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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팅힐’. 예의 바르고 부드러우나 대인관계에서는 쑥스러워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직접 말할 용기를 못 내고 주저주저하는 수줍은 모습의 영국인 주인공에 미국인들이 열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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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목청 높이거나 소동 일으키는 것은 질색 절차 밟아 차근차근 따진다
어쩌다가 모임에서 영국인과 미국인을 같이 만나면 과연 이들이 불과 200여년 전에 헤어진 같은 민족인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아주 친화력 있게 다가서면서 눈을 맞추고 힘차게 악수를 하자고 덤벼드는 미국인에 비해, 뭔가 주저하면서 눈을 내리깔고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듯 행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분명 영국인이다.
그래서 같은 민족임에도 너무나 달라진 모습 때문인지 ‘소극적인 영국인 남자와 적극적인 미국인 여자’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들이 많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 힐’이 그렇다. 이 두 영화에 모두 전형적인 영국 남자로 배우 휴 그랜트가 나왔다. 예의 바르고 부드러우나 대인관계에서는 쑥스러워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직접 말할 용기를 못 내고 주저주저하는 수줍은 모습의 주인공에 미국인들이 열광했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것 같은, 요즘의 미국 사회에서는 거의 보지 못하는 로맨틱한 휴 그랜트에 미국인들이 향수를 느낀 듯하다.
하소연 들어주는 정신과 성업
영국인이 상대방에게 먼저 인사를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숫기가 없어서이지만 괜히 나대다가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아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다. 먼저 인사를 하면 대개의 경우 아주 반갑게 받는다. 그러나 보통 영국인은 서로 말 나누기를 꺼리고 좀처럼 인사를 먼저 하는 법이 없다. 같은 동네 기차역에서 출퇴근하면서 몇 년간 얼굴을 봤어도 겨우 수인사만 나눌 뿐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 한번 대화를 트면 계속 아는 척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일로 얽힐 염려가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영국인은 프라이버시란 딱히 사생활 문제만을 일컫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존재하고 생활하는 공간과 시간마저도 프라이버시라고 여긴다. 아침 출근 시간 혼자서 플랫폼에 서서 생각하거나 기차 안에서 신문을 읽는 시간에 조금 아는 동네 사람이라고 괜히 말을 걸어 방해하는 것도 프라이버시 침해라 본다. 내가 그런 방해를 받고 싶지 않으니 남도 그럴 거라 생각하면 함부로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무인도에 떨어진 영국 남자 두 명이 10년간 말을 하지 않았다는 조크가 있다. 중간에서 서로 소개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단다. 이 조크에는 다른 민족도 등장한다. 프랑스 사람 두 명은 연인이 됐고, 이탈리아 사람 둘 사이에는 정당이 세 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다. 둘이 어떻게 정당을 세 개 만드냐고? 각각 하나씩 만들고, 둘이 합쳐서 정당 하나를 더 만들었다는 얘기다.
영국인이 프라이버시 문제를 중요시하는 것은 타인의 사생활을 보호해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타인의 문제로 내가 피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영국인 특유의 이기심도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보통 “고통은 둘로 나누면 반이 되고, 행복은 둘로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한다. 한 영국인에게서 “우리는 고통은 둘로 나누면 두 배가 되고 행복은 둘로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의 고통을 듣고 나면 그 고통으로 인한 감정이입 때문에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 내가 못 가진 남의 행복 얘기는 안 듣느니만 못해서 질투 때문에 자기 자랑한다고 빈정거리다가 왕따 당한다는 말이다.
영국인들은 그래서 자신의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가벼운 불편이나 불만은 털어놓을지 몰라도 진짜 힘든 개인적 고민이나 문제는 동료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남의 문제를 듣는 걸 좋아하지 않고 동시에 개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 없는 영국인들은 그래서 전문가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순간적인 기분으로 괜히 말을 했다 잘못하면 소문이 나고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서로 부담스러워 대면을 피하게 될지도 모르는 동료나 친구보다는, 프로페셔널을 이용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돈을 주고 상담하지만 비밀이 보장되고 나중에 봐도 부끄럽지 않을 전문가가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 전체가 정신과 의사이고 상담원인 한국에서는 장사가 안 된다는 정신과 의원이 영국에서는 엄청 비싼 상담료에도 불구하고 성업 중이다.
