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국인에게 행복이란 일상에 있는 것이다. 큰 꿈을 꾸지 않거나 아예 안 꿔서 행복한 것이다. 집과 펍과 축구와 휴가가 영국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
|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자라고 묻히는 것이 최고의 행복
‘영국인은 어떤 삶을 행복하다고 느끼는가?’라고 누가 필자에게 묻는다면 ‘영국인은 큰 꿈 없이 단순하게 사는 삶을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대답할 것 같다. 영국인이 바라는 행복한 일생은 정말 놀랄 만큼 단순하고 간단하다. 태어난 곳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커서 학교 다니고, 졸업한 뒤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러다 늙어서 은퇴하고 죽어 동네 교회 묘지에 묻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 한다.
거기서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아침에 출근해 일할 곳이 있고, 점심에는 동료들과 근처 선술집인 펍(pub)에 가서 간단히 한잔 하면서 식사하고 정시에 퇴근한다. 집에 와서는 씻고 저녁 먹고 동네 펍에 다시 가서 친구들과 축구 보면서 한잔 하고 들어와 뉴스 보고 자면 행복이라 생각한다. 주말에는 집안 청소하고 정원 가꾸고 자동차 수리로 소일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그러다 보면 한 달간 휴가 가서 푹 쉬고 와서 다시 일상을 시작한다. 이렇게 영국인에게 있어 행복이란 일상에 있는 것이다. 큰 꿈을 꾸지 않거나 아예 안 꿔서 행복한 것이다. 집과 펍과 축구와 휴가가 영국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렇게 단조롭고 거의 변화 없는 삶을 이들은 안정된 삶이라 생각한다. 장래 예측이 가능한 안정된 삶이 행복한 삶이라 믿는다. 사람이 불안한 이유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그렇게 미래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한 달 뒤에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이며, 1년 뒤에는 어떻게 살 것인지, 집 융자는 언제 다 갚고 어떻게 은퇴할지에 대한 계획이 서 있다. 정말 큰일이 없는 한 그런 계획은 지켜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헛된 꿈 안 꾸고 모험 안 하고 열심히 살면 계획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설사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해도 거기에 대비한 각종 장치를 해 놓는다. 보험 종주국답게 영국인들만큼 보험 많이 드는 사람도 없다. 별난 보험이 다 있다. 상해나 생명보험은 물론이고 가전제품의 보증 기간 이후 수리비용 보험, 보일러 고장 보험, 실직이나 질병으로 인해 못 갚을 융자금이나 신용카드 빚 보험, 환불이 안 되는 휴가 예약했다 못 갈 때를 대비한 보험도 든다. 조금의 비용으로 큰 손해를 막아 안전장치를 하면서 불안 요소를 없애는 것이다. 이런 비용도 상당해서 안 그래도 빠듯한 월급이 더욱 여유가 없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주택융자 갚는 날이 은퇴 날
정작 영국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원흉은 주택 구입자금, 즉 모기지(mortgage)이다. 정책적으로 저리의 융자를 한다고는 해도 결국은 이것이 평생의 족쇄가 된다. 물론 부모 도움 없이는 집 한 칸 전세도 못 얻는다는 한국 젊은이들 실정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대출금을 전부 상환하기 전까지는 열심히 일해 매달 상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직을 해서 월 대출금 상환을 못하면 집을 뺏긴다. 또 이자가 오르면 가계는 휘청하게 된다.
