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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16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김 추기경 시신이 유리관에 안치된 가운데 장례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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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하면서 밝힌 말이다.
주교가 된 지 2년 만에 47세의 나이로 서울대교구장 직을 맡게 된 김 추기경은 취임 일성대로 “가난하면서도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을 구축하는 데 힘쓰며 한국 사회 속에 천주교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려 노력했다.
또 재임 기간 한국 천주교회 역사에 남을 만한 굵직한 행사들을 잇따라 치러내며 한국 교회가 안팎으로 모두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고인은 서울대교구장 취임 이듬해인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최초의 일이자 전세계 추기경 136명 중 최연소여서 한국 천주교회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고인도 2004년 출간한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방송ㆍ평화신문 펴냄)에서 “추기경 임명 통보를 받는 순간 자리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이후 1981년에는 테레사 수녀의 첫 방한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사흘 간의 방한 기간 수녀는 고인과 동행해 전국 곳곳에서 천주교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1981년과 1984년에는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성대하게 치러내며 천주교도의 결집에 힘을 실었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참석하기도 했는데 한국 순교자 103위의 시성(諡聖)을 이뤄내기도 하는 등 한국 천주교회의 숙원을 잇따라 성사시켰다.
고인은 1998년 76세의 나이로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났으나 2005년 4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즉위 미사에 참석하고 베네딕토 16세와 면담해 추기경 추가 서임을 요청하는 등 한국 천주교 수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다.
연합뉴스=본지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