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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cing Queen, ABBA Voyage, ABBA Arena, London ⓒ Johan Pers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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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동부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에 자리한 ABBA Arena에서 공연 중인 ABBA Voyage는 흔히 ‘홀로그램 콘서트’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프로젝트다. 디지털 아바타, 라이브 밴드, 전용 공연장, 관광 콘텐츠, 머천다이즈, 장기 상설 운영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음악 비즈니스 모델이다.
ABBA Voyage는 2022년 개막 이후 영국 경제에 약 20억 6천만 파운드 규모의 매출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발표됐다. 그래서 한국 공연계가 이 사례를 주목하고 한국의 전현직 아이돌 그룹을 대상으로 적용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ABBA Voyage의 성공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음악이다. ‘Dancing Queen’, ‘Mamma Mia’, ‘Waterloo’, ‘The Winner Takes It All’ 같은 곡들은 특정 팬덤을 넘어 세대 전체가 공유하는 문화적 기억에 가깝다. 관객은 새로운 이야기를 이해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저장된 음악적 순간을 다시 만나러 온다. 공연장은 단순한 관람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재경험하는 장소가 된다.
희소성 역시 중요한 요소다. 만약 ABBA가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하고 있다면 ABBA Voyage는 단순한 대체재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관객은 더 이상 전성기 시절의 ABBA를 볼 수 없다. 바로 이 불가능성이 공연의 가치를 만든다. 관객은 ‘가짜 ABBA’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만남을 경험하러 가는 것이다.
실제 공연을 본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기술보다 현장감이다. 그 중심에는 라이브 밴드가 있다. 무대 위에는 실제 연주자들이 존재하고 공연에 리듬과 에너지, 호흡을 부여한다. 디지털 아바타가 시각적 중심이라면 라이브 밴드는 공연의 심장이다. 덕분에 관객은 거대한 영상 상영이 아니라 실제 콘서트에 참석한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디지털 기술과 라이브 공연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춘 셈이다.
전용 공연장도 빼놓을 수 없다. ABBA Voyage는 일반 공연장에 장비를 설치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ABBA Arena 자체가 공연을 위해 설계됐다. 음향, 조명, 객석 시야, 관객 동선, 입장 경험, 머천다이즈 판매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상품으로 통합돼 있다. 관객은 티켓 한 장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경험을 소비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투어 공연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한국 공연계가 이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우리도 홀로그램 공연을 만들자’가 아니다. 진짜 교훈은 강력한 음악 IP를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 라이브 공연, 전용 공간, 관광 산업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만약 이 모델을 쇼핑몰 체험관이나 이벤트성 콘텐츠 수준으로 축소한다면 관객은 그것을 프리미엄 공연이 아니라 ‘신기한 영상 체험’ 정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공연장을 나오는 관객이 “기술은 좋네”라고 말하는 것보다 “진짜 콘서트를 본 것 같다”고 말해야 성공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델이 가능할까.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영상 기술과 콘서트 제작 역량, 팬덤 비즈니스 경험을 갖추고 있다. 진짜 과제는 IP와 사업 구조다.
가장 중요시되는 과제는 아티스트 선정이다. ABBA는 특정 팬층만의 그룹이 아니다. 중장년층의 추억이자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한 글로벌 문화 자산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확장성을 가진 아티스트가 필요하다. 단순히 팬덤 규모가 큰 그룹만으로는 부족하다. 여러 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음악적 기억이 있어야 한다. 현재 활동 중인 K-pop 그룹이라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실제 콘서트를 볼 수 있는데 왜 디지털 버전을 봐야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해체된 그룹, 원년 멤버 재결합이 어려운 팀, 무대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한 레전드 가수처럼 ‘다시는 볼 수 없는 공연’이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포지셔닝이다. ‘AI 콘서트’나 ‘홀로그램 공연’이라는 표현은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관객이 구매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다. 더 적절한 표현은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음악적 순간을 다시 만나는 공연”, 혹은 “한국 대중음악의 기억을 오늘의 무대로 되살리는 상설 공연”에 가까울 것이다.
ABBA Voyage는 가수를 복제한 공연이 아니다. 관객이 마음속에 간직했던 ABBA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든 프로젝트다. 한국형 모델 역시 디지털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음악, 추억, 공간, 팬덤, 관광을 하나의 경험으로 엮어야 한다.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떤 음악적 기억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공연 비즈니스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이다. ABBA Voyage는 런던에서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제 한국 공연계가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과연 어떤 기억을 공연으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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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창작 뮤지컬 ‘더 라스트맨’, 런던 진출의 교훈
영국 런던 오프웨스트엔드(Off-West End) 무대에 당찬 도전장을 내밀었던 한국 창작 1인 뮤지컬 <더 라스트맨(The Last Man)>이 현지 관객 동원에 난항을 겪으며 씁쓸한 과제를 남기고 있다.
