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겨울 풍경화를 그리며···
윤응환 / 주재원, 현대건설 런던지사 근무중
어둑한 저녁
흰 눈이 내린다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내린다
아득한 하늘가에서 나풀나풀
크리스마스 추리 위로
십자가 선명한 교회종탑 위로
벙어리장갑을 끼고도 손을 호호 불고있는
어린 꼬마들의 꼬깔 모자위로
은총이 내리듯 내려앉고 있다.
열한 살 짜리 딸아이가 그리고 있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면서
이리 쉽게 볼 수 있는 눈 오는 날의 풍경화를
내내 그리워했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붓에 흰 물감을 듬뿍 적셔서
검은 켄트지에 마구 뿌려대자
세상은 금세 흰 눈보라에 휩쓸리고
온통 하얀 동화 속의 설국이 된다.
수채화 붓끝에 매달렸던
수성 물감들의 적막한 고공낙하,
고요한 밤 하늘에 동심을 수놓듯
수천의 어린 천사들이
옷자락 희게 날리며 춤을 춘다.
언제였던가
우리가 그리던 눈 오는 날의 그 초가지붕과
초롱불 환히 격자무늬 창살에 새어 나오는
장독 항아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뜨락에
연홍 달빛 포근히 내리는 겨울 밤의 풍경화는.
어디로 갔는가
눈 덮인 첩첩 산골마을 외딴 오두막집 한 채
햇살 미끄러진 언덕배기에선
토끼털 귀마개와 뜨개질 엉성한 스웨터를 입은
오누이가 다정이 눈썰매를 타고
외로운 노루 한 마리 귀를 쫑긋 세우고
길을 헤매는 어느 슬프도록 적막한 산골
그 겨울의 풍경화여.
아이야
내 어린 상실의 겨울에는
반달 초가지붕 위에 장독대 위에
밤 새도록 소복소복 흰 눈이 전설처럼 내리고
청솔가지에는 눈꽃이 시리도록
은빛으로 피어났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