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병적인 상태
올바로 알아야 정확한 진단과 치료 가능
지난 칼럼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PTSD)의 개관에 대해서 설명했다. 독자들은 누구나 엄청난 천재지변을 당하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증상들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이런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만약 이러한 병적인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면 진단과 치료 과정을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 학대를 받은 아동이 악몽 때문에 밤잠을 못자고 자꾸 깨고 낮에도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할 때 부모나 선생님들은 ‘충격’을 받아서 그렇다고만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가면 나아지겠지?’라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 아동은 증상이 나아지기 보다는 오히려 증상이 심해져 학교에도 못 갈 수 있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한 여수 화재 사건 피해자들도 담당 공무원들이 이러한 상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많은 오해를 받았었는데 필자가 회진을 하러 갈 때 방문을 지키고 있는 경찰이나 담당 공무원들은 피해자들이 국내체류를 위해서 ‘잠이 안온다, 불안하다, 악몽을 꾼다’는 등 엄살을 피운다며 공공연하게 필자에게 조심해서 진찰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사실 영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로써 공무원이 필자같은 전문가에게 자신의 의학상식을 강요한다는 것이 아주 무례하게 느껴졌고 간만에 한국을 방문한 사람에게 씁씁한 미소를 짓게 하는 일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PTSD가 국방부의 관심사가 된다. 왜냐하면 전투중에 발생한 사건으로 PTSD가 생기고 그 증상으로 병사가 고생을 한다면 국가에서 의료비 지불은 물론 일을 못해서 생기는 피해 수당까지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예가 베트남 전으로서 한국 병사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PTSD로 끔찍한 고생을 경험했고 이에 대한 국가의 보상 정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 적이 있었다.
소아 청소년에서는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의 경험을 가진 소아 청소년 중에서 위와 같은 증상들이 생기기 쉽다. 친구들에게서 심하게 구타를 당한 아동도 학교 가기를 거부하거나 그 애들을 또 만날까봐 두려워서 집밖 외출은 아예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경우 자세히 물어보면 의외로 많은 아동들이 악몽을 꾼다거나 그때 사건이 자꾸 떠오르는 회상flash backs을 경험하고 있다. 이 경우 부모나 선생님들이 자꾸 당사자가 피하는 상황을 억지로 직면하도록 강요하거나 처벌한다면 오히려 증상들이 더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런 것을 보면 꼭 천재지변 뿐만이 아니라 심한 상해나 교통사고 등을 당한 사람도 PTSD가 생길 수 있으므로 지난 칼럼에 소개한 장애 진단 기준에 맞는 증상들이 있다면 PTSD를 한번쯤 고려해 봄직하다.
심각한 교통사고 후에 이러한 증상들이 생긴다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진단을 받아 치료비나 생활비를 돌려 받을 수 있고 또한 상해 후에 이런 증상들이 생겼다면 자신의 피해상황을 의료적인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엄청난 천재지변이나 사고를 겪고 난뒤 악몽,
수면부족, 대인관계 불안 등이 생기는 현상은
정도가 심해지면 이전의 정상활동을 되찾는데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가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장기간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일부의
피해자들은 증상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임상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치료는 너무 빨리 환자를 외상이 있었던 상황으로 회상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어제 건물이 붕괴되어 겨우 구조된 사람이 불안, 초조와 함께 붕괴 당시 상황이 자꾸 떠오르고 눈을 감으면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괴롭다는 호소를 한다고 해도 바로 전문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수면제나 항불안제 등으로 잠을 좀 자고 안정을 찾도록 일차 치료를 한다. 일반적으로 한달 정도 경과를 지켜보는데도 이러한 증상이 경감되지 않거나 더 심해지면 치료를 권해본다.
심리치료는 외상에 촛점을 둔 인지행동 치료(trauma focused cognitive behaviour therapy)가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고 미국에서 개발된 MMDR이라는 치료법도 성인에서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었다.
약물치료로서는 항우울제가 악몽이나 회상flashbacks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고 이차적으로 오는 우울증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병적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 부모의 격려나 질책, 학교의 훈육에만 의존한다면 아픈 아이에게 왜 아프냐고 야단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릴 수 있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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