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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더 이상 영국이 아니다
코리안위클리  2012/01/25, 14:35:40   
▲ 세계적 금융 중심가인 런던의 시티 전경. 곳곳에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오른쪽 타원형으로 솟은 건물이 ‘어린 오이’로 불리는 스위스 재보험공사 건물이다.

주택 시대 가고 아파트 인기 시내 한복판에 초고층빌딩
런던 곳곳에 외국인 타운 공공기관은 속속 지방으로

‘런던에 싫증이 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이 난 사람이다(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라는 말은 유명하다. 여기에 ‘런던에는 인간이 삶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게 있다(For there is in London all that life can afford)’는 말이 뒤따른다. 영어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1709~1784)이 1777년에 한 이 말은 아직 유효하다. 정말 런던의 매력은 다양성에 있다. 300여개의 언어가 사용되며, 런더너(Londener)의 58%가 외국 출생이라 할 정도로 인종도 다양하다는 건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가 잘 쓰는 말인 ‘런던은 하루에는 다 봐도 한 달 만에는 다 못 본다’도 런던의 다양성을 가리킨다. 그만큼 런던은 많은 얼굴을 갖고 있고,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먹을 것도 많다.

런던을 방문하는 외부인은 흔히 런던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런더너들은 런던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지 잘 안다. 런던은 얼핏 보기에는 죽어 있는 듯 침체된 것처럼 보이나 런던만큼 역동적인 도시도 드물다. 세계 어디를 다녀 봐도 런던만큼 공사 크레인이 공중에 많이 보이는 곳은 드물다. 특히 금융가가 있는 시티 쪽은, 다이애나와 찰스가 결혼했던 세인트폴 대성당의 거대한 둥근 돔 지붕 옆으로 고공 크레인이 무슨 스타워즈 영화의 로봇들처럼 많이 서 있다.

런던의 역사가 시작된 고대 로마 점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시티의 역사는 거의 2000년이 되고, 시티의 건물들 나이는 400~500년은 보통이다. 그 사이로 새로운 건물이 올라 가고 있고,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기 위한 공사들이 7월 27일 런던올림픽 개막을 앞둔 지금도 부단하게 진행되고 있다.

87층 건물 새 랜드마크로

시티에 있는 건물들 모두가 오래된 것은 아니다. 얼핏 봐서 역사가 있는 듯한 건물도 알고 보면 아주 최근에 지어진 것도 많다. 한때 뉴욕이나 프랑크푸르트에 밀리던 런던이 1986년 영국 금융규제 완화 조치인 ‘빅뱅(Big Bang)’ 이후 다시 세계 금융중심지로 뜬 이후 계속돼온 시티 지역의 부동산 붐 때문이다. 전혀 시티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스위스 재보험 공사 건물도 이젠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거킨(Gerki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어린 오이’ 모양을 닮았다. 템스강 건너 런던브리지 옆에 세워지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삼각형 유리 모양의 310m 87층 높이의 건물인 ‘더 샤드 런던브리지(The Shard London Bridge)’도 런던의 또 다른 이정표가 될 듯하다. 전통적인 예술감각으로 보면 너무 위압적이라 런던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그래도 결국은 여기저기에 계속 지어지는 마천루군들과 어울려 새로운 런던을 이룰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런던의 고질병인 사무실 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새로운 건물만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옛 건물을 수리하고 교묘하게 증축해서 사용하는 방식도 많다. 영국 건축 자재 중에는 새것보다 더 비싼 중고 자재들이 많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아르데코 시대 창틀이나 수백 년 된 실내 벽난로나 오크 패널(oak panel)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심지어는 재생벽돌(reclaimed brick)마저 인기다. 이 벽돌로 건물 외부 장식을 하면 ‘오래되어도 새것 같고, 새것도 오래된 것처럼’이라는 한국 의류 브랜드의 선전처럼 금방 지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주위의 고색창연한 건물과 잘 조화를 이루게 된다.

런던 사람들은 오래되어 여러 가지로 불편해도 아예 허물어 버리고 다시 짓지 않는다. 필요하면 바깥 외벽만 남겨 놓고 실내를 완전히 고치든지 대로변 쪽 벽 한 면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완벽하게 다시 짓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게 해서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런던도 가만히 보면 계속해서 바뀌고 변한다. 런던은 가만히 앉아서 옛날의 영광만 뜯어 먹고 사는 게 아니다. 런던은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변한다.

