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딸아이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퇴근할 때 잊지 말고 단풍잎 좀 주워 오라고
내일 숙제란다 참 아름다운 가을 숙제도 다 있구나
사랑이란 명령보다 무서운 것
나는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맴돈다 고추잠자리처럼
노란 색종이로 꾸며 놓은 듯한 은행잎이
딸아이가 좀 더 어릴 적 다니던 유치원 풍경 같다
이제는 일 학년 아직 책가방도 이기기 힘든 꼬마이지만
세상은 시작되었다 분량 많은 숙제처럼
퇴근 버스에서 내려 건널목 앞에 서면
교회의 환한 불빛에 물든 가을 나무들이
고요하게 서서 기도하고 있다
딸아이는 도화지에다 감나무 잎도 붙이고
그 밑에 한두 줄 설명을 달아 놓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단풍잎을 꺼내어 준다
문방구에서도 살 수 없는 이 작은 이파리가
딸아이에게는 색종이보다 더 좋은 모양이다
너는 숙제이지만 나는 사랑이란다
단풍잎을 도화지에 붙이면서
딸아이의 예쁜 손도 함께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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