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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과 복례의 선물
코리안위클리  2003/08/14, 04:05:12   
글/ 채우병(상록회장)


▲ 독립운동의 근거지 중국 중경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광복을 경축하는 임시정부요인들

나라는 쇠사슬로 묶이고 민족은 각기 족쇄로 채워져 어둡고 괴롭던 36년. 마침내 1945년 8월15일 그 암흑의 세계에서 벗어나 밝은 자유를 얻은 것이다.
삼천리 강산의 만물이 춤을 추던 축복의 즐거움을 온 겨레에 안겨주던 8·15 광복. 이로써 천황을 신이라 내세워 꿈을 꾸던 일본 제국의 아시아 정복의 야심은 좌절되었고 민족 말살의 흉계는 저지되었다.
당시 형무소 문을 박차고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독립투사들의 소리는 자유의 종소리와 더불어 삼천리 방방곡곡에 축제의 분위기를 더 한층 열광케 하였다.
한편 나라가 없던 왜정시대에 태어나 왜놈의 교육을 받고 자란 당시 소년이던 필자는 광복과 자유 그리고 독립,  이 모든 것에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허탈감과 예측하지 못하는 앞날의 동향에 어리둥절하였을 뿐이었다. 더구나 매일 정한수 떠놓고 북 만주 땅에 징병으로 출정한 아들의 무운장구를 조석으로 비시던 어머님께서는 일본이 이겨야만 아들이 돌아올 것으로만 알고 계시다가 일본 패전의 소식에 아들이 죽을 줄만 알고 기절하셨다가 의사의 왕진으로 깨어나셔서 자초지정 설명을 들으시고 안심하시기까지 했다. 이제 곧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 때문에 잠 못 이루시고 날마다 기차역에 나가시기도 했다. 결국 돌아온 아들을 부여 앉고 오열하시던 그 당시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북해도 탄광으로 징용 간 남편을 둔 한섭이 어머니는 이제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말만 듣고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김치를 담그려고 바구니를 들고 열무 뜯으려 콩밭으로 쏜살같이 몸을 흔들며 뛰던 그 모습. 또한 어느새 기발하게 준비된 농악의 요란스런 장단에 춤을 추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촌로들, 징병이나 징용을 피하여 곳곳에 숨어 있다가 뛰쳐 나와 어느새 만들었는지 태극기를 흔들며 “이제는 살았다”하고 만세를 외치던 젊은이들, 이것이 광복과 자유를 찾은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광복의 기쁨 속에 끼인 비극의 사연
그런데 이와 같이 광복의 감격 속에서도 복례만은 기쁨도 즐거움도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수심이 가득 차 앞으로 닥쳐올 악몽에 두려워할 뿐이었다.
일찍이 엄마를 잃은 그녀는 늙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돌보며 가정을 이끄는 처녀 가장. 예쁜 얼굴과 몸이 단정하고 부지런하여 마을에서도 칭찬을 받아가며 우리집을 위주로 이집 저집 일을 도와주며 가계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다가 당시 정신대에 끌려갈 것을 걱정하여 이장의 주선으로 동네의 착실한 노총각 춘삼이와 결혼을 했다.
신혼생활의 단꿈도 가시기 전에 평소 그녀에게 야심을 품고 치근대던 파출소 밀대 노릇을 하던 떡정이는 솔가지 꺽어다가 울타리를 고친 것을 파출소에 고발, 춘삼이는 산림용 위반으로 끌려가 혹독한 매를 맞고 북해도 탄광에 징용을 자원한다는 조건으로 풀려 나와 탄광으로 끌려 간지 이제 2년이 지난 터였다.
춘삼이가 끌려 간지 6개월 지날 무렵 떡정은 복례에게 춘삼으로부터 소포가 파출소에 와 있으니 찾아가라는 허위 전갈을 하고 그녀가 덕대골을 지나갈 무렵 숨어있다가 그녀를 덥쳐 후진 골목으로 끌고 가서 겁탈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흐트러진 머리와 끊어진 몸배 끈을 손으로 움켜지고 허둥지둥 뛰어와 흐느끼며 매달려 우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고 가히 짐작하시는 어머니께서는 “못된 것… 못된 것…” 하시면서 그녀를 위로해 주었으나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불행하게도 그일로 임신, 몸매에 표가 날 무렵 우리 마을에서 떠나 얼마 있다가 딸을 순산하여 백일이 되었을 무렵 견디기 힘겨운 생활고에 다시금 아이를 업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 무렵 승리를 장담하던 일본은 점차 패전해 가고 있었다. 일본 패망의 전주곡인양 한반도의 상공에는 B29비행기가 흰구름을 뿜으며 유유히 지나고 일본은 최후의 발악으로 우리 민족을 더욱 견디기 힘들게 들볶아 댔다.
갖은 수단으로 민족 말살의 방법을 취할 때 위대한 과학의 힘은 일본의 본토사수의 결의도 무참하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 세례를 주었고 일본은 결국 손을 들고 만 것이다. 당시 날이 갈수록 광복과 자유의 열광은 더하여 갔으며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기차는 중국이나 만주, 또는 북해도 탄광에서 끌려갔던 징용자와 징병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로 북적댔고 지붕에까지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는 무사하게 돌아온 아들을 붙들고 오열하는 어머니, 돌아온 남편 앞에 그리움을 못이겨 훌쩍 훌쩍 울면서 바라보는 아낙네, 구사일생으로 지옥에서 돌아왔지만 무슨 큰 죄나 지은듯이 고개를 숙이고 남의 눈을 피하는 정신대 피해자들의 모습이 뒤엉켜 있었다.