원칙이 부서지고 있다

‘영국에는 영국 요리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구도 그 이유를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한다. 영국인 놀리기를 거국적인 취미로 하는 프랑스인은 이를 영국인의 저급한 입맛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욕망을 철저히 죄악시 한 청교도 정신이 영국인의 식탐을 억누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도 하고, 일조량이 모자라는 척박한 환경 때문에 워낙 먹을 것이 부족해서라고도 한다. 영국인은 요리에 목숨을 거는 이웃 프랑스인과는 달리 음식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것이라고 점잖게 믿고 싶어한다. 어쨌거나 영국 전통요리는 없다. 그 보상으로 영국, 특히 런던에는 세계 음식 중 없는 것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 음식도 찾을 수 있다. 런던에는 워낙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살고 있고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 오니 어떤 종류의 음식도 수요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관광으로 온 도시가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런던에서 식당과 호텔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런던은 수요에 비해 건물 면적이 턱없이 부족해 임대료가 아주 높고 가게 프리미엄이 말도 못할 정도로 비싸다. 특히 식당과 호텔 부족은 런던을 세계에서 가장 관광하기에 비싼 도시로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영국 특유의 건축 허가 원칙은 식당과 호텔 부족을 부채질해 왔다.

런던의 건축 허가 요건은 정말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릴 정도로 까다롭다. 각 건물은 용도가 지정되어 있고 그 용도를 바꾸고자 하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상점 용도의 건물을 식당으로 바꾸는 과정은 정말 영국인 말마따나 ‘아이 하나 키우는 것만큼’ 힘들다. 사무실 건물을 호텔 용도로 바꾸는 것이나, 상점용 면적을 식당 용도로 바꾸고자 할 때는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 옛날에는 기존 식당 옆에는 새 식당 허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주택가, 사무실, 상가, 식당, 기타 편의시설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이 적당히 어우러진 시가지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에는 먹자골목이나 자동차부품가게 골목 같은 전문적인 상가가 별로 없었다.

요즘 보면 이런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기존 식당 바로 옆에 새 식당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 런던 어디서나 보인다. 런던의 엄격했던 건축 규정이 시대요구에 따라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음식에 보수적이던 영국인들도 이제 외국 음식의 맛을 알게 되고 동시에 용감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추어 식당이 쉽게 새로 생길 수 있게 런던 각 행정구청들마저 규제 완화를 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워져 문을 닫는 상점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움직이지 않던 런던 시청이나 구청을 바꾸기 시작한 때문이다. 옛날보다 상가 건물을 식당 용도로 바꾸기가 쉬워졌고, 올림픽을 맞아 사무실 건물을 호텔로 개조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템스강변이 고급 아파트촌으로

굳이 올림픽이 아니라 해도 런던의 호텔비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싸다. 런던 시내에 호텔을 지을 땅도 없고 기존 건물을 부수고 고층 호텔을 짓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영국은 기본적으로 건축 허가를, 특히 호텔이나 사무실 건축 허가를 내줄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이 교통량 유발 문제이다. 건물 신축으로 인해 추가 발생될 교통량이 기존 도로망 한계를 넘어서면 허가가 나지 않는다. 요즘은 이런 원칙도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시내 한복판에 엄청난 교통량을 유발시킬 마천루가 들어서고 있다. 결국 원칙도 시대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굽히면서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시내로 진입하는 자동차의 수를 줄이기 위해 하루 2만원에 해당하는 혼잡세를 부과한다든지 주차비를 살인적으로 올려 감히 차를 가지고 시내에 출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식이다. 운전자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조절하지,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는 사무실을 허가하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 런던 시청의 정책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인은 고층 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대도시에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인구에 비해 가용 면적이 넓은 국토가 있어 그럴 필요도 없었다. 2차 대전 직후 온 세계가 아파트 건축에 열광할 때도 영국인은 아파트라고는 무주택 서민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를 지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 이제 바뀌고 있다. 최근까지 이어져온 부동산 경기는 주택 가격을 런던의 경우 지난 삼십 년간 거의 5배 이상 끌어올려 부동산이 아주 좋은 사업이 되고 말았다. 템스강변에 들어서기 시작한 고급 아파트들은 런던의 주거 원칙을 바꾸어 버렸다. 아파트는 더 이상 서민용이 아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 전원 생활을 전혀 모르는 대도시 출신이나, 출퇴근을 싫어하는 여피들은 더 이상 뒤에 아담한 정원이 딸리고 앞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영국 전통의 주택을 고집하지 않는다.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템스강변 양쪽에 새로 지어진 겨우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의 고급 아파트는 그들의 아버지들이 평생 벌어서 장만한 교외 주택 두 채 값이다. 이제 아파트는 부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템스강변을 따라 신흥부자촌이 지어지고 있다.

런던 부동산 외국인이 점령

이렇게 바뀌는 이유 중에는 런던 시민의 구성원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있다. 어느 나라 수도나 마찬가지지만 영국인 사이에는 “런던은 더 이상 영국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돈다. 하긴 프랑스 사람들도 “파리지앵은 프랑스인이 아니다”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말하긴 했다. 런더너의 반 이상이 영국인이 아니고, 런던 부동산 중 외국인 소유가 수년 전에 이미 50%를 넘었다는 통계가 있다. 아파트가 익숙한 부자 외국인들에게는 강변 아파트가 더 익숙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외국인에게 있어 영국이라는 나라는 참 편리하고 매력적이다.

