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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칼럼>너의 한 순간도 그러하리니
코리안위클리  2006/05/18, 02:38:04   
  
1.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젖은 머리 흩날리며
뛰어온 그대와
마주쳤을 때
반가운 말보다
마음이 먼저
속삭이는 소리
그래, 참 이쁘구나
참 이쁘구나
<나의 시 ‘비오는 날’ 전문>


5월인데,  대지를 적시며 내리는 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예년에는 영국의 5월은 너무 자주 비가 내려 제발 비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며 하늘을 쳐다보곤 했었는데, 이제 그 반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서성거리다가 또 바라보다가 서성거리다가 문득 아득한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20대 초반 대학 시절, 한번은 부천 외삼촌 집에 갔다가 마침 비가 오는 지라 외삼촌의 긴 가죽장화를 구두대신 신고 학교로 갔는데 어쩌다가 집으로도 외삼촌 집으로도 못 가고 며칠을 학교 주변에서 맴돈 적이 있었습니다. 비가 그쳤지만 집엘 가지 못했기 때문에 줄창 가죽장화를 신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던가, 도서관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이쁘장하게 생긴  한 여학생이 다가오더니,
“왜 늘 장화만 신고 다니지요? 이렇게 무더운 여름철에…”
그 말하는 투가 빈정거리는 것은 물론 아니요 궁금해서 묻는 것도 아닌 듯 하고 뭔가 참 그럴 듯이 재미있는 까닭이 있지 않을까 제 마음대로 추측하고는 이 괴짜 같은 녀석의 입에서 무슨 대답이 나오는지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 그런 투였습니다.
그때 내 대답이.
“비가 오니 장화를 신지요.”
“비가 오다니요?”
“It’s always raining in my heart.”
내 마음 속에 언제나 비가 내린다는 이 구절은 그때 열심히 들여다보던 시집에서 읽은 스윈번인가 하는 시인의 한 넋두리였는데 마침 용케 생각이 나서 땜질하듯 내뱉었더니 아마도 그 한마디가 여학생의 풋풋한 젖가슴에 무슨 화살인양 박혔던가봅니다. 그것을 빌미로 둘은 데이트 비슷한 것까지 시늉을 하다가 마침내 내가 군대로 가는 바람에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요즘 내 마음에도 역시 내리는 비가 그치지를 않으니……

빗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나’라는 집 속에 담긴 시간과 공간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습니다. 어린시절 생각이 납니다. 어린시절 내게 빗소리는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였습니다. 그래서일 것입니다. 비만 생각하면 내겐 처마를 타고 낙수가 투닥투닥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비는 계속 내리는 중입니다. 싸목싸목 오시는 중입니다.
순간 비를 맞고 있을 뭇자연들에게 모두 존대를 하고 싶어집니다.
이 비에 촉촉해지실 대지와 이 비를 받아먹고 계실 천지의 꽃들과 이 비에 키를 키우고 계실 새순들에게.

비님 이시여
나직나직 실컷 내리시라
지는 꽃잎과 지는 연둣빛이여
이 순간이 곧 지나갈지라도
찬란히 아름다워라
존재의 한 순간
굳이 다른이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존재의 한 순간을 향한
인간의 향수는 영원하리니
비속에 놓인 너의 한 순간도
그러하리니.



2.
해님 닮은 납작한 얼굴이
언덕길에 피어나 방긋 웃을 때면
어째선 지 내 마음 서글퍼지누나
아 민들레꽃 금황색 미소 ―
노랗게 꽃이 피는 저 언덕너머
시내물에 아득히 싣고 간 시절
가버린 시절은 너의 꽃처럼 향기롭고
두고 간 추억은 너의 뿌리처럼 쓰디쓰고나
어찌 잊으랴 나의 민들레꽃
우리 함께 자라던 어린 시절
짜작나무 둘러선 가난한 산촌마을
옹기종기 모여앉은 키 낮은 초가집들
천진한 꿈속을 빙글빙글 돌아가던
물방아의 쿵쿵 소리를
아궁이속 사그라진 도막나무불에서
구수하게 익어가던 감자냄새를
봄철이면 우리 함께 민들레나물 캐었고
민들레씨 동동 입모아 불어 날렸거니
그때도 미처 몰랐구나
너도 한송이 민들레꽃이였음을…
<우일촌의 시 ‘민들레꽃’의 전문>


꽃이 흔한 영국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민들레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아니 한겨울에도 볼 수 있는 꽃이 민들레꽃입니다.
민들레(Dandelion)라고 하는 식물은 생명력이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영국의 집들은 집집마다 잔디밭이 있어서 그것이 집안의 허파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잔디도 생명력이 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국잔디는 한국의 잔디와는 달라서 며칠이 지나면 잡초처럼 거칠게 자랍니다. 자연히 날마다 눈여겨보면서 잔디 깎을 걱정에 마음 한 구석이 눌립니다.
그것보다도 짜증나는 것이 민들레입니다. 이놈은 잔디와는 비슷하지도 않는 이방족속인데 심지도 않았는데 비좁은 틈바구니에 파고들어 뿌리를 내립니다. 내려도 깊숙이 내렸기에 뽑아버리려고 해도 좀처럼 뽑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보기 싫어 잔디 깎기로 밀어 버립니다. 다행히 목이 길어 잔디 깎기에 걸려서 목이 잘립니다. 그런 날에는 그런 데로 잔디밭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전보다 더 많이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또 잔디 깎기로 밉니다. 자꾸자꾸 깎으면 이놈들이 잔디 깎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저절로 짧아지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지 아무리 밀어도 노란꽃은 그대로 피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놈을 기어코 없애 버리겠다고 작심을 하고 모종삽으로 깊이 파냅니다. 그래도 뿌리가 좀 끊어져 남으면 한 주일 후면 그 놈의 꼬리가 올라와서 제대로 민들레 노릇을 하며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꽃을 피우는 기간도 자꾸자꾸 빨라집니다.
어떤 때 보면 주인이 잠시 방치했던지, 잔디밭이 아주 샛노란 민들레 꽃밭으로 바꿔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냥 나둬서 차리 민들레 화단을 만들면 더 아름답게 보이는데 기를 쓰고 없애버리려는 나의 심사를 나도 모르겠습니다.
이 민들레와의 사투를 벌이며 민들레가 꼭 외국 땅에서 자리잡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디가 백인사회라면 민들레는 동양 소수민족이랄까! 백인들이 싫어하고 업신여기고 될 수만 있으면 뽑아버리고 싶어하고 깎고 자르고 해도 죽어라고 뿌리를 내리는 우리네 말입니다.
민들레는 흔해빠진 보잘 것 없는 노랗고 소박한 한 포기의 야생화입니다. 그러나 이 꽃이 오늘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 상상은 우리 민족이 의식의 뿌리로 보유하고 있는 소중한 정서, 곧 고향에의 아름다움을 환기시켜주고 있고, 이루지 못한 환향(home-coming)의 갈등을 꿈으로 피어 올립니다.
민들레를 바라봅니다. 애정으로 바라봅니다. 민들레와 같이 자꾸 퍼져가고 민들레와 같이 아무리 어려워도 씩씩하게 자라나는 생명력을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뿐 다시 잔디밭의 민들레와 싸울 준비를 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별 수 없는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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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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