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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장사꾼 영국 박 대통령 접대 보니…
코리안위클리  2013/11/13, 07:10:12   
▲ 지난 11월 5일 열린 엘리자베스 여왕과 박근혜 대통령의 버킹엄궁 만찬.

내용은 평범, 포장은 명품

영국인은 정말 타고난 장사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을 보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영국인은 평범한 물건을 보다 더 품격 있고 고상하게 포장하는 데는 천재들이기 때문이다. 국빈방문(state visit)을 포장해 내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다른 나라들도 물론 국빈방문이라는 초청 형식이 공식방문(official visit), 실무방문(working visit)과 함께 있다. 그러나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국빈방문도 영국 국빈방문만큼 그럴 듯하지는 않다.

그 이유를 들어 보면 첫째 이유가 영국 여왕의 존재이다. 영국의 국빈방문 초청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고, 공식방문이나 실무방문의 초청자는 총리이다. 대개의 나라들은 국빈방문과 공식방문의 초청자가 동일하다. 미국이나 프랑스같이 대통령이 초청 형식만 바꾸어 초청할 뿐이다. 격을 한 급 높인다고 크게 생색이 나질 않는다. 총리보다 한 수 더 높은 듯한 여왕이 초청을 하니 더 권위가 있는 듯 보이는 것이 영국 국빈방문의 매력이다.

거기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보통의 여왕이 아니다. 왕이라고 다 같은 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이유가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연방 15개국의 공식적 수장이라든지, 영국 국민의 80% 이상이 아직도 왕위제도를 지지한다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예컨대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가고 나서 안동 하회마을이 갑자기 격상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둘째 이유는 영국 국빈방문에는 공식방문이나 다른 나라 국빈방문과는 다른 영국만의 특별한 의식이나 절차가 많이 따른다는 점이다. 영국 국빈방문은 여왕이 초청자가 되다 보니 숙소도 여왕의 왕궁인 런던 시내의 버킹엄궁, 런던 근교 윈저궁, 에든버러의 홀리루드궁 중 하나에서 묵게 된다.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일정이 숙소인 여왕의 관저 중 하나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이번 박 대통령의 국빈방문의 숙소는 버킹엄궁이었다. 국빈방문은 손님을 영접하는 영국 측 인사도 주로 왕족이다. 박 대통령을 지난 11월 5일 아침 힐튼호텔에서 처음으로 맞은 영국 측 인사는 여왕의 둘째 아들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였다. 앤드루 왕자는 여왕이 박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처음 영접하는 버킹엄궁 앞 정부기관이 운집한 호스가즈광장까지 동반했다. 여기서 여왕 부부가 박 대통령과 한 마차에 동승하고 숙소인 버킹엄궁으로 갔다. 국빈방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혜다. 마차로 10분 거리인 약 1.4㎞의 말(Mall)가 양측에는 양국 국기가 걸린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영국을 첫 국빈방문 했을 때 말가에 걸린 태극기를 보고 영국 교민 모두가 상당히 감격했다. 이 말가는 버킹엄궁 앞 광장과 함께 영국 왕실과 관련된 모든 축제의 중심이다. 아스팔트 색깔이 귀한 손님을 맞는 카펫을 상징하듯 붉은 것이 특징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한 둘째 날인 11월 6일 아침 한국전쟁 기념탑 시공식에는 왕세손 윌리엄이 박 대통령을 동반했다. 이 임무가 윌리엄 왕세손으로서는 여왕을 대신하는 첫 공식행사여서 윌리엄 개인은 물론 영국민들에게도 의미가 깊었다. 미래의 왕으로서의 준비를 처음 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항공여행이 일반화되기 전 영국을 방문하는 외국 왕을 영국 왕은 차링크로스역에서 맞았다. 배를 타고 도버로 들어와서 마차로 오든 기차로 오든 일단 이 역에서 맞았다. 영국의 인기 추리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에 등장하는 초호화판 열차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도 여기서 출발해 이스탄불까지 갔다. 국빈방문의 의식이 시작되면서 런던 동쪽의 런던타워와 그린파크에서는 예포 41발이 발사되었다. 그날 저녁 버킹엄궁에서 정식 만찬(state visit banquet)이 베풀어졌다. 빅토리아 시절 이전에는 국빈방문의 버킹엄궁 정식 만찬에는 런던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를 비롯한 외빈들이 대거 초대되어 성대한 환영연이 펼쳐졌으나 이제는 그런 대형 파티는 극히 드물다. 왕족들과 영국 정부 관료, 정치인과 방문국의 일행들로 이루어질 뿐이다.

