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재산’, ‘제 먹을 것은 타고 난다’는 말도 다 옛말이야. 오히려 애 하나가 맨 돈인 세상이구만”
임신 9주째인 딸과 산부인과를 찾은 친정어머니의 한탄. 7살짜리 아이가 있는 딸이 또 임신을 하니 못마땅하다. 혼자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하나만 낳아 잘 키우면 되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줄줄이 낳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미국의 NGO인 인구조회국(PRB)은 한국을 세계 최저 출산국군으로 분류했다. 통계청도 2004년 출산율이 사상 최저 수준인 1.16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발맞춰 언론은 여성들의 사회진출 증가를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꼽았으며, 정부는 각종 출산 장려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여성들의 반응은 심드렁한데. 과연 그녀들이 출산을 꺼리는 ‘진짜’ 속사정은 무엇일까.
분만건수 절반으로 줄었다
산부인과 간호사 경력 7년차인 이효순(41)씨는 최근의 출산율저하 현상을 실감하고 있다. 매달 기록하는 임신부 초진내역이 지난해 100건에서 올해 60건 정도로 떨어졌다. 120건에 달했던 분만 역시 올해는 절반에 그치고 있다.
이씨는 “간호사들도 아이 하나만 낳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둘째를 가지라고 권하지만 하나만 낳으려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결혼 10년 만에 어렵게 딸아이를 얻은 자신조차도 퇴근 후 아이와 놀아주다보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란다. 게다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도 곁에서 지켜볼 수 없으니 불안함은 마찬가지라며 “직장 내 육아시설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경제력 되면 하나 더… 그러나
전모(33)씨는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려움은 없지만 그에게도 출산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유치원과 학원 등 7살짜리 아들의 한달 교육비만 무려 40여만원. 전씨는 경상남도도 이런 수준인데 서울은 오죽하겠냐며 “부모로서 아이에게 형제가 있는 게 좋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재취업을 준비 중이라며 “하나보다 둘이 버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했다.
정부가 내놓는 출산장려책도 못미덥다. 셋째를 낳으면 얼마의 지원금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요즘 누가 돈 몇 푼에 아이를 낳겠느냐”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11개월짜리 딸을 둔 이경민(29)씨도 “아기를 낳고 싶어도 경제력이 없으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출산 후 6개월 동안 예방주사를 맞혀야 하는데 한달에만 20여만원이 드는 경우도 있다”고 호소했다. 아이를 갖지 않는 대신 자기 일을 하며 여유롭게 살겠다는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단다.
내가 고용주라도 기혼여성 싫다
대학교직원인 안모(34)씨는 2주 후 직장을 그만둔다. 출퇴근 시간 등 여러모로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끝내 20개월 된 아들을 맡아줄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산 후 직장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눈치가 보였다. 출산·육아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산휴가 이후 능력이 없다느니,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업무내용이 달라지기도 했다. 아기를 낳고 한 달 만에 출근하는 직장동료도 여럿 있었다.
그러다 간혹 업무시간 중간에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오면 오롯이 안씨의 몫이었다.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편도 이 일만큼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안씨는 ‘이래서 고용주들이 결혼한 여자들을 싫어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병원 응급실 간호사인 최모(30)씨는 9개월 된 남자아이의 엄마다.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감기가 심해지는 바람에 자신은 물론 시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돌보고 있다. 보모를 구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적게는 6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믿을 만한 보모를 찾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최씨는 “상황이 이러니 임신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며 “일방적인 여성들만의 희생을 강요하며 저출산 문제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저출산,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
조은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산 원인을 여성들의 사회진출 증가로만 분석한 언론보도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통계청이 발표한 1.16이라는 출산율 저하 현상은 결혼한 여성이 아닌 가임여성이 대상으로, 여성들의 결혼연령이 늦춰진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교수는 여성들의 결혼기피 현상의 원인을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했다. “당시 구조조정 1순위는 명예퇴직자와 맞벌이 여성이었다”며 “생계유지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취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계급양극화로 생계에 대한 보장 없이는 출산하지 않겠다는 의식을 심어줬다”며 “아들딸이 자신보다 못한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출산율 저하와 교육열 강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조교수는 정부가 출산장려금 지원 등 단기적 처방을 내릴 것이 아니라 “직장 내 보육시설 확충은 물론 여성의 취업·보육 보장, 비정규직 철폐 등 구조적으로 경제적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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