폐막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평균 관객 점유율 20% 미만'이라는 관측은 아시아 창작 뮤지컬의 영미권 진출이 지닌 높은 벽을 여실히 보여준다. 공식적인 전체 실관객 점유율(Box Office)이 실시간으로 발표되지는 않으나, 현지 예매창 현황과 공연계 내부 동향을 종합하면 흥행 부진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파악된다. 한국에서는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호평받았던 이 작품이 런던 한복판에서 외면받은 원인으로는 복합적인 문제들이 지목되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문제는 공간이 주는 몰입감의 실패다. <더 라스트맨>은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반지하(Banjiha) 벙커에 고립된 생존자의 밀실 공포와 지독한 고독을 다루는 1인극이다. 그러나 공연이 올라간 서덕 플레이하우스 엘리펀트(Southwark Playhouse Elephant) 극장은 1인극의 폐쇄성을 살리기에는 310석으로 물리적인 규모가 컸다.
영국의 공연 리뷰 매체인 에브리씽 씨어터(Everything Theatre)는 “스마트폰이나 작은 화면에서 먹힐 법한 폐쇄공포와 갇혀있다는 느낌이 이 큰 공간에서는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며 극장 선택과 무대 연출의 괴리를 꼬집었다.
문화적 맥락의 차이 역시 흥행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 특유의 청년 고립이나 고독사 같은 기저의 묵직한 테마가 영국 관객들에게는 그저 개연성이 부족한 좀비 생존물로 비쳤다는 평가다. 코미디인지 진지한 스릴러인지 방향성을 알기 힘들다”며 아쉬움도 있었다.
현지 평단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절박한 이유나, 문 밖 좀비들로 인한 실질적인 위협(Stakes)이 객석까지 닿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한국에서 통했던 감정선이 현지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무엇보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영미권 공연 시장 특유의 단계적 진출(Step-by-step) 과정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웨스트엔드나 오프웨스트엔드에 새로운 창작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현지 배우 및 크리에이티브 팀과 함께하는 몇년에 걸친 리딩(Reading), 소규모 워크숍 및 쇼케이스를 거쳐 본공연으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대본을 수정하고 현지 관객의 반응을 테스트해야 하지만, <더 라스트맨>은 영국인 드라마터그가 참여한다는 이유로 현지화 테스트 베드를 거쳤다기엔 미흡한 상태로 비교적 큰 오프웨스트엔드 극장에서 한 달 이상의 공연을 바로 강행했다. 현지 시장에 대한 분석과 진입 전략이 다소 안일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 라스트맨>의 런던 진출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한국 창작 뮤지컬계에 유의미한 발자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번 흥행 부진은 한국에서의 성공 공식이 세계 무대에서도 그대로 통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 특히 런던과 뉴욕 같은 공연의 중심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장 분석과 현지화된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더 라스트맨>이 남긴 쓰라린 교훈이 향후 K-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위한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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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연계 : AI는 혁명이 아니라 진화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공연예술계의 불안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 공연산업 전문가 클리프 플루엣(Cliff Fluet)은 더 스테이지(The Stage) 기고문에서 ‘AI는 혁명이 아니라 진화’라고 주장했다. 공연예술은 인쇄술, 녹음, 방송, 인터넷을 모두 견뎌냈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확장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핵심은 낙관론이 아니다. ‘생존은 번영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중요하다. 폭풍이 한 번 지나가는 것이라면 버티면 된다. 하지만 폭풍이 머물러 새로운 기후가 된다면, 예술계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같은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5년 ‘인공지능-저작권 제도개선 협의체’를 출범시키며 AI 학습데이터, 창작물 저작권 등록 기준, 권리자와 개발사 간 협상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AI가 단순한 창작 도구를 넘어 저작권과 보상 체계 자체를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플루엣은 1990년대 인터넷 등장 당시 음악산업의 실패를 예로 든다. 업계는 막고, 금지하고, 소송하는 데 집중했지만 결국 디지털 유통의 주도권을 잃었다. 음악은 살아남았지만 산업 구조는 바뀌었다.
그는 AI도 예술의 본질보다 제작, 유통, 라이선스, 보상 방식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결국 공연예술계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를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가 아니다. AI는 이미 티켓 판매 알고리즘, 번역, 영상 복원, 홍보 문구 작성, 음향·영상 제작 과정 안에 들어와 있다. 중요한 것은 투명성, 출처 표시, 동의, 공정한 보상, 인간 창작자의 권리를 어떤 기준으로 세울 것인가다.
AI는 예술을 끝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노동 조건과 수익 구조는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공포도, 무조건적 환영도 아니다. 공연예술계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폭풍을 견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그 날씨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정해야 할 때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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