이 모기지가 다 끝나는 날이 바로 영국인이 은퇴하는 날이다. 드디어 평생의 족쇄가 풀리고 자유의 몸이 된다. 그전까지는 다른 생각 못하고 체제에 순응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거기다가 개인연금까지 지불하고 나면 여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정말 쥐꼬리만 하다. 이러니 결국 꿈을 작게 꿀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렇게 개인적으로 각종 위험에 대비해 놓은 데다가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안전 보장망이 촘촘히 짜여 있어 아무리 험하게 돼도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보장이 된다. 실업수당은 물론 의료보험은 본인 부담 한 푼 없고, 아이들 학비는 물론 없다. 대학생 학비가 엄청나게 올라 아우성이지만 지금 당장 내는 것이 아니다. 대출을 받았다가 나중에 일정 금액의 월급 수준이 되면 갚아 나가면 된다. 부도가 나서 은행에 집을 뺏겨도 이전 집만큼은 못해도 임대주택이라도 준다. 또 사업가가 사업하다 부도냈다고 잡혀 들어가지도 않는다. 영국에서는 사업 부도가 바로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장래를 불안해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느 베스트셀러는 ‘미래가 불안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국인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하지도 않고 그 불확실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자신의 직업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도 않고 더 빨리 승진하려고 스트레스 받지도 않는다. 올라가고 싶지도 않고 올라가봐야 별로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직업은 생활을 위한 방편
영국인은 희망이나 장래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무의미한 밥벌이 일을 불평 없이 묵묵히 그러나 성실히 해 나간다. 천직의식이라든지 직업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영국인에게 직업은 그냥 직업일 뿐이다. 별나게 흥미를 끌고 아침에 일어나면 일하러 가고 싶어 좀이 쑤시는 그런 직업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직업이란 어차피 생활을 위한 하나의 방안일 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루 종일 가능하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충실히 메우고 나면 그 다음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신의 시간이라는 말이다. 출세 지향적이지도 않고 성취욕에 불타지도 않는다. 정말 이런 영국인들을 처음 봤을 때는 기가 막히다 해야 할지 존경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일해 더 출세하고 돈도 더 버는 데 목표를 두고 악착같이 일하던 1980년대 한국인의 눈에는 영국인은 모두들 한 수 뛰어넘은 도사들 같기도 하고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 같기도 했다.
왜일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회구조상 큰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현실에 만족해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어 안주하기 때문에? 노력을 해서 더 많이 얻은들 지금보다 더 행복하리라는 믿음이 없어서? 자신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 더 이상 이룰 수 없다는 체념 때문에? 워낙 무지해서 전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냥 무기력한 상태라서?
어느 하나만을 정답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이것이거나 저것이거나, 아니면 이것 조금 저것 조금씩 갖다붙인 이유를 대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다가 못 이룰 때 사람들은 실망한다. 거기서 포기하면 되는데 ‘불가능은 없다’라는 자기암시(自己暗示)를 채찍 삼아 자신을 닦달할 때 고달파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완벽하게 자각할 때 심하게 좌절하지만 그래도 일종의 안도가 드는 법이다. ‘나는 사실 죽을 만큼 노력했어.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것은 내 것이 아니거나 나는 이걸 이룰 능력이 없어’라고 자위한다. ‘꼭 그걸 해야 정답인 것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하고 건설적인 체념의 가닥을 잡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자신에 대한 연민은 생길지 몰라도 더 이상 자학을 하지는 않는다. 비로소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꼬드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꿈이 없어 불만도 없다
사실 이 문제로 여러 영국인 친구들에게 시간 날 때마다 물어봤다.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물론 없었지만 거의 비슷하게 앞서 든 이유들을 사후 감상 비슷하게 들이댔다. 그래서 “그런 이유들을 누가 가르쳐 주었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얘기를 누구한테 들은 바도 없고 책에서 읽은 바도 없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사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것이 주위와 비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렇게 산다는 것이다. 작은 꿈을 꾸기 때문에 바라는 것도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말이다. 흡사 삶의 지침 같은 책에서나 나옴 직한 글귀 같은 말을 평범한 사람의 입에서 들으니 잘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분명 영국인들이 사는 것을 보면 맞는 말 같다.
