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미국발 ‘워런 버핏 역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검찰 수사 이후 상속세제 개편을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지만 워런 버핏의 거액 기부행위가 이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이 개인재산 3백70억달러를 기부한 뒤 국민여론이 “사회 환원은 못할망정 상속세를 줄여달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재계에 따르면 상속세제 개편을 주도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의는 한동안 상속세 개편 문제를 거론치 않기로 했다. 자칫 괜한 오해는 물론 ‘자충수’를 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상속세를 줄이거나 없애달라고 계속 주장하다가 오히려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며 “공론화는 된 만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다리는 게 순리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대기업들도 역풍을 우려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에버랜드 사건’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삼성 측은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워런 버핏 기부 이후 국민 정서가 ‘상속세 폐지나 개선은 안된다’는 쪽으로 확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며 “법 개정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LG 관계자도 “우리야 지주회사가 안착됐고 상속문제가 현안은 아니지만 3세의 경영권 상속이 걸린 기업은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상속세제 개편을 올 최대 과제로 삼아온 한달 전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전경련은 지난달만 해도 세미나를 열어 “기업을 안정적으로 경영하고 사업·투자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상의도 지난 21일 세미나에서 “소득세를 납부하고 모은 개인 재산에 대해 다시 한번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상속세는 이중과세 문제가 있다”며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상속세를 완화하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워런 버핏의 상속세 발언이 불거진 뒤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버핏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추진하는 상속세 폐지 시도를 “부의 왕조적 세습”이라고 규정짓고 상속세 폐지 시도는 매우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버핏의 거액 기부행위로 재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더욱 노골화될 공산이 크다”면서 “재벌총수의 거액 현금 기부를 당연시하는 풍토로 이어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재계가 상속세 개편은커녕 사회공헌 보따리를 더 풀어놔야 할 수세적 입장에 몰린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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