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혁 칼럼은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1.
자라면서 나는 참 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그냥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그림을 보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음악가가 되고 싶었고, 좋은 책을 읽으면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되었어도 늘 그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목말라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도 나의 삶이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않았습니다. 늘상 이렇게 살아간다는 게 또 살아가야 한다는 게 가슴 아프고 마음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러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을 갖게 될런지 아니면 나의 생명이 죽음에 의해 삼키우는 순간까지도 그러한 날이 올지 안 올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잊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야 완전치는 않지만 산다는데 대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평범한 진리들을 하나 둘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굼벵이는 매미의 애벌레로서 땅 속에서 수년간 살다가 때가 되면 번데기 속에 들어갔다가 날개를 달고 나와 매미가 됩니다. 생김새는 누에 비슷하지만 짧고 뚱뚱하며 색깔조차 시커멓기 때문에 징그러운 느낌을 줍니다. 도무지 귀엽게 봐 줄 수 없는 굼벵이에게도 한 가지 재주는 있으니 그것은 굼틀굼틀 궁그는 것입니다. “굼벵이도 궁글 재주는 있다”는 속담이 그래서 생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징그럽고 하찮은 버러지에게도 한 가지 재주는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여기에 더한 은총은 없습니다. 굼벵이는 궁글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부러워한다면 그것은 가슴만 아프게 할 뿐, 도무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입니다. 굼벵이에게는 굼벵이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라삐 수샤는 임종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은 뒤 하나님께서는 날 보고 ‘너는 왜 모세가 못 되었느냐’고 묻지 않고 ‘너는 왜 수샤가 못 되었느냐’고 물으실 것이다.”
굼벵이는 굼벵이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굼벵이로서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는 굼틀 비틀 궁글면서 굼벵이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언제고 다시 태어나는 날 아름다운 매미가 된다지만… 그건 그때 가 보면 알게 될 것이고, 미리부터 없는 날개로 날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초가 지붕 위에 박이 열렸습니다. 처음에는 강낭콩만했다가 점점 커져 달걀만 해지고 마침내는 달 만해졌습니다.
달을 보며 자란 박은 달이 되고 싶었습니다.
산들바람이 불고, 귀뚜라미가 울고 곧이어 달이 떠올랐습니다.
“달님”
박이 불렀습니다.
“왜?”
달이 대답했습니다.
“내 모습은 달님을 닮았지요?”
“그렇구나”
“그런데 왜 나는 빛나지 않나요?”
박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달은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한 소녀가 있었단다. 소녀는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고 성악가가 되려고 했지.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보고는 화가가 되려고 했어. 그러다가 자라서는 동화 쓰는 사람이 되었단다.”
“왜 그랬을까요?”
“그야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니까?”
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박은 마침내 제가 할 일을 알아냈습니다. 남의 흉내를 내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박은 달에게 말했습니다.
“단단한 그릇이 되겠어요.”
달이 박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네가 할 일을 찾았구나”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2.
얼마전, 암에 관한 흥미로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각종 질병에 관한 사례를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말기 암환자 가운데 기적적으로 회생한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고 그 글은 적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술조차 받지 못했던 췌장암 말기 환자의 몸에서 아무 이유 없이 종양이 사라졌다거나, 유방암이 폐에 전이되어 3개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여성의 폐에서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사례 모두 의학적으로는 해명할 수 없다고 하니, 그렇다면 이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기적적으로 회생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태도였습니다. 불치병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병에 걸린 후에도 그들이 변함없이 즐겁게 생활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떤 병원의 간호원은 이렇게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환자, 늘 콧노래를 흥얼거렸어요. 치료에도 늘 적극적이었죠.”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은 환자의 거의 대부분이 밝은 노래를 즐겨 부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글도 실려 있었습니다.
‘명랑하고 긍정적인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면역기능이 월등이 높다.’
면역기능이란 신체의 외부로부터 이물질이 침입했을 때, 그것을 스스로 제거할 수 있는 기능으로, 면역기능이 강하면 강할수록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자연치유력도 높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면역기능은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사회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개인의 미래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래를 비관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귓전을 맴돈다 해도 절대 의기소침해져서는 안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음 스텝으로 연결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입니다.
늘 여유를 잃지 맙시다. 밝은 마음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병마도 어느새 말끔히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지난 6년간 ‘코리안 위클리’와 함께 했던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었고, 최고로 순수한 시간이었고…,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밝은 마음으로 노래 부르는 여유를 가지며 각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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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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