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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올림픽‘자원봉사’ 전쟁
코리안위클리  2012/04/25, 06:59:04   
▲ 런던 템스강에 설치된 올림픽 오륜기 모양의 구조물

교통·숙박비 지원 ‘0’ 내 돈 들어도 봉사하겠다

런던올림픽이 이제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런던올림픽에서는 200여개국 1만5000여명의 올림픽 선수와 4200여명의 장애인올림픽 선수들이 각각 26개 종목(올림픽)과 20개 종목(파랄림픽)에서 기량을 겨룬다. 4월 말에 마지막 남은 입장권 판매가 이뤄지면 거의 모든 준비는 일단락되는 듯하다.

이제 7월 27일 개막일까지 남은 가장 큰 일은 경기를 도와줄 자원봉사자 교육이다. 작년에 마감된 자원봉사 신청자 25만명 중 지난 14개월간 서류심사로 10만명을 선발했고 다시 영국 전역 7곳의 센터에서 일일이 30분간 대면 인터뷰를 해서 7만명을 최종 선발했다. 거의 4 대 1의 경쟁인 셈이다. 인터뷰를 한 심사위원들도 자원봉사자 중에서 먼저 선발 훈련된 1800명이었다. 자원봉사자 중 1만2000명의 팀 리더들에 대한 교육은 이미 시작되었고 3월 마지막주부터 나머지 자원봉사자들의 1차 모임도 있었다. 이 교육도 사실은 큰 행사이다. 많게는 6회 적게는 3회의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후원하는 것이 맥도날드와 영국 초콜릿 회사 카드버리(Cadbury)이다. 이를 두고 “영국인 비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두 업체가 자원봉사자 교육을 맡는다는 것은 올림픽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이 많다.

“아주 비싼 휴가”

자원봉사자 훈련용 책 내용이 흘러나왔는데 그중에는 ‘성별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외모의 관객이 화장실을 물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라는 것과 ‘게이 커플이 관객석에 손을 잡고 앉아 있는데 옆의 관객이 불편하다고 조치를 요청하는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등의 질문이 들어 있다. 성 취향, 인종, 종교 차별 문제에 상당한 배려를 하는 듯하다. 정답은 각각 ‘남녀 화장실을 자연스럽게 모두 가르쳐 준다’와 ‘올림픽은 아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이해를 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답해준다’이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모든 연령대·직업·인종이 총망라되어 있다. 90살 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장기실업자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사람들도 있다. 장기실업자 재교육자 6000명 중 15%가 자원봉사자에 지원했다고 한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험이 없어서 취업의 기회를 잡지 못한 장기실업자들이 올림픽 자원봉사를 통해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얻게 될 전망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이다.

자원봉사자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사람들은 각종 장애인이다. 특히 청각장애인 후원기관에서는 오래전부터 청각장애인 중 희망자를 선발해 올림픽 자원봉사 교육을 실시해 왔다. 장애인이라고 타인의 도움만 받을 게 아니라 남을 돕는 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당당한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게 하는 고차원의 배려이다. 2013년 1월 26일부터 2월 6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열릴 지적장애인들의 올림픽인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 세계대회에도 이런 장애인 프로그램을 한번 시행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7만명 자원봉사자의 공식 명칭은 ‘게임 메이커(Game Maker)’이다. 멀리는 스코틀랜드에서까지 그야말로 영국 전역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받는 혜택은 유니폼과 봉사 일정 중 식사 제공이 전부이다. 경기장까지 오는 교통비는 물론 숙소와 일정 이후의 식사는 자비 부담이다. 경기장에서 통근이 가능한 런던과 잉글랜드 동남부 지역에서 온 사람은 반이 채 안 된다. 결국 나머지 절반의 인원은 자비로 보통 2주 길게는 4주의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안 그래도 런던 물가는 살인적인데 올림픽 기간 중 호텔을 비롯한 숙소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 평소의 3배는 보통이다.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은 친지, 친구들 신세를 지거나 그도 없는 사람들은 각종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궁여지책으로 인근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들어 낸 것이 근교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 등에 캠프사이트를 만들어 준 것이다. 자원봉사자 증명을 제출하면 우선권을 주어 저렴하게 텐트를 치게 했다. 이도 모자라 영국 언론은 자원봉사자들의 잠자리 마련을 촉구하는 기사를 매일 싣는다. 천막을 치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어느 자원봉사자의 말처럼 “아주 비싼 휴가”가 된 셈이다. 그러나 자원봉사자 누구도 일생일대의 기회라면서 후회하지 않는다니 올림픽이 갖는 매력은 대단한가 보다.

자원봉사자 불평을 막아라!