세계 어느 나라 신흥 부호들에게도 자식 영어 교육은 영국에 부동산을 사야 할 최상의 이유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을 종주국으로 여기는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과거 식민지 국가들과 아프리카를 비롯해 동구와 동남아부터 이제는 남미의 신흥부자들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런던은 아주 매력적인 나라이고 도시이다. 빈민가가 없는 거의 유일한 세계적 도시이고, 치안이 확보되어 있어 야간 외출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국제화가 되어 있는 곳이 런던이다.

런던 부동산 가격은 세계적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떨어져 본 적이 없어 투자 측면에서도 매력이 있다. 외환규제가 없어 재산이동이 자유롭고, 세계적 상점들이 다 있어 쇼핑의 천국이라는 점과, 각종 문화 혜택이 어느 도시보다 풍부한 것도 외국 부호들의 유인 요인이다. 자신들의 나라와는 달리 정치가 안정되어 있다는 점도 상당한 효과를 보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심한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비자 없이 자동차 구입, 운전 면허 획득, 심지어 부동산 구입과 소유까지 아무런 제한이 없는 이 나라는 참으로 매력 있다. 그래서 런던의 부동산은 외국인에 의해 점령되고 있고 그들을 위해 시내 한복판에 천문학적 가격의 아파트가 옛날 건물을 부수고 지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완공해 분양을 한 해롯백화점과 하이드파크 사이의 최고급 호화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는 2500억원에 팔렸고, 같은 아파트의 원룸은 120억원에 분양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 우파 신문 ‘더선’의 표현대로 ‘외국인들의 습격’은 이런 호화판 부동산 투자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런던 곳곳에 이민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런던 남서부 뉴몰던에 유럽 최대의 한인타운이 자리잡은 것은 이제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영국인 사회에서도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런던 곳곳에 외국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런던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런던 동부 그리니치 지역에는 베트남인, 올림픽이 열릴 동부지역 웨스햄 근처에는 인도인·파키스탄인·방글라데시인, 공항을 가는 서부 런던 햄머스미스 지역에 폴란드인, 북부 런던에 유대인과 일본인 등 곳곳에 이민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인도 출신만 빼고는 대개 그냥 영국인들 사이에 섞여 살았으나 언제부턴가 런던에는 외국인들이 눈에 띄게 많이 사는 지역이 생겨나고 있다. 자신들만의 식품점과 식당을 비롯해 신문까지 발행하면서 각지에서 자기 색을 가지고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런던의 모습도 많이 바뀌고 있다.

런던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나서 생기는 파장으로, 런던이 꼭 필요로 하는 기본 기능 전문직(key workers)들이 살 집이 없어지고 있다는 문제를 들 수 있다. 경찰, 소방수, 앰뷸런스 기사를 비롯한 의료관련 기능직, 청소부 같은 노동 계급의 집이 없어져 문제다. 영국의 주택지를 보면 참 이상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동네에 크고 작은 집들이 나란히 한 골목 안에 골고루 섞여 있다. 같이 살면 위화감을 느낄 그런 크기의 집들이 이웃을 하고 있는데도 문제 없이 살아가게 집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런던에 슬럼이 없는 이유라고도 얘길한다. 한곳에 좋은 집만 모아 놓고 다른 한곳에는 가난한 집들만 모아 놓으면 슬럼화를 부추긴다는 말이다. 런던에 있는 정부기관들은 대(對)의회기능과 외교 관련을 빼고 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실질적인 서류만 만진다. 대신 중앙부서 기능이 지방으로 많이 분산되어 있다. 지방에 있는 정부 공무원들이 본부로 발령을 받으면 런던 수당이란 것을 받고 런던으로 온다. 그만큼 런던이 물가가 비싸고 임대료가 비싸 같은 봉급으로는 살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영국 공무원들은 런던 근무를 반기지 않는다. 그만큼 런던은 집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물가도 다른 곳에 비해 비싸서 살 곳이 못된다는 게 영국인들의 인식이다. 대신 런던은 외국인들의 소유가 돼 가고 있다.

