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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40 왜 사람들은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것일까?
코리안위클리  2015/11/04, 08:48:44   
▲ 다른 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어쩌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함이나 죄책감이 마음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개 환자나 부모들은 스트레스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상담을 통해 괴로운 일을 쏟아내면 마음 속의 ‘짐’을 털어낼 수 있어 마음이 많이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상담을 받기 전에 선생님에게 숨기지 말고 다 털어놔야 한다고 자녀들에게 ‘다짐(?)’을 받기도 하고 한시간 상담을 하고 나서는 치료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마치 이자 받으러 온 사람 같은 표정으로 당연한 듯 어드바이스나 ‘답’을 요구한다.

청소년들의 경우 엄마가 공부하라고 너무 들들 볶고 자신의 사정을 너무 모른다고 불평하고 어머니들은 남편이나 자식이 너무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시부모가 쓸데 없이 간섭한다고 한시간 내내 하소연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필자가 항상 생각하는 것은 ‘이분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비싼 치료비를 내고서라도 생면부지의 날 찾아 와서 이렇게 팔자 소관을 늘어 놓을까?’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대개의 환자들은 자신이 변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찾아오지 않는다. 대다수는 자신이 이렇게 힘든 이유는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못되게 굴어서’ 혹은 ‘나를 못살게 해서’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드니까 ‘저 사람들 좀 어떻게 해주세요’라는 주제로 치료자나 의사를 찾아 온다. 이런 경우 치료에서 ‘공감’을 중요시 하는 치료자들은 환자에게 ‘맞장구’를 쳐주거나 환자의 설명에 동의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쉽게 이야기 하면 “어떻게 당신 남편이 당신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 어떻게 그런 시부모가 이 세상에 있느냐?”등등 이렇게 이야기 해 주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치료자가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과연 환자가 좋아지는 것일까? 문제는 대개의 경우 환자는 몇 번 만나고 나면 더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더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문제는 이야기를 다 했는데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고 더 답답해진다고 불평 한다. 그래서 이 의사도 남편이나 내 속썩이는 아들처럼 내 돈만 축내고 내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치료중에서 물론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심리 치료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자세로 듣는 가가 더 중요하다. 거의 대다수의 개인 심리치료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즉 환자들의 주변 환경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때론 남편을 때론 아들을 병원에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런데 본인들이 병원에 안오려고 하니까 의사 선생님이 좀 잘 설득해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물론 정신과 의사가 병식이 없는 환자들을 볼 때 보호자와 잘 상의해서 작전을 짜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환자’로 오셨는데 자꾸 ‘보호자’ 역할을 하고 거꾸로 집안 식구들을 ‘환자’라고 주장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료사나 정신과 의사가 ‘당신이 문제다’ ‘당신이 환자다’ 이렇게 말을 푼다고 생각하면 화를 내거나 답답해 하고 더 이상 치료에 오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어쩌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함이나 죄책감이 마음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탓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환자들은 자신의 마음이 이해 받기를 원한다.
사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내 마음을 이해 받는다는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상담을 오는 환자들이 상담 시간을 ‘누가 잘 못했고 누가 잘했다’와 같은 판결의 시간처럼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모든 환자들은 그렇게 판결을 받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마음에 불안도 생기고 ‘병’도 생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환자분들에게 치료자가 얼마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환자들은 자신의 마음이 이해 받기를 원한다. 사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내 마음을 이해 받는다는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는, 특히 진정으로 알아 주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이 되는 일인지는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마음을 이해 받기를 원하느냐 하면 자기 자신도 잘 몰랐던 마음의 부분들도 이해받기를 원한다.

위의 예에서 보면 남편이 자신을 괴롭히는 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화가나는 마음, 애들에 대한 원망 등등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바빠서 시간을 못 써준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미안한 마음 등등도 같이 바라 보고 이해해 보려는 다른 마음의 존재가 더한 위로를 주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때로는 고통을 동반한다. 자신이 무엇을 배우는 것이 항상 쉬울 수 만은 있겠는가? 자녀를 키우는 분들은 애기가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견뎌야 되는 ‘현실’의 고통들이 얼마나 많은지 충분히 알고 계실 것이다. 때로는 환자들은 이러한 ‘애기’ 같은 심정으로 ‘엄마’ 같은 치료자를 찾아서 온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나약한 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들을 다시 ‘성인’으로 복귀시키고 현실에 적응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가 항상 고민의 촛점이 된다. 환자들마다 가지고 있는 ‘힘’이 차이가 나서 어떤 분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떤 분은 중간에 그만 두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빨리 좋아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과 치료를 하려는 사람간의 방향성 자체가 많이 차이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가지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요즘의 NHS는 환자들이 너무 많은 관계로 이렇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는 심리 치료 보다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심리치료를 중요시 하는 것이 사실이다. 성격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심리치료는 대개 다 1년 이상이 걸리는데 반해서 증상 완화를 시키는 심리치료는 6번이나 12번 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데이터들이 많이 나와 있다. 물론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 인생이 너무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에게는 적합한 치료가 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서 애가 말을 안들어서 너무 화가 나고 내 인생이 너무 부질없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 환자는 어쩌면 우울증으로 진단될 만한 항목들을 다 만족시킬 것이다. 그래서 매뉴얼에 나오는 대로 우울증이면 약이 효과있다고 주장하면서 약을 먹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이렇게 환자들에게 뭔가 생각의 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치료는 점점 입지가 약해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심히 걱정이 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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