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지만 아이들에게 해 준 게 너무 없습니다. 장기라도 쓸모 있다면 주고 싶은데 제발 이식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검찰이 살인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죄수가 중병을 앓고 있는 아들에게 장기를 줄 수 있도록 형집행정지처분을 내렸다. 재소자 본인의 건강과 무관한 사유로 무기수에 대해 이런 결정이 내려지기는 사상 처음이다. 부산지검 공판부 이태한 부장검사는 24일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아들(28)에게 신장을 기증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무기수 박모(54) 씨와 그 가족의 탄원을 받아들여 박 씨에 대해 형집행정지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 박씨와 두 아들의 사연- 살인죄로 복역 중인 무기수 박씨(54), 가정불화로 부인과 이혼하고 2000년 살인까지 저질러 무기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 가정불화와 아버지의 복역으로 어릴 때부터 할머니 품에서 자란 박 씨의 두 아들. 7년 전부터 경북 대구 구미공단의 한 정밀기계 가공업체에 함께 취직해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3년전 또다른 불행이 이들 앞을 막아섰다. 박 씨의 큰아들(28)이 급성 신부전증에 걸린 것. 형의 혈액 투석을 보다 못한 동생(26)이 선뜻 신장을 주겠다고 나섰지만 조직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형제는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형제는 자신들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를 찾는다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고민 끝에 아버지가 복역하는 곳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부산교도소 의무실의 지원을 받아 장기 조직을 검사한 결과 이식수술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박씨와 두 아들은 수술기간만이라도 박 씨에 대해 형집행을 정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이 문제였다. 이들의 탄원을 받은 검찰은 관련 사례를 찾아봤지만 무기수에게 형집행정지 결정을 내려 준 전례가 없어 고민에 빠졌고 박 씨의 둘째 아들은 “법이 관용을 베풀어 마무리가 잘 됐으면 좋겠다”라며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