세 번째가 희소성이다. 영국의 국빈방문은 전·후반기에 각각 한 번씩, 그래서 일 년에 딱 두 번뿐이다. 일단 국빈방문 대상자가 정해지면 그 기간 동안에는 어느 누가 와도 그 다음 격인 공식방문으로 밀린다. 2004년 12월 초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국빈방문 때문에 딱 2주 전에 이뤄진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방영은 결국 공식방문으로 낙찰되고 말았다. 영국이 한국에 약속을 하고 난 후 프랑스가 추진해서 그랬다는 말이 있었지만 개인 일정도 일 년도 훨씬 전에 계획하는 유럽인들이 일을 그렇게 어설프게 처리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의전에 목숨을 거는 외교관들이 말이다. 결국 영국이 자신들의 국익을 계산해서 프랑스 대통령보다는 한국 대통령에게 첫 국빈방문의 기회를 준 것이다.

일 년에 딱 두 번만 국빈방문을 허용하겠다는 영국의 관례는 사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세 번 네 번 한다고 누가 뭐랄 일도 아니다. 어찌 보면 영국인의 오만이 눈에 보이는 듯한 관례이다. 그렇게 해 놓고 그 두 번을 영국 정부는 자신들의 국익을 기준으로 저울질해서 최대한 써먹는다. 그 두 번 중에 한 번의 기회를 너희들에게 주었다는 식으로 하면 시혜 같은 생색의 효과가 분명 나게 되어 있다. 한국 언론에 ‘영국 국빈방문은 일 년에 두 번밖에 없는데’ 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 영국은 생색의 효과를 얻고 있다.

국빈방문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초청자가 여왕이 되고 여왕이 호스가즈에서 직접 영접해서 숙소까지 황금마차로 에스코트하고, 이때 런던 그린파크와 런던타워 두 곳에서 예포가 발사된다.(보통의 예포는 하이드파크와 런던타워에서 발사되는데 국빈방문은 하이드파크 대신에 그린파크에서 발사된다.) 숙소는 여왕의 관저 중 하나이고, 버킹엄궁 앞 말가에 양국기가 걸리고 버킹엄궁에서 정식 만찬이 열린다는 점이 다른 방문과 굳이 따진다면 다른 점이다. 나머지 행사는 거의 같다. 공식방문도 여왕을 어떤 형식으로든 만나게 되고 심지어는 버킹엄궁에서 정식 만찬까지 거창하게 베풀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앞에 든 겨우 서너 가지만 국빈방문이 특별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국 주재 각국 외교관들은 자신의 국가 수반의 영국 국빈방문을 만들어 내고 싶어 안달을 한다. 결국 영국은 다른 나라들이 못 가진 왕실과 그에 따른 의식을 유효 적절하게 최대한 이용해 국빈방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연전에 필자도 영국 상무장관 초청의 만찬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만찬이라 그래 봐야 참석자는 초청 측 3명을 포함해 모두 6명이었다. 식사는 특이할 것 없는 간단한 야채 수프와 아이스크림 정도의 전식·후식을 포함한 스테이크 요리의 3코스 식사였다. 요리 솜씨도 동네 고급 프랑스 식당 요리 수준보다도 못하면 못했지 낫지 않았다. 그런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만찬 장소 때문이었다. 버킹엄궁전 바로 앞의 말가에 있는 300년도 넘은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상무장관을 비롯해 영국 정부 고위 관리들이 귀빈을 접대할 때 쓰는 일종의 영빈관 같은 건물이다. 여왕이 사는 버킹엄궁과 찰스 왕세자가 사는 센트 제임스궁 사이에 있는 건물은 금단추를 단 붉은 정복에 북극곰 털모자를 쓴 여왕 근위병이 경비하는 건물이었다. 높은 천장에 화려한 실내 장식과 벽에 걸린 오래된 유화 그림들, 골동품 가구들로 즐비한 실내는 궁궐 한 부분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거의 165㎡(50평)는 됨 직한 방 한가운데에 조각이 현란한 다리의 큰 식탁과 화려한 왕실 문장이 박힌 본차이나 그릇에 담긴 요리를 은포크 은나이프로 먹다 보니 웬만한 요리도 다 훌륭하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영국 여왕이 요즘 주는 작위도 마찬가지이다. 각종 봉사단체에서 봉사를 많이 했거나 영국의 국익을 위해 일한 공이 많은 일반인에게 주는 각종 작위는 종류가 너무 많아 다 세기도 힘들다. 사람들은 그런데도 이를 대단한 명예로 안다.

