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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어디서나 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피시 앤 칩스는 증기기관차와 스모그로 대변되는 빅토리안 시대 산업화의 상징적인 음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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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과 감자 튀김 조합 영국서 시작
생선가격 상승·다국적 편리식 등장·건강 해롭다 인식 탓 수요 급감 ‘피시 앤 칩스 fish and chips’는 영국 어디를 가더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친숙한 대중 음식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피시 앤 칩스’는 영국의 ‘전통 음식’이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자리가 합당한 타이틀인지 아닌지는 독자 여러분 각자의 판단으로 남겨두는 바이다.
영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피시 앤 칩스’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조합이 아주 심플한 음식이다. ‘생선과 감자튀김’ 이 얼마나 간단한가. 눈치 빠른 독자 여러분은 ‘생선’ 그리고 ‘감자 튀김’이 본래는 분명 따로 국밥처럼 나눠진 음식이란 것을 금방 알 것이다.
‘피시 앤 칩스’는 원래 생선과 감자 튀김이 서로 별개인 음식이었다. 굳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식으로 태어난 순서를 따진다면, ‘fish- 튀긴 생선’ 보다는 ‘chips-튀긴 감자’가 형님이란 이야기에 필자는 좀 더 무게를 둔다. 그 이유는 이 소탈하지만 폼나지 않는 음식인 원조 튀김 감자가 17세기 벨기에 혹은 프랑스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두 나라중 어느 쪽이 원조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영국의 튀김 감자는 프랑스에서 건너왔다고 하는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영국인들이 ‘chips’라 부르는 이 음식을 미국 사람들은 굳이 ‘French fries’라 부른다.
그렇다면 ‘fish’라 부르는 ‘튀긴 생선’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영국 문학사에 있어서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는 ‘찰스 디킨슨’의 1839년도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보면 ‘fried-fish’에 대한 언급이 있다. 따라서 1830년대에 영국인들은 기름에 튀긴 ‘fried fish’를 먹었다. 신선도나 품질이 떨어지거나 간혹 상한 생선의 냄새를 감추고 하루나 이틀 더 상품성을 연장하기 위해 기름에 튀겨서 팔았다.
조리 방법은 오늘날처럼 생선을 기름에 깊게 튀긴 것이 아니라 아주 얕은 팬에서 가볍게 튀겨서 팔았다. 그리고 튀긴 감자가 아닌 구운 감자를 생선과 함께 팔기도 했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 온다.
생선과 감자 튀김을 함께 음식으로 팔았던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한가지 명확한 것은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영국 북부에서는 cod 보다는 haddock을 선호한다.
랭커셔 지방에서는 hake, 북동부 지역에서는 dogfish를 사용한다.
맛나고 평가가 좋은 훌륭한 ‘피시 앤 칩스’ 가게나 식당은
항상 영국 북부 지역에서 많이 나온다.‘피시 앤 칩스’의 원조 나라가 영국이지만 도대체 영국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각자 주장이 다르다.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영국 남부가 원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런던 동쪽에서 동유럽에서 이민을 온 Joseph Malin이라는 유태인이 생선튀김과 얇게 썬 감자를 팔았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형태의 감자 튀김은 주로 아이리쉬 감자 가계에서만 팔았다. 지금은 런던 북쪽 골더스 그린이 유태인들의 주거지이지만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런던 동쪽 척박한 동네에서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들이다.
둘째, 영국 북쪽이 원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맨체스터 외곽의 Mossley라는 동네에서 John lees라는 사람이 1863년도에 ‘피시 앤 칩스’를 팔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셋째, 풍문이나 떠돌아다니는 이야기가 항상 그러하듯이 랭카셔와 요크셔가 ‘피시 앤 칩스’의 원조라는 이야기 또한 회자되고 있다.
이렇듯 ‘피시 앤 칩스’는 지역색이 강하게 배어 있다. 예를 들면 영국 북부에서는 생선을 사용할 때 cod 보다는 haddock을 선호한다. 랭커셔 지방에서는 hake를 사용하고, 북동부 지역에서는 dogfish를 사용한다. 그래서 맛나고 평가가 좋은 훌륭한 ‘피시 앤 칩스’ 가게나 식당은 항상 영국 북부 지역에서 많이 나온다.
‘피시 앤 칩스’가 영국의 대중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빅토리아 여왕시대 빠르게 진행된 영국의 산업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공업 지역이나 바쁘게 살아야 하는 대도시가 딱 제격인 음식이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영국 중부 그리고 북부 지역에서 많은 산업공단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들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피시 앤 칩스’의 수요가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공장에서 일하는 가정에서 요리할 시간이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며, 빨리 한 끼를 해결하고 일터로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러한 지역의 ‘피시 앤 칩스’ 가게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달래면서 음식을 양념삼아 잡담을 나누기에 아주 안성 맞춤이었다. 이러한 전통과 모습은 아직도 지방에 가면 남아 있다. 증기기관차 그리고 스모그와 더불어 ‘피시 앤 칩스’는 힘차게 뻗어 나갔던 빅토리안 시대의 상징적인 모습들 중 하나이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take away로 팔았던 ‘피시 앤 칩스’는 신문지에 담아서 먹었지만 1980년대 이후 위생상의 이유로 지금의 하얀색 봉지로 대체됐다.
‘피시 앤 칩스’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들의 군량식품으로도 크게 한 몫 했다. 그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윈스턴 처칠 수상은 ‘피시 앤 칩스’를 ‘아주 좋은 친구들’이라며 답례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생선가격 상승과 새롭게 등장한 인도 그리고 중국식 take away의 등장으로 영국의 ‘피시 앤 칩스’는 그 영향력을 잃고 급격한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더구나 최근에는 햄버거, 프라이드 치킨, 피자 등의 다국적 편리식들이 들어와 예전의 그 영화는 다시 찾아 보기 어렵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기름에 튀긴 음식이 건강에 이롭지 않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과 수요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피시 앤 칩스’의 현주소이다.
음식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고 이 칼럼을 시작할 때 독자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렸다. 그 기억은 한 사람의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한 시대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음식은 개인의 삶과 한 시대의 자화상을 동시에 담아내는 좋은 영사기이기도 하다.
영국 사람들에게도 어느 특정한 시대의 사회상을 잘 읽어 볼 수 있는 음식들이 많다. 그 많은 음식들 중 하나가 바로 ‘피시 앤 칩스’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피시 앤 칩스’를 통해 무엇을 보는지 필자는 자못 궁금하다.
글쓴이
정 갑 식 gsjeung@hotmail.com
국립 강원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 출강하던 지난 1997년 영국으로 유학을 와서
음식문화 분야의 박사과정을 거치며 14년째 영국에 생활중.
현재 런던에서 외식산업 컨설턴트로서 Eating out trend를 분석하여
business market road map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음식문화 월간지 ‘에센-ESSEN’에 유럽 음식문화 칼럼을 쓰고 있고
계간지 ‘한국 현대 문학관’에 영국의 유명 작가들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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