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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물처방이라고 해서 모든 의사가 다 약물을 처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약이라 하더라도 어떤 의사에게 어떤 관계속에서 처방을 받는지가 전체적인 치료 플랜에 성공적으로 녹아 들어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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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은 독하다’라는 말은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무척이나 자주 들었던 말이다. 보호자들이나 환자들은 약이 독하다는 이유로 투약하기를 꺼려했고 또한 약 먹기를 싫어하는 환자들은 이걸 핑계로 약을 복용하지 않다가 재발이 되어서 다시 입원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알다시피 약을 한국 보다는 훨씬 적게 먹는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같이 처방하는 위장약이나 소화제를 주지 않으니까 약 갯수도 훨씬 적고 또한 환자들이 약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도 잘 하지 않는다. 옛날에 한국에서 일을 할 때는 약이 너무 많아서 어떤 환자들은 한꺼번에 다 복용하지도 못해서 두 주먹으로 나누어 먹어야 할 만큼 이약 저약 많이 처방을 받아서 복용를 했었다. 예를 들어서 약이 독하니까 위장보호를 위해서 갤포스(?) 하나에 변비가 생기니까 변비약에 약 많이 먹어서 소화가 안되니까 소화제에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좀 과하다 할만큼 그 당시 풍토는 그랬다.
영국에 와서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약물의 효과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안 같은 증상들은 병이 아니라 일종의 시그널로 보았고 마음속에 있는 다른 문제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보았기 때문에 없애야 할 증상이 아니라 경고로 보고 원인을 찾으라는 메시지로 보았다. 일종의 어느 곳이 아프면 무조건 진통제만 먹을 것이 아니라 왜 아픈지 검사를 해서 원인을 제거하는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하겠다. 그러다가 보니까 자꾸 처방을 안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항상 원인 제거에 몰두를 하게 되고 환자들은 자꾸만 아픈데 약을 안주냐고 성화다. 생각해 보라 내가 어디가 아프거나 괴로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원인을 찾기 위해서 너무 빨리 통증을 없애면 안되고 원인 제거가 중요하다고 계속 기다리라고만 한다면 어떻게 환자가 그 의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한국 같은 의료 환경에서는 아마 다른 병원으로 환자가 금방 가버릴 확률이 높을 것이다. 환자가 매일 와서 아프다고 하는 것을 들어 주는 것도 의사로서는 아주 괴로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약에 손이 가고 처방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 것도 해 줄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을 참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신보건에서는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못해질수록 약을 처방하는 횟수가 많아진다. 영국에서 얼마전에 GP들이 처방하는 항 우울제 처방전 수를 공개한 적이 있는지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지 대중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이는 어쩌면 정부가 바뀌고 복지수당이 줄어드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는데 돈이 적으니까 여가 활동을 못하고 사는게 팍팍해지니까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은 어쩌면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어쩌면 정부 입장에서는 복지 수당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에 비하면 항 우울제의 약값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약을 먹는 환자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커뮤니티의 지원이 줄어들어서 우울증이 생기고 또한 먹는 약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어쩌면 아주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정신보건 서비스를 찾아 오는 많은 경우는 행동 문제이다. 아동, 청소년이 행동문제가 생기는 것은 증상이고 어쩌면 시그널이라고 볼 수 있다. 집에서 부모가 매일 싸우고 아니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폭력적이라서 자주 학대를 당하는 경우에 그 학생은 학교에 가서 다른 학생들과 싸우거나 일탈 행동을 일삼을 수 있다. 이런 경우 행동문제를 없애야만 될 증상이라고 보고 약을 쓴다면 어쩌면 본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혹자는 약을 복용해서라도 학교에서 퇴학 당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학생이 가정에서의 학대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게 된다면 억지로 약을 먹으면서 학교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좋은 예후를 바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현실에서의 어려움은 약을 먹어도 폭력 행동은 없어지지 않고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학생의 행동문제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병’ 때문에 밖으로 들어난 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의 ‘병’ 즉 ‘가정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것 때문에 생기는 증상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서 학생이 집에서 너무 난폭하게 굴어서 가족들 분위기가 안 좋고 엄마 아빠가 늘 학교에 불려 가다 보면 애가 미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동에 대한 미움이나 학대는 계속 되거나 더 심해질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소량의 항정신병 약을 쓰는데 잠이 오고 몸이 뻣뻣해지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고 제일 신경 쓰이는 부작용은 살이 찐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이것이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으니까 운동 부족이라고만 생각하고 열심히 운동하라고 했지만 사실 운동만으로는조절이 잘 안된다. 왜냐하면 체내 대사 문제 때문에 생기는 체중증가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더라도 조절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ADHD같은 발달 장애의 경우에는 나이 어린 아동이 약을 먹기 때문에 특히 부모가 예민하다. 한가지 흥미있는 점은 필자가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으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어떤 부모들은 약물 사용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절대적 거부반응을 보인다. 의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아동에게 약물을 처방해 봤고 그리고 어떤 반응들을 보였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있지만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아이가 처음이다 보니까 절대적으로 의사와 보호자 사이의 신뢰가 중요해진다.
그런점에서 여기서 되짚어 봐야 할 것은 약물처방이라고 해서 모든 의사가 다 약물을 처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약이라 하더라도 어떤 의사에게 어떤 관계속에서 처방을 받는지가 전체적인 치료 플랜에 성공적으로 녹아 들어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게 한다. 그런 점에서 환자분이 오셔서 ‘약만 주세요’라는 것은 어쩌면 전문가의 도움을 십분의 일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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