펍·홍차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런던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외형적 면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런더너들의 삶의 기본이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 전통 펍(pub)이 문을 닫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영국인이 고단한 삶 속에서 쉬고 살아가는 힘을 얻고 심지어는 영국인의 영혼이자 허파라고 하는 펍이 장사가 안돼서 문을 닫고 있다. 젊은 영국인마저 펍은 이제 더 이상 쿨한 곳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펍은 영국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동네사람들이 퇴근 후 모여 술도 한잔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동네 일도 논의하고 친구도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는 동네 공회당 혹은 사랑방과 같은 곳이었다. 이제 이런 펍들이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다. 이런 펍을 무너뜨려 주택을 지은 사례가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지난 십 년간 열 곳이 넘는다. 젊은이들에게는 전통적 분위기의 펍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카페나 바가 훨씬 더 인기다. 더군다나 런던을 이루고 있는 외국 출신들에게 펍은 자신들 삶의 중심이 아니다. 이웃과 안면이나 말을 트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외국인은 런던에서 펍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나 가까운 친지들과 분위기 있는 카페나 바에서 조용히 한잔을 하는 것이 좋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런더너들이 쉬러 가는 장소뿐만이 아니다. 휴식을 위한, 이른바 ‘마시는 문화’에서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전쟁 중에도 티 타임을 가지기 위해 잠시 휴전을 할 정도로 홍차는 영국인들에게 중요한 생활의 일부였다. 그런 영국인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도 한참 되었다. 내가 처음 영국에 온 30년 전에는 커피를 마시려면 맥도날드나 KFC를 찾아가야 가능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런던 시내 어디서고 머리만 돌리면 커피집이 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는 홍차를 마시는지 몰라도 밖에서는 이제 홍차를 마시지 않는 듯하다. 밀크를 탄 홍차를 마시지 않는 영국인과 펍에 가지 않는 영국인을 과연 더 이상 영국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여기서 상당히 오래 살아온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런던이 두 개의 도시로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국인들은 잘 모른다. ‘시티(City)’ 혹은 ‘뱅크(Bank)’로 불리는 금융의 중심지가 있는 ‘런던시(City of London)’와, 상업과 공연가와 정부기관들이 모여 있는 웨스트민스터시(City of Westminster)’가 합쳐져서 우리가 아는 영국의 수도 런던을 이루고 있다. 그중 시티는 고대 로마인이 만든 아주 오랜 도시이다. ‘스퀘어 마일 시티(square mile city)’라 불리는 사방 1마일 정사각형의 작은 지역이 시티이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다. 금융 빅뱅 전까지만 해도 모든 금융기관의 본사는 법으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정해져 있을 정도로 시티는 금융의 중심지였다. 시티가 영국 국민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금융기관, 시티 탈출 시작되나

이런 시티의 역할도 사실 대처 보수당 정부가 집권해 그 이전 노동당 정부의 규제를 풀기 전까지는 뉴욕이나 프랑크푸르트 혹은 도쿄에 위협받아 온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처 정부가 금융에 관한 모든 규제를 풀어 외환이동이 자유롭고 외국 금융기관의 영업활동을 자유롭게 해주면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유럽 정부들이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규제를 들먹이고 있다. 은행원들의 월급뿐만 아니라 과도한 보너스의 지급을 규제하는 것을 비롯해 부자세 신설, 최고 소득세율 인상, 소위 ‘로빈후드세’로 불리는 ‘토빈 세(Tobin Tax·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등의 실행을 앞두고 있다. 실행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일을 필요로 하겠지만 61%의 유럽인들이 찬성하고 특히 65%의 영국인이 FTT(Financial Transaction Tax)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국은 시행이 되긴 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금융시장 규제에 소극적이었고 그런 전통은 보수당 정부에서는 더욱 강했다. 더군다나 이번 경제위기 전부터 영국 정부가 시티 외환 시장에 대한 규제나 간섭을 들먹일 때마다 런던의 자유로운 영업 조건을 이유로 이주해온 유럽의 젊은 금융인들은 자신들의 본거지를 규제가 없는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영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런 압박이 먹혀서인지 모르나 아직 제대로 시행된 규제가 없긴 없었다. 이번 토빈세에 대해서도 영국 정부는 유럽 전체를 비롯해 세계적 동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면서 선뜻 찬성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러한 규제가 어설프게 이루어지면 제일 먼저 크게 피해를 볼 나라가 영국이라는 점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올해 런던에는 여러 가지 큰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5월 초에는 현재 보수당 출신 시장 보리스 존슨의 재선 선거가 있고, 6월 초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식이 크게 벌어진다. 7월 말에는 런던올림픽이 드디어 열린다. 경제적 어려움이 전적으로 보리스 존슨 시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다시 노동당 극좌파인 전임 시장 캔 리빙스턴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이 유력하다. 캐머런 총리의 보수당 정부로 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 지금 런던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올해 런던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당한 격변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일단 잡혀 있는 일정들은 축제 무드 일변도이긴 하나 작년 런던폭동 후유증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세계 경제의 어려움, 특히 유로화존의 어려움이 직접적으로 영국을 덮칠 가능성도 있어 비록 유로존 밖에 있긴 해도 영국의 심장 런던의 위기감은 남다른 듯하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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