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의 실세 박지원 피고에 대한 최근의 대법원 무죄취지의 판결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최고’와 ‘최종’의 결정만이 오직 정의이다. 1심 2심의 ‘판결’마저도 모두 결과적으로 통과의례인 장식품에 불과하고 국민의 혈세를 좀먹는 낭비적 제도가 돼버렸다.
물론 이 사건의 정·부당성에 대한 의견이 아니고 우리나라 재판제도의 존재이유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개혁을 제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임을 강조해 둔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박지원 전 장관의 부탁으로 정몽헌 전 현대회장에게 150억원을 요구했다는 김영완씨의 자술서는 증거 능력이 없다’또 ‘돈을 전달했다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 역시 오락가락하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따라서 ‘이익치 전 회장의 진술에 대해서 심리가 더 필요하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계좌추적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할 사항이 나오지 않은 점과 경험적으로 볼 때 피고인이 감사 인사를 마땅히 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정몽헌 전 회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은 점 등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들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원심의 판결은 파기돼야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유죄의 인정은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거에 의해야 하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전 장관은 지난 2002년 남북 정상 회담을 앞두고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CD로 받고 불법 대북 송금에 개입한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1심과 비슷한 징역 12년에 추징금 148억5천만원을 선고받고 상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1심과 2심의 판사들은 대법원이 지적하는 사실판단의 ‘기초적사항’도 모르는 분들이란 말인가, 아니면 대법원의 판단이 ‘오버’한 것인가. 이미 판결이 난 사건의 경우 그 판결에 대한 책임은 재판관들에게 있는 것이지 관여한 피고인이나 검사는 책임이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법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1심 존중하는 영국의 사례
800년 역사를 가진 영국의 수도 런던시는 1200만 시민에 대한 민선시장의 공약이라 할 수 있는 시의 중심부 진입 차량에 대한 혼잡통행료(congestion charge)제도의 채택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들의 법적쟁송으로 전혀 정책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2002년 7월31일 결국 런던 지방법원(London High Court 필자주·명칭에 불구하고 소액제외한 1심으로 단독판사 )의 모리스 케이 판사(Mr. Justice Maurice Kay) 한 사람에 의한 원고청구에 대한 기각판결이 사실상 오늘의 성공적 시행의 기틀이 됐다. 이러한 제때 실기없이 사업착수 가능의 근본은 1심판결에 거의 모두가 두말없이 신뢰하고 승복하는 영국의 사법제도와 관행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런던지역내에서도 이 사건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건이었다.
웨스터민스터 자치구(Westminster Council) 당국의 런던시에 대한 관할주민의 이해득실을 따진 반발과 경계지역 해당주민을 포함한 강력한 비정부 시민단체의 시장에 대한 환경권과 기본적 인권유린을 이유로 한 군중시위는 물론 소원도 제기 됐다. 또 이 소원거부에 대한 가처분신청 및 소송이라는 엄청난 저항에 직면했던 민선의 리빙스턴 런던시장으로서는 이 제도의 원활한 시행을 성사시켜 임기중 가장 감격적인 성공치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고 새로운 판례를 구한다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는 1심판결이 최종이라는 등식은 영국사회의 상식이라 할 수 있다. 저명 신문사의 명예훼손의 손배소 등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 영국의 특성의 하나로 1심판결의 존엄성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사례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러한 1심 존중의 문화는 사법부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정의로운 역사적 제도 발전의 공로임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우선 결과론적으로 영국의 소송경제는 한번의 판결에서도 이룩된다는 사실만은 배워야 할 사항이다. 영국의 1심판결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엄성과 승복의 관행은 천문학적인 혈세의 절약과 국가적 사업의 가시적 성취 성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확보는 평소 정부의 책임이 성공한 결과이다.
지방법원의 존재 이유?
한국의 국민은 헷갈린다. 하급심의 판단을 신뢰하고 승복할 수 있도록 심급별 재판제도의 개혁이 시급하지 않은가? 사사건건 다 대법원으로 가서 ‘기초사실’까지 판결해야 하려면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은 폐지하면 되지 존재할 이유가 무엇일까. 판례정립이 아닌 사실판단을 일상적으로 대법원에까지 판결을 구할 필요가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이번 사건을 보고 1심 또는 2심에 신뢰승복한 결과로 상소를 포기하여 자신의 사건이 불리하게 이미 확정된 모든 국민은 대법원까지 상고하지 않았던 새삼스러운 자신의 미련과 후회막급에 원통 또 원통해서 명대로 살 수 있을까?
모든 심급의 재판제도를 존재이유에 맞게 개혁해야 한다. 같은 사건에 대해 판결 한개 두개로는 성이 차지 않고 대법원까지 끝을 봐야 한을 풀도록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재판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지 1심에 신뢰승복 못하는 국민을 탓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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