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타월 소동
지난 월드컵 때 우리가 이태리를 꺾고 4강에 진출한 걸 배 아파하던 이태리랑 시비가 붙어서 ‘전 국민 이태리 타월 찢어버리기 운동’이 일어났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한참을 웃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곳 캐나다 퀘백에서 일어난 ‘이태리 타월 소동’도 그에 만만치 않다.
작년 3월 말, 나날이 드세져만 가는 ‘시아버지 먹거리 독점 공급 정책’에 넌덜머리가 나서, 인정 많고 먹을 거 풍부한 내 나라, 내 땅을 찾아 떠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남편 생일을 맞았는데, 나만 혼자 빠져나와서 잘 먹고 잘 지내는 게 미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남편이 좋아하는 걸 잔뜩 사서 부쳤다.
4개월 후, 심기일전해서 돌아와 열심히 설거지를 하던 어느 날 저녁, 병 닦는 솔을 찾아 싱크대를 열어본 나는 뭔가 낯익은 물건 하나를 발견하고는 문자 그대로 ‘웃겨 죽는 줄’알았다. 근육질 팔 때문에 등 미는 데 늘 골치를 앓는 남편에게 생일선물로 부친, 자루 달린 이태리 타월이 캐나다산 병 닦는 수세미 옆에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 번 썼는지 이미 거무스름해진 타월을 들고 남편에게 달려가 사건의 전말을 듣고는, 다시 한번 실성한 여자처럼 자지러져야만 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사다 부친 한국 냄새 물씬 나는 물건들-등긁기, 지압기, 의자 다리 커버, 다기세트 등-을 받은 시댁 식구들은, 모든 물건을 식탁 위에 펼쳐놓고 부시맨이 콜라병을 발견했을 때처럼 ‘물건 용도 알아맞히기 긴급 회의’를 열었다.
중국 만물상 단골인 시아버지가 다른 물건은 어렵지 않게 용도를 찾아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이태리 타월만큼은 책을 뒤지는 등 오만법석을 떠시고도 알아내지를 못하셨다. 그러나 ‘모든 도구의 부엌용품화’에 평생을 바쳐오신 시아버지는, ‘옷솔이나 청소도구일 거’라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주장을 묵살하고 설거지용 수세미라고 강력하게 밀어 부치셔서, 개수대 밑에 아담한 자리까지 마련해두셨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스펀지나 면으로 샤워하는 시댁 식구들에게 이 ‘강력한 때밀이’를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아서, 시부모님께는 수세미가 맞다고 말씀드리고, 남편에게만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로 편견이 많으신 시아버지께 우리 민족이 특별히 때가 많은 민족으로 비쳐질까 염려한 애국충정에서 우러나온 선의의 거짓말인 셈이다.
때가 있는데도 안 미는 민족이 미개한 건지, 나오는 대로 쓱쓱 밀어대는 민족이 미개한 건지, 아~ 헷갈린다, 헷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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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 북 출판 / 전희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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