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적 항공사 브리티시에어라인은 지난해 눈부신 경영실적으로 만성적자를 벗어났다. 7천억원 수준이던 비지니스석의 수익이 1조3천억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80도로 완전히 젖혀지는 좌석을 만들어 편히 누워갈 수 있게 만든 게 주효했다.
좌석을 완전히 눕히는 디자인은 항공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해 좌석을 줄여야 하고, 이는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하지만 영국 디자인 기업 탠저린은 ‘발상의 전환’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좌석을 눕히되 에스(S) 자 라인으로 디자인해 좌석 길이를 기존 55인치에서 75인치로 늘리면서도 자릿수를 그대로 유지했다.
마틴 다비셔 탠저린 사장은 “기존 좌석을 머릿 속에서 지우고 제로베이스에서 디자인했다”며 “호텔 라운지를 비행기에 옮겨놓는다는 개념에 집중해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브리티시에어라인의 성공은 회사뿐 아니라 영국에 대한 인상을 바꾸고 영국인의 자긍심을 되살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탠저린은 디자인의 사업성을 중시한다. 사업의 도구인 만큼 사업화의 방향을 제시해 고객의 매출과 연결돼야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해당 제품의 체험에서 나오는 요구사항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디자인은 예술이라기보다 창조적 감성의 표현’이라는 다비셔 사장의 철학도 이런 원칙에서 비롯됐다.
사업성을 강조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짚어내는 탁월함 때문에 탠저린은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12개 나라 20개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삼성전자, 엘지전자를 비롯해 애플, 히다치, 벨, 알카텔, 도코로, 닛산,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이 탠저린의 디자인 능력을 빌어쓰고 있다.
큰 고객들이 많지만 디자이너가 많은 것도 아니다. 런던 본사에 16명, 서울 사무소에 4명 등 모두 20명이 전부다. 지난해 말에는 7년 동안 근무한 한국인 디자이너 이돈태씨가 공동 사장으로 승진했다.
탠저린은 디자인 컨설팅 의뢰를 받으면 담당 디자이너가 프로젝트별로 사람을 뽑아 쓴다. 고객 조사부터 시작해 어거노믹스 전문가, 컬러 전문가, 기계 전문가 등 20여명을 채용해 활용한다.
탠저린은 또 겉보기의 디자인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계적인 미디어제왕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위성방송 스카이의 셋톱박스를 디자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미국의 굿디자인상과 영국 옐로우펜슬 등 각종 상을 휩쓴 디자인이지만, 외형의 아름다움보다는 소비자가 사용하기 쉽도록 디자인했다. 이 셋톱박스는 처음 유료로 공급됐지만 300만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비셔 사장은 “외형보다 편리함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제대로 먹혔던 것”이라며 “디자인 대상에 따라 디자인의 개념을 달리 적용하고 이를 철저히 구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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