일부종사 부도를 생명과 바꾼 복례
세월 속에 삶의 모습이 많이 변한 지금은 현실적으로 이해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여자의 혼전 순결이나 일부종사의 부도는 생명과 같았으며 그래서 자의나 타의를 막론하고 남편 아닌 타인의 자식을 분만하거나 처녀가 순결을 상실하면 그 당시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수치로 버림받는 처지였다.
복례에게는 이 큰 고민을 과연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느냐는 생각뿐, 사랑하는 남편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기쁨은 커녕 가슴만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이 되었다. 춘삼의 도착 예정일을 전해들은 복례는 어린 것을 등에 업고 멀리에서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며 기차에서 쏟아져 내리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맨 마지막에 등에 큰 보따리를 매고 두리번거리는 춘삼. 그는 반가이 맞이해 줄 복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복례는 금방이라도 급히 뛰어가 매달리면서 그리웠던 지난날을 하소연하고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겠지만 더렵혀진 자신의 몸을 다시는 접근할 수 없다고 결심 한 듯 힘없는 걸음으로 한걸음 한 걸음 정처 없이 걸어가며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달려가는 춘삼이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춘삼이는 두리번 거리며 복례를 찾았으나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알려줘야 겠다고 판단한 동네 이장이 술을 대접하면서 복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다 털어 놓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춘삼은 연거푸 막걸리를 퍼 마시며 그래도 얼굴이나 보아야 한다고 ‘빌어먹을 년’ ‘망할 놈의 여편네’ 하면서 실신한 사람처럼 “복례야 복례야”를 부르면서 땅을 치며 소리소리 질러댔다. 그래도 끝끝내 복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덕대골 그 겁탈당한 현장에서 많은 양잿물을 마시고 죽은 복례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춘삼이 썩어가는 시체를 부둥켜 앉고 “복례야 복례야”를 외치면서 “네가 기생갈보짓을 하면 어떻고 새끼를 몇을 낳았으면 그게 무슨 상관이냐 다 왜놈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하며 엉엉 우는 그 광경은 쳐다보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복례의 선물 ‘예선’
몇 일을 두고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던 춘삼이는 결국 눈에 살기를 띄며 낫을 들고서 후닥닥 뒤쳐 나갔다. 아마도 떡정이를 해치러 나가는 모양이었으나 누구 하나 감히 말리려 하지 못할 기세였다. 그런데 삼일 후 춘삼이는 어디에선가 복례가 낳은 아기를 안고 터덕터덕 시름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복례의 선물이라는 뜻의 예선이라는 이름을 지어 복례를 대신하여 극진히 잘 키우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그후 춘삼이는 변덕스러울 정도로 예선이를 귀여워하고 그 키우는 정성이 대단하였으며 예선이는 슬기롭게 잘 자라고 있었다. 해가 지난 어느 날 떡정이는 좌익 폭동의 앞잡이를 섰다가 진압하는 경찰의 유탄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광복과 자유 그리고 독립 이 모든 환희와 기쁨 속에는 이런 비극의 사연도 더러는 끼어 있었던 것이다. 광복의 축제는 무르익어 갔다. 우리로서는 처음 듣는 독립투사나 지도자,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이름이 거명되며 곳곳 현수막에는 광복만세, 자주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등 이제라도 곧 독립국으로서의 면모가 갖추어지는 것 같던 그때, 승리 연합국인 미국과 소련은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한다는 조건은 뒤에 두고 임자 없는 망가진 나라인양 한반도를 삼팔선을 기준으로 양분, 그들의 전리품으로 차지하여 그들 나름대로 미소 공동위원회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요리하고 있었다.
결국 미·소 양국의 작품인 삼팔선은 민족 역사의 또한번의 불행을 창조하여 분단국가를 만들어 민족 상잔의 6.25전쟁 비극을 연출케 했고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주적으로 서로 대치하면서 내려오게 한 것이다.

원죄보다 더 큰 죄값
세월이 많이 흘렀다. 강산도 많이 변하였다. 필자가 조국을 떠나는 이민 수속을 마치고 선산에 성묘차 고향을 방문하였을 때 죽마고우와 식사를 같이하며 이런저런 고향 소식을 묻다가 그 후의 춘삼의 생활을 자세히 들을 수가 있었다.
복례를 잃은 마음의 상처를 예선을 키우는 재미로 메꾸어가며 산 춘삼은 처남과 식당을 경영하면서 잘 살고 있으며 예선이 춘삼이의 지극정성으로 슬기롭게 자라 서울의 명문대학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한다. 예선이 많은 학문중에 구태여 신학을 택한 이유는 ‘나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데 인간의 원죄보다 더 큰 죄를 겸하여 태어났다’며 ‘그런 값을 치러야 한다’고 하면서 아프리카의 선교사 파견을 자청하였다 한다. 신생국가의 2세들은 이와 같이 그들의 생각대로 세계를 향하여 뻗어나아가고 있다.
예선이가 떠나던 그날, 그 옛날 복례가 멀리서 춘삼이와 작별하던 그 정거장에는 이제 예쁘게 자란 예선이 춘삼의 팔에 매달려 흐느끼며 “아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게 사세요”하고 작별인사를 했다한다. 아마도 엄마를 그리며 홀로 순애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기를 키워준 아빠에 대한 진실한 감사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런데 말이다. 춘삼이 예선을 보내고 되돌아서는데 너무나 그 모습이 정막해 보이더라” 하는 죽마고우의 말이 끝났음에도 나는 그 옛날 엉엉 울며 복례를 부르던 그 모습이 생각 나 정신없이 멍하니 한참이나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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