영국인은 애초부터 신분 상승이나 신분 세탁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니 말을 바꾸자. ‘대다수의 영국인’은 자신의 출생 신분과 환경에 맞춰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것 같다. 물론 영국인 중에도 신분 상승과 대박의 꿈을 꾸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그 숫자는 아주 비싼 등록금을 주고 사립학교를 나와 명문 대학을 나온 영국 인구 5%의 지도층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정말 대다수의 영국인은 일찍이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의 철학을 태생적으로 잘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삶은 결코 질이나 양에 있지 않고 자신의 만족도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신포도’ 이야기나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 마라’와 같은 속담은 결코 패배주의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영국인은 이런 속담들이 오랜 경험에서 나온 삶의 지혜가 담긴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잘 실천하는 것 같다. 괜히 이루지 못할 것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남의 것과 비교해 자신의 것을 천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지혜라는 것을 말이다. 안 되는 것에 연연해서 안달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 대로 편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인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상대적 빈곤감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적 위화감이니 계층 간 괴리라는 말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고 언론에서 부추기지도 않는다. 영국인이 불만을 가지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이유에 대해 “주어진 처지에 불만을 가지지 말고 충실히 자신이 맡은 바를 완수하고 착하게 죄 짓지 않고 살다가 죽으면 천당 간다는 기독교 가르침을 가장한 지배자의 논리에 세뇌된 탓”이라는 어느 유명 좌파 학자의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로또 돼도 이사 안 간다
‘영국은 계급사회’라는 것이 많은 외국인들을 놀라게 하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영국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인은 공기처럼 있는데 애써 느끼지 않듯이 그냥 자연스럽게 계급사회를 받아들인다. 높은 계급이 더 낫다고 느끼지도 않고 낮은 계급이 더 불편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인은 신분 상승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높은 계급을 부러워하지도 욕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여기고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정말 기독교 교리에 세뇌가 돼서 그런지, 무지몽매하고 무기력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국 서민층은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큰 불만이 없다. 대학 학비가 거의 없던 시절에도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다. 필자가 처음 영국에 온 1980년 초만 해도 고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이 5%를 겨우 넘었다. 주어진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신분 상승의 기회를 방기하는 태도를 보고 처음에는 기가 막혔다. 자신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많은데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도대체 이 나라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 사나 하고 궁금해했다.
대개의 사람들이 삶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것은 워낙 원초적인 것이라 뺀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 실직, 파산, 이혼, 사고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영국인에게는 하나가 더 있다. 이사가 거의 실직이나 사고만큼의 두려움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물론 같이 크고 지내온 사람들 사이에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보통 긴장은 새로운 것, 혹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접할 때 발생한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아드레날린이 나와 막 흥분된다는 사람도 있다는데 영국인에게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영국인에게 이사는 뿌리가 옮겨지는 것과 같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주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숫기가 없고 친구를 쉽게 못 사귀는 영국인들에게는 아주 힘든 일일 것이라는 것은 깊이 생각지 않아도 이해할 만하다. 심지어는 대다수 로또 당첨자 역시 “이사를 가지 않고 같은 집에서 같은 직장을 다니고 살겠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끼리 돈을 모아 로또를 사는 신디케이트를 만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비싸고 큰 집을 사서 간들 이웃 사람들과 사귈 방법이 많은 것도 아니다. 계급이 다르고 수준이 다르다고 무시 당하기 딱 좋다. 지금까지 같이 살아온 사람들을 떠나 다른 환경으로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영국인에게는 새 집으로 간다는 흥분보다는 악몽과도 같은 것이다. 실직이 어려운 것은 월급을 못 받아 생활이 힘들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함께 지내온 동료들을 떠난다는 것과 다른 곳으로 직업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고향은 나의 뿌리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이혼, 질병, 파산, 실직 같은 것은 영국인에겐 별로 큰일이 아니다. 이혼은 영국인 반 이상이 하는 것이니,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 소수자일 만큼 별것 아니다. 그러나 이사는 다르다. 영국인은 학교만 나오면 진정한 친구 사귀기를 멈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얼마 전 신문에 요크셔 한 지방에는 동네 인구 변동이 하도 없어서 유전자 문제까지 생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대로 같은 사람들이 살면서 서로 결혼하고 또다시 그 자손들끼리 결혼하기 때문에 일종의 근친결혼이 되어 유전병이 발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여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사 가는 사람이 없으니 이사 오는 사람도 없고 그대로 대대손손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루면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세상에 정말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 같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