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지 100년이 지나면 ‘앤티크’라는 라벨을 자동적으로 붙일 뿐만 아니라 앤티크가 거래되는 시장 또한 대단한 규모를 자랑한다. 런던에만 수십 군데가 넘는다. 그러므로 런던에 세계적인 앤티크 전문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자연사·과학·지질 분야의 전문박물관이 서로 담을 맞대고 있는 사우스 켄싱턴 지구에 소재한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그것이다. 1851년에 개최된 런던 만국박람회의 수익금으로 세운 장식 및 디자인 전문 박물관인데, 빅토리아란 명칭은 당시의 영국 국왕에서, 앨버트는 박람회 총재이자 국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신앙·생활과 관련된 ‘앤티크’ 전시
전시물은 영국 왕실과 상류계급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들이라 마치 그들의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것도 가구와 그릇, 의상과 직물, 모자, 램프, 촛대, 거울, 핸드백, 자수(레이스), 유리공예 등을 낱개 상태가 아니라 방 전체를 세트로 꾸며 보여주어 한눈에 알아보도록 해놓았다.
전체적인 배치나 조화도 뛰어나지만 하나하나의 바탕이 되고 있는 재질과 솜씨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장인정신이 절로 느껴진다. 특히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구가한 빅토리아조의 가구는 영국적인 특성과 함께 중국 등 이국적인 요소도 혼재돼 특이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물론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기능성보다는 장식성이 강해 생활에 실제로 사용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박물관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지만 침대와 의자, 테이블, 장식장 등 가구나 공예품은 입식 문화권에서 크게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앤티크는 고물이긴 하지만 생활과 밀착돼 있다. 고고학적인 유물이 대종을 차지하는 대영박물관에서는 지루해했던 사람도 이곳에 오면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나도 능력만 되면 저런 거실이나 침실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과 의욕이 자기도 모르게 꿈틀대기 때문이다. 손때가 묻고 세월의 평가를 받아서인지는 몰라도 앤티크에선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역사와 문화를 들려주기도 한다. 앤티크는 자원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점도 지니고 있어 환경운동의 일환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값이 올라가므로 재테크의 요소도 있다. 이런 이유로 앤티크의 열기가 식지 않는데,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그 중심 역할을 해낸다.
영국은 또 기독교 국가다. 따라서 신앙과 관련된 공예품도 적지 않다. 십자가, 성배, 향로, 스테인드 글라스, 성서 커버 등은 그들의 깊은 신앙심을 잘 표현해내고 있으며, 여기에 조각과 회화, 사진 등이 더해진다. 조각 가운데에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복제품도 섞여 있어 서양 조각사의 교과서를 보는 듯하다.
동서양 예술 혼합된 묘한 느낌
그렇다고 해서 영국 또는 유럽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이슬람,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의 생활 예술품들도 각자의 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슬람실에선 접시류와 타일, 중국실에선 서예와 왕실 집기들이 주류를 이루며, 인도실은 힌두 신상과 왕실 인테리어, 일본실은 유키요에(풍속화)와 그들 특유의 의상이 눈길을 끈다. 1992년 개관한 한국실에는 도자기와 금속공예, 칠기, 족자, 가구 등으로 조선조 선비의 방을 꾸며놓아 박물관의 전체적인 구성과 잘 어울려 찾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3층의 유리공예실은 현대의 작품경향을 보여주고, 그 옆의 도자실은 세계 도자의 역사를 지역별·시대별로 정리해 놓았으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금은 세공품과 직물, 철제 문 장식품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그러다가 정원으로 나와 머리를 식히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만족감에 빠지게 된다. 이 얼마나 좋은 곳이며, 값진 시간인가.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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