그런데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요즘 조그만 불평이 나오고 있다.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자원봉사자들에게 SNS, 소위 트위터·페이스북·블로그 등의 인터넷 공간에 자신이 하는 일, 위치, 경기 속보, 사진들을 올리지 못하게 한 것이 불평의 대상이 됐다. 조직위원회로서는 경기장 안전 문제나 선수 안위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나 친구와 친지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자원봉사자들의 안타까운 심정도 납득할 만하다.

올림픽조직위원회도 이런 불평을 의식해 최근 당근을 준비했다. 숙소 문제 등의 어려운 사정을 위로할 겸 자원봉사자들에게 올림픽 개막식 며칠 전 주경기장을 구경할 기회를 제공하고 예정에 없던 수집용 기념배지, 참가증명서 등도 갑자기 준비했다. 올림픽조직위원회 측은 “자원봉사자 7만명 중 우샤인 볼트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영광을 가질 사람은 단 1명뿐이고 나머지 6만9999명은 따가운 여름 햇볕 아래서 차량과 관람객 안내, 짐 검색, 티켓 검사 등의 잡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봉사를 통해 각종 경기가 무사히 치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880만명의 입장권 소지 관람객들이 헤매지 않고 제시간에 경기를 구경하게 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올림픽 경기에 봉사를 하는 ‘게임 메이커’ 말고 ‘런던 앰배서더(London Ambassador)’라 불리는 8000명의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이들은 런던 시청 소속으로, 신청자 2만5000명 중에서 선발됐다. 이들은 올림픽 기간 중 자신이 선택한 런던 시내 요지에서 안내 일을 하게 된다. 하루에 100만명 이상이 몰릴 외지 관람객들의 길 안내인 겸 그들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것도 방지하는 보호자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은 올림픽 자원봉사자들보다는 조금 나은 혜택인 점심 식사비와 유니폼을 제공받는다. 런던 시내 및 런던 근교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 출퇴근 교통비도 받는다.

영어 배우려면 자선단체를 찾아라

자원봉사자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5월 12일부터 시작될 8000명의 성화 봉송 주자들도 자원봉사자이다. 이들이 70일간 거쳐갈 영국 전역 1000여개 도시 및 마을 주변을 정리할 인원도 자원봉사자들이다. 또한 전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시합, 특히 지방에서 열리는 축구나 사이클 경기 등에 동원되는 인원 역시 지방 도시에서 자체적으로 선발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렇게 선발된 인원만 거의 20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올림픽이 정말 거국적 행사가 될 전망이다. 그냥 앉아서 TV로만 올림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사실 영국인에게 있어 이런 자원봉사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자원봉사는 영국인의 삶 속에 깊이 뿌리 박힌 하나의 생활 방식이다. 영국 사회를 지탱하는 세 가지, 즉 자선정신(慈善精神)·자조의식(自助意識)·자원봉사(自願奉仕) 중 하나일 뿐이다. 비록 자신들은 무신론자인 것처럼 부정할지 모르지만 이 세 가지 모두 영국인의 생활과 의식 속에 녹아 있는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세 가지가 각각 독립된 하나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라 여길 수도 있다. 영국인 중 상당수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나 소위 말하는 십일조를 생활 속에서 무의식 중에 행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우편물과 각종 잡지 속에 끼여 오는 인쇄물 중 많은 비율이 각종 자선단체 홍보물이다. 그만큼 자선단체가 많고 그 활동도 활발하다는 증거이다. 이는 그만큼 영국인이 평소 자선을 많이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각종 매체 광고 중에도 상당 비율을 자선단체의 것들이 차지하고 있다.

시내 번화가 상점, 특히 근교 도시 번화가에는 정말 한 집 건너 하나꼴로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가게 주인들이 무상으로 빌려주거나 임대가 안된 기간 동안만이라도 자선단체들이 빌려서 운영하는 가게들이다. 여기서 일하는 점원들 역시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런 상점에 가보면 각종 연령대의 사람들이 일할 뿐만 아니라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도 많이 근무한다. 영국에 처음 와서 영어를 가장 손쉽게 배우는 방법 중 하나가 이 같은 자선단체 가게에서 일하는 것이라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평소 대화 상대가 그리운 영국 할머니들과 같이 근무하며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면서 무료 영어회화 연습을 하는 셈이다. 동시에 외국인과 말을 잘 안 트고 새로운 친구를 잘 안 사귀는 수줍고 배타적인 영국인과 개인적인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영어 배우고, 사회봉사도 하고, 영국인 친구도 사귀고, 영국 사회의 속살도 볼 수 있는 일거사득의 기회라 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렇게 영국인은 돈으로 혹은 노력으로 또는 재능으로 봉사를 하며 알게 모르게 사회에 십일조를 한다. 영국 중산층의 덕목 중 하나가 자선이고 봉사이다. 언젠가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에 진출한 한국 업체 공장 준공식에 갔다고 우리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한 적이 있다. 영국에서는 직원 몇십 명의 외국 투자공장만 세워져도 그 지방 주지사는 물론이고 장관이나 심지어는 총리까지 온다. 그만큼 해외투자를 중요시한다는 말이다.

