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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90% “나는 기독교도이자 무신론자”
코리안위클리  2012/03/21, 06:40:52   
▲ 하원에서 연설 중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그는 여왕이자 성공회 수장이다.
진화론 대 창조론 논쟁 영국사회 분위기

영국인 90%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믿고 있고 동시에 영국인 90%는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자부한다는 말이 있다. 말이 안 되는 이 말이 사실 영국인의 종교관을 가장 잘 나타낸다. 생활 속에서는 기독교적인 시스템에 길들여져 그렇게 행동하지만 사실 생각이나 사상은 “신이 어디 있어?”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영국인 자신들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신이 있다고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세련됐다(To believe there is the God, we are too cool)’이다. 그래서 평소 종교적 신념을 얘기하는 것을 공식 석상에서 섹스 얘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촌스러운 짓이라 여긴다. 그러나 평생 교회를 세 번밖에 가지 않으면서도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기독교’라고 한다.
그 세 번도 자기 의사에 따라 가는 경우는 결혼식 딱 한 번뿐이다. 나머지 두 번인 유아영세와 장례식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아이 영세도 받게 하지 않는다. 결혼도 번거로운 성당이 아니라 그냥 구청에 가서 하고 만다. 뚜렷한 대안이 없는 장례식 때나 겨우 성당을 찾는 정도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수장일 정도로 영국은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다. 그런 나라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는 선택 사항이지 필수 사항이 아니라고 여겨진 지 상당히 오래됐다. 영국 성당은 노인들과 외국인으로 가득할 뿐이다. 신부가 없어 문을 닫는 성당이 부지기수이고 심지어 주중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주말에만 성직자로 활동하는 파트타임 신부도 있다.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이 성공회 여자 사제 임명이다. 영국의 여성 사제는 결코 여성의 지위 향상 때문에 나온 게 아니다. 영국인의 삶에서 기독교는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너무나 오랫동안 습관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왔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 논쟁의 대상이라고조차 여기지 않던 종교적인 문제가 불거져 영국을 달구고 있다.

신이 아닌 습관에 기도

영국 비드포드(Bideford) 지방의회에서 회의 시작 전 행해오던 공식 절차인 기도가 인권적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종교적인 특권에 반대하는 세속주의협회(NSS)’의 주장에 최근 법원이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판사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오던 기도가 지방의회법상 법적 근거가 없고 의원들로 하여금 참석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이 아직 영국 사회나 영국인 사이에 큰 영향이나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영국인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일반인은 ‘아니! 아직도 그런 전통이나 절차가 남아 있어?’라고 일단 놀라움으로 반응하고, 가만히 돌이켜본 뒤에 ‘아! 맞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었네!’라는 자각을 할 것이다. 동시에 이 판결로 터져나온 봇물이 무엇을 더 쓸어 갈 것인지 하는 걱정도 하고 있다.
사실 영국에서 살다 보면 영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절차는 별로 없다. 공립학교에서 채플이 없어진 지는 너무 오래되어 언제 그런 것이 있었느냐 할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공식적인 행사에서건 어디서건 종교적인 절차가 있는 것을 본 기억도 솔직히 없다. 영국 기독교계의 말마따나 ‘기독교가 영국인의 삶에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번에 드러났듯이 어떤 의식이나 절차가 굳이 종교적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독교는 영국인의 생활 속에 아주 깊숙이 녹아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도는 시의회뿐만 아니라 타 종교신자들이 많은 상하원에서도 관행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종교적 절차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거나, 혹시 했더라도 비(非)기독교인 의원도 자신의 신에게 기도한다고 생각할 정도의 습관적인 절차라 전혀 거부감을 못 느꼈다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이번 판결로 제대로 열린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판결

판결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영국 사회가 이번 판결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가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후속 반응은 아직 없다. 이번 판결의 후유증이 어디로 번질지도 모른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국(잉글랜드와 웨일스만 해당. 스코틀랜드에서는 회의 전 기도를 하지 않는다) 지방의회는 물론 의회를 비롯해 정부 각종 공식 행사에서 행해지는 기도 절차와 사회 전반적인 종교적 관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입바른 사람들은 이렇게 되면 어두운 얘기만이 가득한 세상에 겨우 남은 밝은 뉴스거리 하나도 위협을 받는 게 아니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6월 초에 나흘간 거국적으로 펼쳐질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축제마저 그 권위를 위협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영국 왕의 대관식은 사실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종교적인 절차로 일관되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재를 끼얹는 격이라는 지적이다. 영국 여왕이 국가수반으로 헌법적인 권위를 갖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 수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왕실 관련 절차가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기 시작한다면 대관식을 비롯한 왕가의 공식 행사의 의미가 퇴색할 수도 있다. 거기다 상원으로 임명되는 성공회 고위 성직자의 위치도 상당히 위협받을 것이며, 종군 신부와 미션스쿨에 건재한 성직자마저도 존재를 부정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를 들면 옥스퍼드대의 경우 기독교 관련 칼리지에 존재하는 성공회를 비롯한 기독교 성당의 지위도 모호해지게 된다.