3자를 통한 대리전쟁에 익숙
영국인들은 모든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제 삼자를 통하거나 전문가에게 돈을 주고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 꼭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당사자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해결하기보다는 누군가를 시켜서 대리전쟁을 치르게 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앞서 얘기한 ‘결정적인 순간에 직접 말할 용기를 못 내고 주저주저하는 영국인’의 경우다. 같은 직장 동료 사이에 혹은 이웃끼리 정상적인 교제를 해 나가면서도 변호사를 통해 싸움을 하고 있는 경우를 본다. 분명히 서로 등에 칼을 꽂는 소송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파티에서 만나 아무 일 없는 듯 대화하고 웃고 떠든다. 그것이 성숙한 성인의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혹은 기차 안에서 떠들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는 승객에게 직접 얘기하지 않고 꼭 승무원을 통해 얘기하는 것도 같은 예다. 자기 자리에 잘못 앉은 다른 승객이 있거나 바로 뒷자리의 승객이 자기 의자를 발로 자꾸 건드릴 때 역시 자신이 직접 얘기하지 않고 반드시 승무원을 불러 얘기하게 한다. 식당에 갔는데 음식에 문제가 있거나 싱겁거나 너무 짜거나 해도 영국인은 절대 종업원을 불러 야단치지 않는다. 음식이 늦게 나와 차가워서 먹기가 힘들더라도 눈을 내리깔고 묵묵히 먹는다. 그러고는 다시는 가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조용히 털어놓아 그 집에 손님이 끊어지게 만든다.
관공서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책임자를 찾거나 큰소리로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물러나 편지를 써서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전화로 항의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주위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목청을 높이거나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영국인은 직접적인 대화나 대면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어떤 보호막 뒤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 보는 것이다. 전에는 상품 소개 책자를 통한 우편 주문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을 선호한다. 비록 물건을 사는 갑의 입장이라도 산 사람보다는 그냥 사이버 공간이 더 편하다고 영국인은 느낀다. 이러한 현상을 영국인의 가장 큰 ‘국민적 지병’인 ‘대인관계 불편증’이라 정의하는 문화인류학자도 있다.
특히 영국인들은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서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는 법이 없다. 당사자끼리 직접 대화를 하다 보면 생길 수 있는 감정싸움이나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제 삼자를 개입시키면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영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소동(make a scene)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영국인이 소동을 싫어하는 것은 정평이 나 있다. 새치기 자체를 보기가 힘들지만 설령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봐도 누구 하나 나서서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드물다. 분명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으로 자신이 손해를 보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자신의 일이 아닌 양 외면하거나 못 본 척한다. 대개의 경우는 바로 얘기하지 않고 약하게 들리게 그냥 중얼거리거나 눈을 흘기거나 하는 정도다. 만일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말을 하면 그때서야 같이 나서서 도와주는 정도다. 그것도 한두 명이지,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이 자신들의 일이 아닌 것처럼 외면을 하거나 무시한다. 심지어는 목소리를 높인 관련자들을 별것 아닌 일로 ‘소동’을 일으킨 사람으로 보고 ‘그래 너 잘났다’ 하는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영국인은 굳이 지적을 해서 소동을 일으키고 문제를 바로잡는 사람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국민적 지병’인 대인관계 불편증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영국인들은 서로 눈짓을 나눈다. ‘숫기 없는 영국인이 새치기할 리가 없으니 저건 외국인의 무례가 틀림없다’는 의미가 서로의 눈짓에 담겨 있다. 자기들끼리 ‘외국인의 무례’를 탓하는 것으로 이미 그 새치기꾼은 징벌을 받았다고 자위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라는 내부 고발자를 찾기 힘들다. 용기가 없다기보다는 굳이 ‘정의의 사자’가 될 이유도 없고 그냥 너그러이 넘어가면 되는데 그걸 나서서 지적해 서로 불쾌하게 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고 본다.
이런 것을 두고 용기가 없다고 딱 잘라 얘기하기는 참 어렵다. 그냥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싶어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쉬울 것 같다. 영국 여성은 외출할 때,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결혼식 같은 장소에 갈 경우 어떤 옷이 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한다. 튀지 않고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으나 세련된 옷을 고르려고 심사숙고한다. 이들이 많이 쓰는 단어, 즉 ‘잘 어울린다’는 뜻인 ‘웰 블렌딩(well blending)’이 바로 이 경우에 쓰는 말이다. 자신만의 개성이 돋보이고 눈에 띄게 입으려 하는 것이 현대인의 멋이라면 분명 영국 여성들은 현대인이 아니다.