단지 그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여왕님의 행차에도 자선을 앞세운 사전조율이 필요하다. 여왕 이름으로 된 자선단체나 혹은 여왕이 지정하는 자선기관에 기부를 약속하는 경우 여왕의 행차가 쉽게 이뤄질 수 있다. 고위 정치인을 부를 때도 정치후원회로의 직접적인 기부 요청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딴, 그러나 독립적인 자선단체나 혹은 제3의 자선기관에 기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자선의 형식을 빌려 명분과 실익을 동시에 얻는 것이다.

24시간 동안 1000억원 모금 기록

일반인들의 자선이나 봉사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지않다. 필자는 1982년 영국에 처음 와서 아프리카 식량기근 원조 모금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BBC에서 24시간 생방송을 하면서 전화로 모금을 하는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이 나와서 공연도 하고 인터뷰도 하는 형식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24시간 모금에 5000만파운드가 모였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1000억원이 넘는 돈이다. 우리처럼 대기업에서 수억원씩 낸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인들이 한 푼 두 푼 기부한 것이 그만큼 어마어마한 돈으로 모였다.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감동과 함께 ‘무서운 나라에 내가 일하러 왔구나’ 하는 긴장을 동시에 느꼈다.

지금도 이런 형식의 모금을 하면 그 모금액과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영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자원봉사자가 항상 있다. 영국에서 자원봉사자가 빠지면 사회가 돌아갈까 걱정할 정도이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범죄피해자 지원센터(Victim Support)’나 ‘경찰서 자원봉사자(VIP·Volunteer in Police)’도 100%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져 있다.

엄격히 말하면 영국의 국회의원도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로 출발했다. 소위 말하는 겸업 국회의원이었다. 자신들의 직업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지주와 상공인으로 이루어진 젠트리(gentry)들이 무보수로 의회에 진출한 게 시작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숭고한 봉사정신을 앞세워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한다는 정신이 강했다. 이게 영국신사, 즉 젠틀맨(gentleman)의 어원인 중산층의 대표 젠트리의 정신이었고 지금도 이 전통은 영국 사회에 살아 있다.

초등학교부터 자선행사 활동

오전에는 자신의 직업에 종사하고 오후에 국회에 나와 회의를 하는 과거의 전통이 남아 있어 영국 하원은 오후에 시작하고 밤을 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겸업국회의원 제도가 시행된 적이 있지만 이제는 영국도 국회의원은 거의 전업정치인이다. 그만큼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겸업정치인의 전통은 지방의회에는 아직 남아 있다. 시의원들은 정말 거마비(車馬費·교통비)에 해당하는 돈만 받고 일을 하기 때문에 거의 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지방의회는 대개 저녁 8시에 회의를 시작한다. 자원봉사정신의 발로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보면 지역구 당원들이 와서 무료로 일해주고 선거 때가 되면 이들이 도시락 두 개를 싸와서 먹으면서 일을 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을 수행하는 정당의 집권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다. 돈이 들지 않는 정치는 이렇게 자원봉사자가 있어 가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고쳐야 할 사회적 문제가 있으면 앉아서 불평만 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고치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자신의 힘으로 이룬다는 자조정신이 발로되는 또 하나의 현장이 바로 정치이다.

영국인의 이런 정신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의 자선행사 중에는 흔한 걷기대회뿐 아니라 굶기대회, 책읽기대회 등 별난 것들이 다 있다. 운동장 한 바퀴 돌면 얼마를 주겠느냐, 점심을 굶고 그 돈을 기부할 터이니 얼마를 도와 주겠느냐 등의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이웃이나 친지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명을 받는다. 서명을 받은 종이를 학교에 갖고가 임무를 수행했다는 증명을 받으면 다시 그 종이를 들고 서명을 한 사람들을 찾아가 진짜 돈을 받아 당초 목적했던 기부를 하는 것이다. 그냥 불우이웃돕기나 수재의연금을 부모로부터 받아내는 우리 초등학생과 달리 직접 뭔가 하거나 참여하는 연습을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기네스 기록 경신도 거의 이런 자선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신기록을 달성할 터이니 돈을 기부해 달라, 혹은 요트로 세계일주를 할 터이니 항해한 거리만큼 기부를 하라는 식이다. 이렇게 몇 년씩을 준비해서 뭔가를 이루고 자선하는 영국인이 넘쳐난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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