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즈(FT)가 세계 1위를 차지한 비결
세계 일류신문의 조건은 무엇인가. ‘한국의 신문 단 하나라도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 선결해야 할 사항이라면 무엇이 지적되는가’라는 의문에 간접적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2005년 7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FT)가 오피니언리더들이 뽑은 세계 최고의 신문 1위의 영예를 안았다. 7월7일 영국 런던의 2012년 올림픽 유치 성공이라는 경사와 겹쳤다. 그 전해에 1위를 차지했던 미국의 <뉴욕타임즈>(NYT)는 6위로 추락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10위권에 들어가지 못했다.
세계 오피니언 리더 설문조사
‘FT가 세계 최고 신문’
스위스의 컨설팅업체인 인터나치오날레 메디엔힐페가 2005년 세계 50개국 정치인, 기업 간부, 대학 교수, 언론인, 광고 전문직 등 오피니언리더 1000명을 대상으로 ‘세계 최고의 신문’을 물은 설문조사에서 <파이낸셜타임즈>가 19.4%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17.0%로 2위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이 16.2%로 3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르몽드>가 4위, 스위스의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이 5위,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7위, 스페인의 <엘 파이스>가 9위,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10위에 올랐다고 한다.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2.6%의 지지로 8위를 기록해 처음으로 10위권에 들었다.
세계 일류 신문 중 1등으로 꼽힌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비결은 무엇일까. 결론은 간단하다. 대단한 비결이나 특출난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적인 저널리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 노력하는 것 뿐이다.
◀ 오피니언리더들이 뽑은 세계 최고의 신문 1위의 영예를 차지한 <파이낸셜타임즈>의 인터넷판.
FT의 비결 다섯가지
비결 아닌 비결 첫 번째는 심층분석과 해설로 단발성 센세이셔널리즘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큰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세상이 뒤집힐 것처럼 언론이 먼저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사건이 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깊이 있는 분석 등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비결 두 번째는 발행부수확장에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신문업계의 시각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다. 많이 팔리는 신문이 가장 좋은 신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권위지들은 대부분 판매부수가 25∼40만부 내외를 유지할 뿐이다. 그렇다고 독자가 더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피니언 리더들-혹은 정책 결정자(decision makers)-과 대중독자들을 명확히 구분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대중지들은 하루 300∼400만부씩 팔리지만 어느 신문도 일류신문 혹은 권위지로 인식되지 않는다. 대중들의 기호와 호기심에 영합하여 믿거나 말거나식의 철저한 흥미 위주의 상업지일 뿐이다.
비결 세 번째는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경제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문업계는 정치권력보다 자본의 권력으로부터 더 많은 부당한 간섭에 노출돼 있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광고로 인해 기사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은 없다고 자부한다. 미국의 대표적 권위지로 손꼽힌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가 2003년 미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따른 오보양산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파이낸셜타임즈>는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국에서 만드는 신문이지만 세계적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해 제작하는 세계의 신문으로 발전한 것이다.
네 번째 비결은 독자의 비판과 불만에 귀기울인다는 점이다. 영국의 또 다른 일류신문 <더 타임즈>는 기자들 고용조건 제1항에 ‘언론윤리강령’ 준수를 못박고 있다. 고용조건으로 언론윤리강령 준수라는 말은 쉽게 들릴 수 있지만 한국 언론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부분이다. 여기에는 독자의 문제제기에 대한 신속하고도 성실한 답변은 물론이고 자발적인 정정보도 등 이를 위해 권위지 신문사마다 ‘독자 옴부즈맨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해당 신문사 옴부즈맨들은 영국의 언론불만처리위원회(PCC)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독자권익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류신문의 기자들은 고학력은 물론이며 검증 받은 기자들로 구성돼있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하루아침에 대형신문사나 방송사에 입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중소 규모 지방지와 이보다 더 큰 지방언론사 등의 경력을 거치며 취재, 보도력이 입증된 기자들을 스카웃한다. 특히 <파이낸셜타임즈>에는 전문기자들이 대거 활약하고 있다. 영국의 5개 권위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전문기자들이 뛰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일류대학 출신 졸업장이 아니라 기자상이나 특종상 등 언론계 활약상을 입증하는 기사뿐이다. 실력만이 경력으로 빛나며 일류언론사들은 이들의 경력을 보고 평가할 뿐이다.
오늘날 선진국 행세를 하는 나라의 공통된 사항이라면 오직 실력사회를 인정하며 연줄, 학연사회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일류언론은 일류독자와 함께 성장
영국은 방송에서는 세계의 대표적 공영방송
가 있다면, 신문계에서는 세계1위 권위지 <파이낸셜타임즈>가 있다고 자랑한다. 일류 언론은 일류 독자와 함께 성장한다.
일류 언론에도 미디어비평이 있으며 미디어비평 전문기자들이 맹활약한다. 항상 비평의 주체이기만을 바라며 비평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언론은 일류를 기대할 수 없다.
비평에 귀기울이고 독자와 시청자를 위해 풍부한 정보와 깊이 있는 해설, 정치적 중립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일류 언론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김창룡 교수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cykim2002@yaho.co.kr
김창룡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 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자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