남자의 경우도 넥타이를 매되 속물 냄새가 나는 디자이너 레이블이 안 나타나는 것을 매고 유행에 너무 따르지 않는 듯한 수수한 옷을 원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뭔가를 보여주는 것에 전혀 관심을 안 쏟는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출신 학교나 클럽, 혹은 자신이 근무했던 연대가 표시된 넥타이를 맨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렇게 ‘튀기는 싫어해도 끼리끼리는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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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여성은 외출할 때,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결혼식 같은 장소에 갈 경우 어떤 옷이 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한다. 튀지 않고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으나 세련된 옷을 고르려고 심사숙고한다. |
양복도 그렇다. 영국 상류층이나 귀족들은 옷을 반드시 런던의 세빌로(Saville Row) 거리 맞춤 양복점에서 해 입어야 한다. 한 벌에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이 날아가도 거기서 반드시 해 입는다. 우리가 어릴 때 어른들이 양복이라는 단어로 쓰던 ‘사비로’라는 말이 바로 이런 맞춤 양복(bespoke tailoring)을 만드는 런던 중심가 골목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비싸도 아무나 아는 상표의 옷은 입을 만한 옷이 아니다. 졸부들이 입는 싸구려 옷일 뿐이다. ‘한 번 입어도 오래된 것 같고 오래 입어도 새것 같다’는 선전 문구같이 영국의 상류층은 튀지 않고 전통이 있는 옷을 원한다. 양복의 멋은 상표로 아는 것이 아니라 수품이나 매무새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세빌로 양복을 입는 이들의 말이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자기네끼리는 아는 그런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굳이 말하거나 상표를 보지 않아도 ‘아! 저 옷은 세빌로 옷!’ 혹은 ‘아! 저 친구는 그 학교를 나왔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튀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그런 코드를 이해해야 그들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외국인의 삶은 어렵다.
왕따 당하지 않겠다는 자위본능
신호를 기다리는 차선이 두 줄이고, 신호를 지나면 차선이 하나로 바뀌는 곳에서 보통 영국의 차들은 거의 오른쪽 차선을 비워두고 왼쪽 차선에 줄을 서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영국은 한국과 달리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량 진행 방향이 반대임을 참고) 우회전이 금지되어 오른쪽 차선에 서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에도 영국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빈 차선 앞으로 달려와 신호 앞에 서는 차는 주로 외국인 운전자들이다. 영국인의 행동과 의식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 운전자들은 그 줄을 비워 놓고 안 서는 영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여기에 감탄하지만, 이는 꼭 고상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튀지 않기 위한 제스처이고 그러한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왕따를 당하지 않겠다는 자위본능이라는 것을 외국인들은 모른다. 앞으로 나서는 차를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멸시의 눈초리’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모를까, 그것을 아는 영국인은 그렇게 할 용기가 없다.
더욱 특이한 것은 오른쪽 앞으로 끼어드는 얌체 차에 양보하고 비켜주는 부처 같은 영국인들도 많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면 첫째, 속으로는 욕하고 무시하면서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심정일 수 있다. 둘째, 그런 무례한 사람과 맞서 싸울 용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셋째, 진짜 그 사람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빨리 가야 하니 그럴 거라고 진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첫째, 둘째 이유는 그렇다 쳐도 영국인과 얘기해 보면 셋째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영국인은 정말 급한 사정이 있지 않고는 감히 끼어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이해해서 별로 나쁜 감정 없이 비켜준다고 말한다. 필자도 이제는 영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그렇게 비켜주지 않고 나면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다.
반드시 전화나 편지로 정식 항의
그렇다면 영국인들이 소동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부당한 일을 그냥 참고 넘어가고 말까. 그것도 아니다. 대개의 경우 세 가지를 선택해 잘못을 고친다. 우선 그 자리에서는 그냥 넘어가나 반드시 전화나 편지로 정식으로 항의를 해서 그런 행위가 일어나지 못하게 근본해결책을 요구한다.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문제에 동감하는 사람들을 모아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어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낸다. 만일 그래도 문제가 그대로 있으면 자신들이 속한 정당이나 단체 혹은 협회 같은 것을 통해 요구하거나 동시에 직접 개입해 그런 일이 생기지 못하도록 막는다. 현장에서 항의 집회나 서명 운동 혹은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잘못을 바로잡는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이라도 자신들이 현장에 나서서 고쳐지게 한다. 영국인들은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떼거지로 몰려가서 냄비처럼 파르르 끓다가 그 자리만 지나고 나면 바로 식고 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가 있는 현장에서는 조용히 물러서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절대 식지 않고 세월을 두고 끈기 있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이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영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선단체 중 많은 것들이 아주 험한 사고를 당한 피해 당사자나 피해자의 가족들이 만든 단체다. 그냥 눈물만 흘리고 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비극을 계기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체를 만들고 봉사활동을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비극이 타인에게까지 되풀이되지 않고 자신만의 것으로 끝나도록 만들고 동시에 봉사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이렇게 보면 영국인은 결코 용기가 없거나 심약한 사람들이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시간을 두고 반드시 찾는다.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보다 이렇게 나중에 절차를 밟아 차근차근 따지고 드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영국인은 참 무서운 사람들이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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