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자면제 관련 도입 요구… 시민단체선 ‘보안성 없다’ 반대
그동안 도입을 놓고 논란을 빚어온 ‘전자여권(e-Passport)’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최근 비자면제국가 지정에 대한 단서 조항으로 우리나라에 전자여권도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미 상원은 3월 13일 국토안보강화법 일부 조항을 수정한 비자면제국 확대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새로운 비자면제 확대법안에 따라 미 행정부는 해당국의 비자 거부율과 체류시한 위반비율(Overstay)이 10% 이내인 국가 중에서 비자면제국을 확대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받게 됐다. 대신 해당국(우리나라 등)은 즉석 검색이 가능한 첨단 전자여권을 반드시 발급·사용해야 한다. 현행법은 비자거부율이 3% 이내에 들어야 비자면제국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수정 통과 법안의 핵심은 비자발급 거부율 3% 기준을 없앤 것으로 우리나라는 그동안 거부율 기준초과 때문에 비자면제대상국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이르면 2008년부터 우리나라 여행객이 미국 방문시 비자를 받지 않고 입국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전문가들은 개인 생체정보 유출 등 부작용을 우려해 적지 않은 논란을 빚었던 전자여권 도입이 이번 조치로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자면제국 확대법안이 확정되면 미국의 비자면제국은 현재 30여 개국에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키프로스, 체코, 에스토니아, 이스라엘, 그리스 , 헝가리, 몰타, 폴란드, 대만 등 13개국이 추가될 전망이다. 비자면제국이 되면 방문비자 없이도 미국을 방문해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비자를 받기 위해 미 대사관에서 장시간 줄을 서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지게 된다.
외교부 내년까지 시스템 구축키로
그동안 전자여권 도입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일각에서는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고 또 한 편에서는 도입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교통상부 김봉현 재외동포영사국장은 “한국 여권에 대한 위·변조를 철저하게 방지해 한국 여권의 ‘국제적 신뢰성’을 제고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특히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을 위해서도 전자여권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는 전자여권 도입을 위해 최근 산하에 추진단을 구성하고 도입 준비작업을 해왔다. 올 상반기 중 전자여권시스템 구축사업자를 선정하고 2008년까지 시스템 구축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말 1차적인 시스템 구축이 마무리되면 우선 관용여권과 외교관 여권을 전자여권으로 전환한다는 방침도 세우고 있다. 또 내년에는 일반여권도 전자여권으로 전면 전환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전자여권 사업규모는 약 500억 원 정도로 전망된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은 전자여권 도입에 대해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자여권의 보안기능이 미비할 경우 개인들의 생체정보가 국제적으로 노출될 수 있고, 국가가 여권 이외의 목적으로 이들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등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보네트워크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오죽했으면 독일의 한 전문가 집단이 전자여권의 데이터를 추적당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권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 즉 여권을 못 쓰게 만드는 방법뿐이라 했다”는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전자여권의 생체정보를 도둑맞지 않는 방법은 애초에 전자여권을 안 만드는
것뿐이라는 주장이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전자여권 도입에 따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적·법적 문제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통합적 법제도와 새로운 전자여권 시스템을 뒷받침할 정부 내 인프라 구축의 시급성을 지적했다.
법무법인 지평의 이은우 변호사(진보네트워크 운영위원)는 한 공청회에서 “전자여권 도입에 수반되는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개인의 자기 정보 통제권 상실”이라며 “특히 전자여권 도입을 위해 수집된 정보가 원래와는 다른 용도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전자여권에 쓰이는 ‘정보 인식용 칩’은 원거리에서도 탐지할 수 있다”면서 “이용자들의 위치 정보가 노출되어 개인이 사실상 국제적인 감시하에 놓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에 가입하려는 목적 때문이라면 도입을 자제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정보 인식용 칩 원거리서 탐지가능
또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박준우 정책팀장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행위에는 제한을 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현재 여권법은 생체정보를 수집할 어떠한 근거도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이어 “최소한의 개인정보보호 기본법의 제정이 필요하며 개인정보 수집을 감독할 기구의 설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전자여권의 조작이나 위조 위험 이외에도 전자여권 RFID(무선인식) 태그에 손상된 데이터를 넣어 검사 시스템을 망가뜨리거나 출입국 감시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퍼뜨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한 컴퓨터 보안전문가는 “악의적인 의도로 전자여권을 사용할 경우 출입국 감시 컴퓨터의 오류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면서 “악성코드 유입 등에 대한 완벽한 대책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도입이 진행되고 있는 전자여권은 소유자의 이름과 생일, 성별, 사진은 물론 안면정보, 홍채, 지문 등 바이오 정보까지 하나의 칩 안에 저장한 뒤 판독기를 통해 바로 식별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 전자여권이 본격 도입되면 전국 기초자치단체 234곳과 광역자치단체 16곳에서 여권 접수창구와 생체정보 등록시스템을 두고 여권접수 업무를 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전자여권을 도입한 국가는 총 30여 개국으로 2003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2005년 영국, 2006년 미국에 이어 최근 홍콩이 발급을 시작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전자여권 발급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최근 도입을 검토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VWP 가입국이다.
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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