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신문과 TV를 보면 인도 수학교육의 우월성에 대한 기사가 홍수를 이루는 듯하다. 19단을 줄줄 외우고 심지어 24단까지 외워 대는 인도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교육이 이제는 인도에까지도 뒤지고 있다는 자조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이제부터라도 수학교육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돼 가는 것 같다.
이제 곧 구구단뿐 아니라 19단, 나아가 24단을 넘어 30단까지라도 줄줄 외우는 한국 아이들이 속출할 것이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은 그동안의 과외수업도 모자라 이제부터는 플라스틱에 코팅된 19단, 24단 표를 들고 다니며 외우게 될 것이다.
1976년 처음 캐나다에 유학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경영대학원에서 배우게 된 경영수학이 우리나라 고교의 1, 2학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외워 대던 구구단의 실력에 모두 놀라워했고, 상점에서 계산기보다도 더 빨리 계산해 내는 내 암산 실력에 사람들이 경악해 마지않곤 했다. 내심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다’는 생각이 절로 들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는 동료 3, 4명이 그룹을 짜 함께 공부하였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나는 너무나 당연히 공식에 대입해 푸는데, 같이 공부하는 캐나다 학생들은 제각기 희한하고도 심지어 치졸하기까지 한 방법으로 풀었다. 나는 “잘못된 팀에 들어왔구나” 하고 후회하였다. 그들은 내가 증명해 보이는, 공식에 의한 수학문제 푸는 방법을 심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믿기를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 학기가 끝날 즈음 교수는 자신의 ‘지혜의 축적’을 보여 주겠다면서 내가 사용했던 공식을 써 보여 주었다.
다음 학기가 되어 교수는 나를 채점 조교로 임명하였다. 아마도 학기 초부터 그와 비슷한 수준의 ‘지혜의 축적’을 보인 나를 수학을 무척 잘하는 학생으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다음 학기에 수학 채점을 해 보니 문제를 푸는 방법이 참으로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방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감점을 주었다가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학생의 설명을 들어 보니 정말 그렇게 풀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우리는 모두 획일적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것은 정사각형이다” 하면 일사불란하게 정사각형으로 받아들여 외우지만 선진국 학생들은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학생은 뒤에서 보고 어떤 학생은 옆에서 보고 하면서 육면체로도 보고 마름모꼴로도 보는 것이었다. 즉 똑같은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 방법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창의력은 바로 이런 교육방법에 의해서만 개발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힘, 이것이 창의력이다. 그리고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창의력 부재다.
우리가 19단을 못 외워 경제가 침체된 것도 아니고 과학교육이 부실해진 것도 아니다. 우리의 문제점은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추리력과 상상력의 부족에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공부 부담이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생각할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 생각하는 힘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주어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동아일보
전 준 수
서강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