다른 예이긴 하지만 영국 여왕이 런던 버킹엄궁과 에든버러의 홀리루드궁에서 여는 가든파티도 마찬가지다. 거의 8000명이 초대되는 이 가든파티는 매년 여름에 열린다. 영국 내의 각종 봉사단체들이 추천한 보통의 영국 국민 중에서 선정된 사람들이 갖가지 치장을 하고 몇 시간을 서서 겨우 샌드위치와 우유를 탄 홍차를 얻어 먹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 든다. 여왕 주최 파티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모자를 반드시 쓰고 드레스를 입어야 하며 남자들은 연미복을 입어야 한다. 때문에 영국의 모자와 정장 업체들은 여왕의 가든파티 때문에 연명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때가 되면 전국이 들썩인다. 여왕과 악수를 하거나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운이다. 대다수의 참석자들은 멀리서 여왕의 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는 여왕의 문장이 들어간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파티 초대장과 프로그램을 가보로 간직할 정도로 영광스러워한다. 가든파티에 초대된 거의 모든 영국인들은 이 경험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였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결혼식이나 자식의 출생보다도 더 큰일이었다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영국 여왕이나 정부는 사회봉사를 열심히 한 국민들에 대한 치하와 영국 왕위제도 지지자 확보라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큰돈이나 큰 힘 안 들이고 얻는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1986년 4월 영국 방문을 시작으로 그후 역대 한국 대통령은 임기 중 반드시 한 번 혹은 두 번은 영국을 방문했다. 거기에 얽힌 영국 교민 사이에 전설처럼 회자되는 수많은 일화들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임기를 2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말기에 이루어졌다. 전 전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국가수반의 3대 방문 형식 중 어느 것에도 해당이 되지 않았다. 국빈방문은 물론 공식·실무방문도 아니었다. 영국 정부는 ‘바로 한 달 뒤인 5월에 마거릿 대처 총리가 한국을 공식 방문하는데 왜 굳이 한국 대통령이 영국에 오길 원하느냐’고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양국 외교진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 ‘런던시장 초청’이었다. 일국의 대통령이 시장 초청으로 외국을 방문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지만 ‘런던시장 초청’이라는 말마저도 사실은 호도(糊塗)된 명칭이었다. 당시 런던에는 런던 전체를 아우르는 선출된 시장이 없었다. 대처 총리가, 런던의 각 구청이 자의적으로 모여서 만든 법에 없던 런던시의회라는 임의 조직을 해산한 뒤였기 때문이다. 런던 동부지역에는 로마 점령시대부터 발전한 런던의 시발점이자 영국 금융가가 위치한 시티(City)라 불리는 2.6㎢의 자치 지역이 있다. 그 지역은 상인조합(Guild)이 왕에게 전비(戰費)를 만들어 주고 자치를 산 지역이다. 이곳은 그 이후 상인조합이 직할하는 지역이 되어 상인 조합장들이 매년 돌아가면서 시장을 해 왔다. 지금은 그냥 역사적인 자리를 유지한다는 상징적인 존재의 명예직에 불과하다. 이를 당시 한국 언론은 ‘런던시장’이라고 부른 것이다.

전 전 대통령 부부는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와 네 명이서만 버킹엄궁전도 아닌 윈저성에서 만찬도 아닌 점심만 간단히 하고 갔다. 그래서 당시 교민들 사이에는 “전 대통령이 윈저에서 라면 먹고 갔다”는 비아냥이 돌기도 했다.

한국 대통령이 해외 순방 시 항상 대동하는 검식관의 존재도 당시 전 전 대통령이 방문하는 영국 여기저기에서 숱한 일화를 낳았다. 영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의 검식관 이야기는 제프리 로빈슨이 쓴 ‘더 호텔(The Hotel)’이라는 책에도 나온다. 1995년 영국을 공식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다른 말 필요 없이 그냥 ‘더 호텔’ 혹은 ‘버킹엄궁전 별관(Annexe to Buckingham Palace)’이라는 별명을 가진 200년 역사의 런던 클라리지호텔에 수행원들과 같이 묵었다. 클라리지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유명인사들도 묵고 간 호텔이다. 제프리 로빈슨은 김 전 대통령의 숙박이 가장 충격적이었던지 자신의 책 9장 15쪽은 전부 김 대통령과 수행원들과 관련된 이야기로 메웠다. 책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형 수행단 이야기도 나온다. 영국 정부가 부담하는 공식 수행원용 16개 룸 예약 이외에 한국 측은 세계에서도 가장 숙박비가 비싼 런던의 최고급 호텔에 추가로 83개의 방을 더 주문해서 수행원들을 묵게 했다. 한 방에 두 명이 묵기 위해 더블 침대를 모두 트윈으로 바꿔주고 침대 사이를 넓게 벌려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 대통령 말기에 IMF 외환위기가 괜히 온 것이 아니다”는 빈정거림이 뉴몰던 한인촌에 돌기도 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모 대통령 경호원들을 비롯한 공식수행원들의 버버리코트 수백 벌 대량 구입은 지금도 한인 가이드 사이에는 전설로 남아 있다. 영국 교민들은 대통령 방문 때만 되면 이런 옛날 얘기들을 하면서 실소를 금치 못하곤 한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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