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넷플릭스Neflex에서 방영된 하나의 드라마가 영국을, 아니 전 세계를 아주 강하게 때리며 (hard-hitting), 충격과 경이의 2025년 최고의 걸작을 선보였다”
이 문장이 최근 한 영국 일간지에 소개된 기사 제목이다. 소위 청소년 드라마가 이렇게 영국사회 전체에 끝없이 회자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넷플릭스 조회수에서도 방영 첫 주에 650만 명을 기록,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Adolescene, 즉 청소년 시절 혹은 사춘기 정도로 번역될 만하다. 영국 북부 조그만 동네에 살고 있는 13세 순박한 소년 제이미Jamie (오원 쿠퍼)가 같은 학교 동급생 여학생을 밤에 부엌칼로 살해한 사건을 두고 일어나는 이야기를 1시간씩 4부작(4 Episodes)으로 엮은 내용이다.
넷플릭스 등 동영상 영상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우연히 열차역에 비치된 무가지 메트로Metro신문의 뒷 표지에 나온 선전물에 실린 사진, 즉 강력하다 못해 눈이 시린 소년의 눈빛을 보고 관심을 갖고 넷플릭스를 한번 훑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며칠 전 골프 약속 1~2시간을 앞두고 TV를 틀기 시작했다.
첫 장면이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경찰들이 소년의 가정집 문을 부수며 습격하여 체포하는 장면인데, 첫 장면 부터 가히 압권이다. 골프 약속까지도 잊어먹고 몰입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중간 정도에서 끝을 내고 2부작 부터는 주로 밤 한가한 시간에 몰입하며 감상하였다.
처음 볼 때는 한글 Subtitle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영어로 설정해 놓고 듣다 보니, 범행동기에 대한 추적하는 장면에서 엄청나게 어려운 사전에도 안나오는 많은 단어들이 나와 애를 먹었다. 오랫동안 소년Jamie의 범행동기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다가 나중에 한글 자막이 나오는 것을 알게되어 전체를 다시보니 어느 정도 범행동기에 대한 윤곽을 겨우 잡은 셈이다. 알고보니 범행동기 등이 우리 현대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도 충격적이였다.
이 글에서 전체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할 의도는 없으나 대략적인 드라마의 흐름과 특히 감동을 주는 장면들만 소개하려고 한다.
1st Episode (사고 다음날)
첫 장면이 무장경찰 7~8명이 새벽 6시에 Jamie 집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자고 있는 전혀 영문 모르는 부모님을 밀치고 2층 자기 침대방에서 자고 있는 13세 소년을 끌고 가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 이후 Jamie를 경찰서 취조실에서 취조하는 장면들이 연속으로 나온다. 13세 순진무고한 소년이 민완형사의 취조 질문을 받고 옆에 아버지 에디밀러씨(스티븐 그레이엄)와 변호사를 두고 대답하는 모습들이 참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다.
1부의 마지막 장면은, 한밤의 지방도시 시가지 뒷구석에서 소년이 소녀를 쓰러뜨리고 칼로 찌르는 모습의 CCTV영상물을 취조실 좁은 방에서 5명 (Jamie, 아버지, 변호사, 수사담당형사 반장, 여형사)이 보게 되며 아버지의 얼굴이 이그러지기 시작한다. 형사 두 명도 방을 나가고 변호사도 자리를 뜨고,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 충격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고 아들도 얼굴을 돌리고 한동안 있다가 천천히 “D~a~d” 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자, 다시 “D~a~d”라고 불러도 아버지의 대답을 못들어 아들이 아버지 어깨에 손을 대자 아버지가 몸을 옆으로 피하는 모습. 그러다가 바로 아버지가 오열하며 아들을 끌어안고 울며 아들은 “I didn’t kill, I didn’t kill” 이라고 하는 장면. Jamie와 특히 아버지 에디밀러씨, 그리고 형사 경위(애슬리 월터즈)의 연기가 처절하다 못해 천역덕하다고나 할까.
2nd Episode (사고 3일째)
2부는 형사 경위와 여형사가 학교에 가서 Jamie의 범행동기와 살인무기인 Knife를 찾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고 피해자인 Katie와 Jamie의 관계를 조사하며 담임선생들을 만나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나로써는 이 기회가 영국의 중학교 학생들의 생활이나 학교에서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다른 흥미를 갖고 보게되었으며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제일 말 안듣는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란 선생님과 학생간에 전쟁터 같았다.
게다가 SNS를 통해 청소년들이 어른들 세계 못지 않게 남여 관계에 대해 서로 질시하고 놀리고 따돌림하고 질투하는 모습들이 참 재미있었다, 여기서 Incel이란 듣도보도 못한 단어, 80% 대 20% 법칙, 비자발적 독신주의자 등 소위 최근에 뜨고 있는 용어들이 마구 나오며 나는 그 단어를 Googling에서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2부의 마지막 장면도 참 인상적이었다. 배관공인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Katie의 살해현장에 가서 꽃을 헌화하는 장면이다. 소위 13세 소녀를 칼로 찔러죽인 13세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의 어려운 입장을 얼굴 연기로 보여주는데 어떻게하면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나 탄복할 만하였다. 게다가 그때 들려오는 영국 인기그룹 Stings의 “Fragile”이라는 노래가 어린 여학생들의 합창으로 나오는데, 가사 내용중에 거듭 불러지는 “How Fragile, we are” (우리 인생이란 얼마나 쉽게 부숴지고 무너지는 존재인가)라는 가사 내용이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으로 감동을 받았다.