인권문제냐 종교문제냐

이번 판결은 아직 승자도 패자도 없어 당사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평소 반종교적 입장으로 평판이 있는 BBC마저도 ‘괴기한 판결(bizarre ruling)’이라고 지적했다. 이유는 원고 측에서 문제를 제기한 기도가 개인이 믿는 종교나 양심 때문에 불이익이나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인권적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판결이 내려진 게 아니라 단순히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절차상의 문제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판결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일부 우리 언론이 썼듯이 ‘판사가 이 절차가 불법이라 금지를 시켰다’라는 보도 내용과, 당장 ‘이번 판결로 인해 장구한 역사 동안 아무런 논란 없이 해 오던 관행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해 오던 각종 관행에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일시에 불법이 되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판사는 ‘공식적으로 참석을 강제하지 않으면 지방의회는 기도를 계속할 수 있다’라고 분명히 판결했다. 또 불법(illegal)이 아니라 ‘지방의회법상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지방의회는 기도를 계속했다’고 절차상의 문제만을 제기했을 뿐이다. 불법이라고 규정했다면 당연히 금지하라고 했을 것인데 법원은 지방의회에 상고 기회조차 허용했다. 지방의회들이 지방의회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존중해서 기도를 중단한다면 몰라도 최종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상급심에서 뒤집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에 그냥 기도를 계속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국 조야와 종교계가 똘똘 뭉쳐 지방의회법을 바꾸기만 하면 합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번 논쟁은 종교와 인권이라는 심각한 측면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그냥 기도가 싫은 한 백인 무신주의 의원의 항의에서 시작됐다. 클라이브 본 지방의원은 기도에 대한 자신의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더욱이 다수결로 의결해 두 번이나 기도를 강행하자 사직했다. 본 의원의 항의에 대한 지방의회 입장은 싫으면 참석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법정에서 하는 위증 선서처럼 하지 않는다고 불법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있는 제도를 굳이 없애려고 하느냐는 것이었고 이것이 시비의 원점이 됐다. 이 나라는 분명 기독교 국가이고 그래서 기도는 의식 시작 전 국가를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 지방의회의 입장이었다. 사실 누구도 기도에 참석을 강요당하는 것은 아니니 참석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참석하지 않았다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아니라는 지방의회의 주장은 맞다. 그러니 이것을 불법이라고 여길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인권문제도 아니고 단지 개인의 호불호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시비를 건 측은 인권문제라고 생각했고 그 문제에 중점을 두었지만 법원은 절차상의 문제만 제기하며 지방의회의 입장과 거의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결코 재판을 여기서 끝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판 하나로 뒤집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번 판결이 단지 종교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번 재판에서처럼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면 각종 절차를 넘어 국가, 국기, 왕실 제도에까지 문제 제기가 번져 퇴색할 대로 퇴색해 더 이상은 퇴색할 것도 없을 정도인 영국적 삶과 가치관에 대한 도전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왕이 대관식에서 신에 대해 선서를 하는 것이나 지자체가 현충일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냐는 항의가 나온다. 이에 맞서 세속주의협회는 기독교계가 지난 수백 년간 하늘이 준 특혜처럼 누려온 특권을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새로 내놓아야 할 때가 온 것뿐이라고 맞선다.
이번 판결이 당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영국 사회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시범 케이스라는 점에는 모두들 이의가 없다. 이제 어떠한 절차를 새로 만들 때는 이런 문제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확실하게 정착된 인종차별문제나 성적학대 같은 문제만큼 고려될 것이다. 물론 쉽게 모든 것이 바뀌지 않을 것도 자명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논쟁 중 하나인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이 이 재판으로 다시 시작된 것에서 보듯 지루한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독교가 좀 수그러지긴 했어도 영국 사회를 지배하던 19세기 말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창조론과 진화론의 싸움처럼 앞으로도 오랜 기간 이어질 대논쟁의 서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와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의 논쟁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읽힌다. 영국 언론들은 이번 논쟁을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와 비교하며 흥미롭게 다루었다. 심판 역시 아주 흥미로운 인사가 등장했다. ‘나는 여기에 무식(無識)의 대표로 참석했다’면서 난투극을 부추긴 앤서니 케니 경(卿)은 성공회와는 대척점에 있는 가톨릭 신부였다가 환속한 저명한 철학자다. 그만큼 좋은 심판이 있겠느냐며 논쟁을 부추긴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논쟁은 양측이 결코 양보할 수 있는 주제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사실 영국 지식인의 무신론 풍조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영국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스티븐 호킹 박사도 무신론의 대가다. 그는 얼마 전 “인간의 죽음은 컴퓨터 전원이 꺼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말을 해서 전 세계를 시끄럽게 했다.
싸움은 이제 겨우 일차전이 끝난 시작에 불과하다. 영국이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해 오던 일이 하루아침에 재판 하나로 뒤집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영국 사회의 시스템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영국인들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소수 의견에 따라 바꿀 것이라고 여겼다면 등 뒤에 칼을 들고도 웃으면서 얘기하는 영국인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이제 막 다시 시작된 길고 긴 논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주간조선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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