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싸움
“그 색은 너무 진하다, 이 색을 끼워라”
“이건 너무 연해서 눈에 쉽게 띄어요, 이걸로 할래요”
남편 바짓단 줄인다고 당신이 쓰시던 재봉틀을 좀 빌렸더니, 그냥 혼자 하게 놔두시면 어디가 어때서 내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잔소리를 시작하신다.
“2번에 봐라, 그건 땀이 너무 크다”
“옷감이 두꺼워서 2번은 너무 촘촘해요. 3번이 나아요”
실 색깔 고르는 건 겨우 내 맘대로 했는데, 바늘땀 크기는 시아버지도 양보를 안 하셔서 다시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졌고, 치사하지만 재봉틀 주인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이어지는 시아버지의 ‘실 거는 법과 박는 법’에 관한 재봉틀 강의를 속으로 ‘남묘호랑개교…’를 되뇌이며 묵묵히 들었다.
다 박고 보니 내 말대로 바짓단이 울퉁불퉁해서 샘통이다 싶어 실을 뜯어내려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입고 다닌다!”고 시아버지가 우기시는 통에 또다시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아버지, 저도 한때 패션 디자이너 되려고 에스모드 서울에서 공부한 적 있어서 이런 것쯤은 할 줄 알아요!”
“뭐? 에스모드? 개나 소나 다 가는 데가 거기다!”
어렵게 입학했지만 실력이 딸려서 1학기만 마치고 자퇴한 아픈 기억이 있는 나의 환부에 초를 친 시아버지가 미워서, ‘북북’ 실을 다 뜯어내고 ‘드르륵’ 다시 내 맘대로 바짓단을 박았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랑방의 수석 디자이너 밑에서 재단일을 배우시고 한때 맞춤복 디자이너셨던 시아버지에 비하면, 내 경력이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결국 요리, 패션, 사진, 그림, 가구, 철공예 등 온갖 예술종목을 섭렵하신 ‘인간 문화재’를 이겨보겠다고 덤비는 건 무모한 짓인지라, 분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후퇴해야 했다.
내 맘대로 다시 박고 재봉틀을 막 닫으려는데 다시 돌아오신 시아버지. 혹시 재봉틀에 흠집이라도 생겼나 꼼꼼히 살펴보시더니, 기름칠을 하고 바늘 밑에 헝겊을 대시며 마지막 비수를 내리꽂는다.
“그 에스모드는 재봉틀 돌보는 법도 안 가르쳤구먼…”
시어머니도 아닌 시아버지랑, 그것도 파란 눈의 시아버지랑 먹을 거나 바느질 거리로 쌈질하려고 독한 마음 품고 서울을 떠나온 게 아니건만…. 참! 인생, 맘대로 되는 거 아니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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