3rd Episode (6개월 후)
3부는 Jamie가 수용된 소년원 훈련소에 젊은 여성 임상심리학자 (에린 도허티)가 방문하여 Jamie와 좁은 독방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하며 Jamie의 심리상태와 벙행동기를 조사하는 장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데 1시간이 지루할듯 생각되었으나 두 사람의 연기에 몰입되어 대화하는 문장하나하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하나의 큰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듯하였다. 중간에 신경이 예민해진 Jamie가 심리학자에게 고함을 지르고 물병을 던지기도 하며 또는 솔직한 본인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다시 침묵하는 모습,
결국 자기가 친구한테 따돌림을 당하고 죽은 Katie한테 도움을 주려고 다가갔으나, 오히려 더 망신을 당하면서 화가 났던 일들, 소위 아직 어른이 안된 어른같은 사춘기 소년의 눈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일면이 결국 어른들의 사랑 놀음과 다르지 않다는 듯한 형상들.
마지막 장면에서 바쁜 아버지로부터도 사랑을 못받고 친구들한테도 따돌림 당하고 마음에 둔 여자친구한테도 창피를 당한 우리의 주인공 Jamie가 젊은 여성 심리학자에게 “Do you like me?”를 읍소하듯이 물어보며 이번이 마지막 상담이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고함을 지르며 보안관으로부터 끌려나가는 장면.
Jamie가 끌려간 뒤,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를 심문한 여성 심리학자도 멍하니 앉아서 감정을 추스리며 눈물 몇 방울 흘리는 모습. 그러다가 서류를 챙겨서 나가는 모습 뒤에 상담실 테이블에 남겨진 먹다남은 샌드위치 반조각과 바깥 빗소리….
4th Episode (13개월뒤)
Jamie 아버지의 생일을 맞이하여, 아들을 소년원에 보낸 가족의 하루를 조명하는 내용이다. 아들의 사건으로 동네에서 고립되고 비난받는 가정이지만 오랫만에 가장인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마치 아무일 없는 듯 부인도 남편을 잔뜩 띄워주고 15살 딸도 아빠 기분을 맞춰 주는 즐거운 분위기였으나 동네깡패들이 살인자 아들을 둔 집이라며 차에 Paint를 뿌리고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생일 분위기가 깨지고 가족간 서로 싸우다가 다시 마음을 잡고 영화구경을 가기로 한다.
페인트를 지우는 재료를 사러 철물점에 가는 길에 또 쓸데 없이 옛날의 상처를 건들이는 점원과의 실랑이, 다시 아버지의 울분이 터지고 가족 모두 아버지 앞에서 펑펑 울다가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극장 가는 계획을 포기하고 집에서 DVD를 보기로 하고 침묵속에서 집으로 향하는 모습.
아버지 에디밀러씨가 집에 들어가서도 차량에 묻은 페인트를 지우며 깨진 가정을 생각하며 울먹이며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무심곁에 아들방에 들어가게 되고 13개월 전 집에서 체포될 때 모습 그대로인 방에서 아들을 소년원에 보낸 아버지의 아픈 마음에 목이 메이며 아들 책상에 놓여 있는 조그만 곰돌이를 침대 이불 속에 가지런히 놓고 살며시 덮어주며 꺼억꺼억 우는 모습, 결국 나도 이 장면에서 한동안 뜨거운 눈물을 에디밀러씨와 같이 흘리며 마지막 자막을 보고 컴퓨터를 껐다.
이 드라마는 출연자들의 뛰어난 연기와 한번에 흐르는 듯한 연출에서 느껴지는 몰입되는 현실감, 남성과 여성이란 양성세계에서 던져 놓는 사회적 메세지들이 어울려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특히 실제 나이 14세라는 주인공역의 오웬 쿠퍼는 이 작품이 첫 데뷰작이라는데 이렇게 천연스럽게 연기를 잘 하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아버지역의 스티븐 그레엄도 뛰어난 연기에 찬사를 받고 있으며 1시간 내내 좁은 소년원 상담실 공간에서 두 사람간의 대화로만 연기한 에린 도허티의 연기도 빛이 났다.
영상이 몰입감이 강하여 1부부터 잠깐 보다보면 4부 끝까지 보게 된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4시간의 투자가 전혀 아깝지 않을 경험을 선사할 듯하다. (넷플릿스를 구독하고 있는 분들은 “소년의 시간”으로 검색하면 시청할 수 있음)
글쓴이 : 조 동 식 재영칼럼니스트
약력 : 세계한인무역협회 런던지회 감사
현대중공업 본사 14 년, 런던지점 6년
영국 FASL공항시스템사 인천공항담당 영업부장
대전 KAIST대학 모바일하버 프로젝트 책임연구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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