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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세상이 다른 사람의 세상과는 다르다는 아주 커다란 명제에 당면하게 된다. 처음에 애기는 이 세상이 자기 세상과 다른 것을 모르고 지내게 되는데 그것은 사실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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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센터에 가장 많이 오는 방문자들이 어쩌면 위의 제목대로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조절하기 위해서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또는 좌절이 너무 심하고 우울해서 죽고 싶다는 등등의 문제를 가지고 온다. 끊임없이 병원을 찾아오는 많은 소아 청소년들은 대개 이런 문제가 부모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테면 애들이 생떼를 너무 많이 써서 말을 안듣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해서 어떻게 훈육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실제로는 어떤 방법을 써서도 도저히 행동 조절이 안되니까 오는 경우가 많다.
세상 일을 뜻대로 하고 싶다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내 세상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세상이기도 하고 또한 그것이 서로 다른 관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 싫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당사자들이나 그것으로 고통받고 있는 부모들도 정확하게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고집이 세거나 너무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하려 한다고 이야기를 하지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은 아주 고상하게 진화된 인류의 마음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을 하지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당면하는 거의 원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세상이 다른 사람의 세상과는 다르다는 아주 커다란 명제에 당면하게 된다. 애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느끼는 것은 추위, 배고픔, 숨쉬는 노동에 따르는 부담 등등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와는 다른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처음에 애기(baby)는 이 세상이 자기 세상과 다른 것을 모르고 지내게 되는데 그것은 사실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유명한 정신분석가인 위니코트는 이것을 ‘엄마의 집착’(maternal preoccupation)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출산 후 초기 3개월 간 엄마 머리속에는 애기 생각밖에 없고 자기 애기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만 사로 잡혀서 마치 그 애기의 마음처럼 그 애기의 손발이 된 것처럼 대신 느껴주고 생각하고 행동해 준다. 당연히 애기는 자신과 엄마를 구분하기가 어렵고 이 세상이 자신의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애기의 생후 초기에 이와같이 완전히 애기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주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왜냐하면 비록 그 결과가 애기가 자신과 타인인 엄마를 구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쩌면 그러한 구별을 한다는 것은 이제 바로 세상으로 나온 애기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힘들고 두려운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적인 망상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끊임 없이 주위 사람까지도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전혀 불안을 조절할 정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라도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또한 여러가지 발달 심리학자들이 연구를 해본 결과는 초기 3개월 까지 애기는 엄마가 자신의 감정 상태와 다른 반응을 보일 때 급격히 싫어하고 회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무슨 애기인가 하면 애기가 한창 울고 있는데 엄마가 웃는 얼굴을 보여 주면 애기가 고개를 돌려버리고 더 심하게 울고 오히려 엄마가 우는 표정을 보여주고 달래주면 울음을 그칠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든 생애 초기의 아기들은 자신들과 다른 감정 다른 생각을 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밟아가는 아동들은 이 시기를 넘어가면 자신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대상에 대해 지겨움을 느끼고 오히려 다른 반응을 재미있어 하고 그런 대상을 능동적으로 찾아가게 된다. 아니 어쩌면 이젠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환(transition) 과정에 장애가 있을 때 자신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다른 감정을 느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자꾸 상대방을 컨트롤하려 한다. 이러한 콘트롤을 능동적으로 하면 떼를 쓰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수동적(?)으로 하면 자기 세상을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만 한정해서 자신이 관계를 가지는 즉 자신의 세계를 아주 좁게 밀폐시키고 그 안에서만 있으려고 할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자페경항이 있는 아동, 청소년들이다. 자기 방에 물건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으면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으려고 하고 자신은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구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물건을 집어 던진다거나 고함을 지른다거나 해서 꼭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쩌면 이런 경향은 자폐 경향이 있는 사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방식대로만 살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존중해 주지 못하는 사람은 주위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상대방이 화를 내고 있으면 빨리 화를 풀라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의 화내는 마음을 존중하기 어려워서 그럴수도 있고 어쩌면 그 상대방이 자기 생각대로 빨리 화를 풀지 않아서 화를 낼 수도 있다.
성인에서 이런 자기의 마음과 남의 마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현상은 여러 성격장애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구별이 완전히 무너지는 병적 상황이 정신병이다. 바깥 세상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생각한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 때 꿈과 현실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꾸는 악몽이 그냥 현실이고 우리가 상상하는 끔찍하고 무서운 일들이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는 이런 정신병적인 망상에 시달리는 불안을 가지는 환자들은 웬만한 약물치료에도 불안이 잘 줄어 들지 않고 끊임 없이 주위 사람까지도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서 전혀 불안을 조절할 정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라도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때론 이런 자신과 남의 마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현상은 격렬한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고 예를 들어 자신이 누구 대신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자신과 남의 구별이 없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이렇게 자신과 남의 구별이 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상대방이 움직여야만 한다고 믿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생후 3개월때 시작된 ‘다른 사람 마음 헤아리기’는 인간의 마음성장에서 아주 중요한 일면이면서 그냥 습득된 것이 아니고 엄마의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 것이고 그만큼 그 시기의 엄마의 마음상태가 아동의 심리 발달에도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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