아 부은 것으로 평가된다. 말년에 또다시 소송 사건에 연루된 그는 쫓기는 몸으로 1731년에 사망했다.
1724~26년에 발간한 디포의 <대 브리튼 섬 전체를 경유한 여행기A Tour Through the Whole Island of Great Britain>(이하 <여행기>)는 일차적으로 당시 점증하던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안내서의 성격을 띠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애 말기에 이른 디포가 일생 동안 품어온 잉글랜드와 브리튼에 대한 비전을 실제 현상과 비교하며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기> 서문에 의하면 디포의 답사는 1722년에 이루어졌다.
1711년 디포는 브리튼 섬의 모든 ‘구석과 모퉁이’를 안 가본 데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평생 지리와 탐험에 관심을 기울였다. 디포는 아마도 제1권을 1722년에 써서 1723~24년에 부록을 첨가하고 편집했으며 제2권은 1724년에 제3권은 1725년 후반기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디포는 각 지역을 있는 그대로 공정하게 묘사하는 ‘겸손한 여행자’로서 각 지역의 “진실하고 공정한 묘사를 제공하는 것, 생산, 상업, 제조업 그리고 생산력을 가늠하는 것, 사람들의 행동거지와 매너를 보여주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규정한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단순히 장소들의 지리적 위치를 묘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힌다.
디포가 그리는 영국은 근대적 영국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개선되는’것을 핵심으로 제시한다. 디포가 품고 있던 브리튼의 이미지는 궁극적으로 잉글랜드의 이미지였다. 그는 잉글랜드와 그 밖의 지역을 구분하지만 잉글랜드에 의해 브리튼 섬 전체가 통일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지적한다. 한마디로 <여행기>는 자연 풍광을 포함하여 잉글랜드의 역사를 찬양하는 애국적 서사로 읽힐 수 있다.
디포는 누구보다도 먼저 영국의 풍광을 경제발전의 청사진으로 제시한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근대 국민국가의 초기 설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는 <여행기>의 독자들에게 브리튼 섬 전체를 포괄하는 통일국가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초상화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행기>의 기저에 흐르는 동기는 상업적이고 민족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전망 안에서 모든 국가 구성원은 하나가 된다. 물론 디포는 상인들의 역할을 누구 보다도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다른 국가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지적하기보다는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통일된 국민의 이상을 중시한다.
무엇보다도 <여행기>는 명백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데 이 작품은 현실의 영국이 아니라 ‘영국의 이상’을 펼쳐 보인다. 디포가 그리는 영국은 근대적 영국이며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 개선되는’ 것을 근대 잉글랜드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디포가 묘사하는 영국의 상업, 산업, 역사, 도시와 마을들, 대 영지와 장이 서는 읍들, 그 장엄함과 쇠락의 그림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은 당시의 영국을 비춰주는 거울이 아니라 미래에 구현될 ‘국가의 비전’이다. 즉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국가라는 잉글랜드의 모습이다.
<여행기>는 미화된 풍경으로서의 국가, 전체로서의 국가, 네트워크로서의 국가, 런던이라는 중심을 가진 원으로서의 국가를 제시하고 독자들 스스로를 그 국가와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응집력 강한 국민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여행기>는 무엇보다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성공적 통합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는 목표 하에 합병이 브리튼 전체를 위해 유익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집중한다. 좀더 깊숙이 들여다보자면 이는 곧 디포 자신이 그 설립에 깊이 관여했던 ‘연합왕국’의 미래에 대한 이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은 ‘잉글랜드 중심주의’라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디포는 <여행기>가 출간된 지 약 20년 후에 스코틀랜드가 또다시 잉글랜드 왕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리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1745년 이후 두 나라의 통합은 <여행기> 저술 당시의 제한적 전망을 벗어나 그가 제시한 진정한 통합의 이상으로 다가갔으며 19세기에 이르러 연합왕국은 ‘유럽 국가들 절반의 여주인’이 되었다. 그 점에서 디포는 브리튼의 당시 모습이 아니라 1세기 후에나 구현될 국가를 조망하는 예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주창한 연합왕국의 효과는 그의 진단대로 상업적 이해관계와 개신교도로서의 정체성에 성패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 연합왕국의 한계 역시 존재한다. 경제적 효과가 사라지고 종교가 더 이상 국민 정체성의 주용한 요소로 기능하지 못할 때 대 브리튼의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브리튼 섬 전체를 아우르는 국민적 통합이라는 디포의 꿈은 21세기에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 박지향(朴枝香) 교수는
1953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1978),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유럽사학 1985), 영국사학회 연구이사
현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저서: ‘영국사’‘제국주의’‘슬픈 아일랜드’‘일그러진 근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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