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끼리 합병 추진·학교 운영 전문가 기용 등 적자 누적 따른 고육책
영국의 상아탑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거세다.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는 적자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일부 학교들은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구조조정에 나섰다.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은 지난해 10월 합병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각기 영국 내 대학랭킹 3위와 5위를 달리는 두 대학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합병을 선택했다. 변화에 둔감한 영국 대학가도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교육부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영국에 있는 172개 종합대학교 가운데 50개 대학교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재정난이 심각해진 이유는 각 대학교가 구조조정을 등한히 했고 등록금 인상률도 미미했기 때문이다.
영국 최고의 명문대인 케임브리지 대가 대표적인 경우. 재학생 1만7500여명의 이 대학은 2002년 말을 기준으로 13억파운드(약 2조60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갑부 대학’이다. 하지만 지난해 케임브리지대가 기록한 적자는 무려 1000만파운드(약 200억원)에 달한다. 원래 부자 학교가 아니었다면 학교 운영 자체가 힘들었을 만한 규모다. 이처럼 적자 규모가 큰 이유는 케임브리지대를 구성하고 있는 32개의 칼리지, 단과대학교 가운데 일부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대 지난해 200억원 적자
미국식을 따라 전공별로 단과대학이 있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양 대학은 독특한 칼리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두 대학교의 학생은 대학교와 학과 이외에 칼리지의 멤버가 돼 숙소와 연구비 등을 지원받아 생활한다. 그러나 각 칼리지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돼 부자 칼리지가 가난한 칼리지를 돕는 구조가 갖춰져 있지 않다.
케임브리지대 칼리지 가운데 역사가 오래된 칼리지인 트리니티, 세인트 존스 등은 부동산 등 보유재산이 많아 재정난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20세기에 설립된 몇몇 칼리지는 물려받은 부동산이 거의 없다. 특히 1970년대 말에 설립된 로빈슨 칼리지는 최근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케임브리지대는 10월 신학기에 신임 부총장을 맞는다. 케임브리지대의 신임 부총장은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던 앨리슨 리처드 교수다. 보수적인 케임브리지대가 사상 처음으로 여성 부총장을 맞은 것이다. 부총장은 대학 행정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자리. 리처드 교수는 예일대 교무처장으로 재직하면서 건실하게 학교를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임 여성 부총장이 적자 운영을 계속하고 있는 케임브리지대의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지난해 신임 부총장 선임 소식이 발표됐을 때 영국의 언론은 큰 관심을 보이며 이를 집중 조명했다. 그러나 올 초 대학교 자치 최고 의결기구인 케임브리지대 평의회는 리처드 교수를 평의회 의원에 선임하는 안과 부총장의 권한을 확대하는 안을 거부했다. 신임 부총장의 앞날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합병 성사 땐 초대형 대학교 탄생
그러나 케임브리지대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신임 부총장의 발탁과는 별도로 자체적으로 인력을 감축하든지 비용을 절감하는 안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1년 전 케임브리지대는 500만파운드(100억원)를 들여 새로운 컴퓨터 회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단순한 전표를 처리하는 데에도 10분이 넘게 걸릴 만큼 불편한 시스템임이 밝혀져 결국 폐기되었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음에도 이 계획 관여자 중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신임 부총장이 취임하고 기부금을 많이 모은다고 해서 이처럼 구태의연한 대학교가 건실한 재정기반을 갖추게 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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