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언론은 일제히 세계 제1차대전 당시인 1916년 10월 2일 프랑스 전장에서 전투참가 명령 불복종으로 단심 군사법정에 의해 ‘적전 비겁행위’로 판결 받고 다음날 새벽에 총살형에 처해진 해리 파 일등병에 대해 현재 92세된 유족인 딸의 제소로 법정이 형의 실효를 선고하고 사면했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묘도 없이 방치된 그의 유골찾기도 명예회복과 더불어 시작될 전망이라고 한다.
유족이 제소한 근거는 현재의 의학에 따르면 당시 파 일등병의 명령거부행위는 전장의 포탄폭발 등에 따른 일종의 정신장애병으로 심신장애중의 행위로 인한 것임으로 무죄라는 기준에 따른것이다.
당시의 의학은 이러한 신경장애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결과로 극형이 선고되었던 것임으로 ‘과거의 범죄도 현재의 법에 죄가 되지 않으면 면소가 된다’는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따른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한편 영국정부는 이 보도에 힘입어 현재 300여 건으로 추산되는 전장 이탈의 유사한 케이스에 대해 아예 국회의 법률개정 형식을 통해 일제히 사면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영국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처한 두가지 경우를 연상해 보게 된다.
첫째로 이번 8.15에도 마찬가지로 형이 확정된지 불과 수년도 경과하지 않은 거액의 선거법 위반자 등이 국민적 합의가 의심스러운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나는 풍토가 계속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옛날 국왕의 은사권이 잔재인 대통령 사면권은 사법권 존중과 국민적 동의가 확실한 경우에 한하여 엄격한 요건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3심재판으로 국력을 낭비하고 나서 바로 대통령이 풀어줘 버리면 법치국가의 존립 기초인 법의 존엄성이 흔들린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영국은 이러한 제1차대전 당시 범법자의 사면이라는 국민적 동의와 형법이론의 뒷받침을 받는 경우까지도 국회의 동의(Armed Forces Bill·법률개정)라는 적법절차(Due process)를 거칠 정도로 재판결과를 존중하는 사회이다 .
평소 영국의 내무장관이 취하는 형의 감형 면제조치는 판결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내용 또는 구체적 행형법률의 규정에 따르는 것으로 한국 대통령의 ‘왕의 남자’들을 포함한 무소불위의 ‘사면권 행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볼수있다.
또 영국의 90년전의 ‘비겁행위’에 대한 사면조치로 이들 사면자가 뒤늦게나마 각자의 고향의 ‘전몰장병 기념탑’(Cenotaph)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재산문제와는 무관하며 후손의 명예문제에 한정된다는 그 순수성도 우리의 코끝을 찡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일제시대 작위를 받고 거액의 재산을 모았던 친일파의 후손들이 부끄러운 ‘친일 유산’ 서로 차지하려고 수년째 형사고발, 수억원대 고미술품 분쟁, 손해배상 등 각종 민사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조상이 남긴 ‘파렴치한 재산’을 두고 후손들끼리 각종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는가 하면 국가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해 ‘친일 재산’을 둘러싼 과거사 청산 목소리를 무색케 하고 있다.”(국민일보)
영국에서는 억울한 ‘범죄인’의 불명예를 벗기위한 법정투쟁인데 우리나라는 나라 팔아먹은 ‘공로’로 차지한 유산 싸움에 혈안이 되고 있다는 볼쌍사나운 민족의 치부가 속속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혼돈은 영국의 경우에는 세계를 지배한 대영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의 경우 일제에 강점당한 식민지 근성의 잔재일까.
우리모두 반성의 자세가 필요할 듯싶다.
김남교 / 재영 칼럼니스트
nkym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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