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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본 대처의 두 얼굴
코리안위클리  2013/04/24, 07:40:22   
▲ 2009년 11월 대처 전 총리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 걸린 자신의 초상화 옆에서 찍은 사진.

사랑과 증오는 받았어도 무시는 당하지 않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서 유명인은 되기도 어렵지만 죽어서 잘 묻히기도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총선에서 세 번이나 승리한 11년 최장수의 총리였으니 뉴스의 중심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장례식 문제로 이 정도 논란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한편에서는 국장(國葬)을 거절한 대처의 유언이 평소 대처의 깔끔한 성격과 잘 맞는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데일리메일을 비롯한 우파 언론은 대처 같은 국가적 영웅을 ‘제대로 갖춰 보내지(proper send-off)’ 않는다고 국장을 하자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당초 영국 정부는 4월 17일 런던 세인트폴성당에서 치러질 대처 장례식을 국장(state funeral)으로 치를 계획이었으나 장례식 비용을 낭비하지 말라는 고인의 유지와 일부 여론을 고려해 국장에 준하는 장례식(ceremonial funeral)으로 한 단계 격을 낮췄다. 반면 측근들은 “대처는 어쩌면 국장보다 가족장을 마음속으로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한다. 의식이니 격식이니 하는 법석을 피해 자신의 죽음을 마음으로 진정 슬퍼하는 가족과 측근 사이에서 조용히 영면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여왕이 전통을 깨고 국장이 아닌 장례식에 참석하는 문제도 논란이다.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비록 전 총리이긴 해도 일개 민간인의 장례식에 여왕이 참석하면 격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영국의 국가수반(head of state)은 여왕이고 정부수반(head of government)은 총리이므로 둘의 관계는 미묘하다. 영국의 정치역학 관계로 보면 가깝고도 멀어야 하는 관계다. 아무리 총리라고 해도 그동안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여왕이 어떤 총리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이 정말 좋아해 반드시 참석하고 싶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 총리의 국장에도 친필 서한과 화환을 보내는 선에서 그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전통을 깨고 국장이 아닌데도 여왕이 참석을 한다니 설왕설래가 없을 수 없다. 여왕의 대처 장례식 참석 이유에 대해 누구도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감안한 듯하다’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는 제스처’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누가 필자에게 영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왕 세 명을 들라면 엘리자베스 1세와 현 엘리자베스 2세, 그리고 감히 ‘무엄하게도’ 대처 전 총리를 들고자 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정말 어렵게 여왕이 됐다. 세 살 때 생모 앤 볼린이 생부 헨리 8세에 의해 처형당하는 불행을 겪으며 여왕이 되던 25세까지 생사를 오가는 살얼음판을 거쳤다. 엘리자베스 1세는 그래서 ‘선출되기보다 더 어렵게 보좌에 오른 총리 같은 여왕’이라고 평할 수 있다. 당시 유럽의 다른 왕들과는 달리 여론에도 신경을 썼다는 이유로 ‘중세판 선출직 총리와 같은 여왕이었다’는 말을 듣는다.

거기에 비해 현 엘리자베스 2세는 곱게 왕위에 올랐다. 아프리카 방문 때 나무 위에 사는 한 종족의 집에 올라갔다가 선왕의 부음을 받았고, 나무에서 내려올 때는 여왕의 신분으로 내려왔다. 해서 ‘나무 위에서 왕위를 물려받은 여왕’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서 왕위를 유지하기란 정말 어렵다. 왕이라고 뭐 하나 봐주지 않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보도하는 언론으로부터 왕위 폐지를 주장하는 좌파 정치인, 세금 도둑이라고 비판하는 국민에 이르기까지 매일 좌불안석이다. 그래서 현 여왕은 ‘선출된 총리보다 더 어렵게 왕권을 유지하는 여왕’이라 불러 마땅하다.

이런 두 여왕의 처지와 빗대어 보면 대처는 ‘선출된 여왕’이었다. 영국의 총리(首相·prime minister)는 그 명칭을 풀어보면 ‘장관(minister)들 중에서 수석(prime)’이라는 말이다. 영국 총리는 엄밀히 말하면 왕권국가의 집사장 같은 역할이다. 왕의 일을 처리하는 장관들 중에 좌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국 국민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처럼 총리에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에 투표하면 그것이 모여 국회를 이루고 의석 과반을 차지한 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는 내각책임제다. 총리도 국회의원의 한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총리는 비록 집권 여당의 대표이긴 하지만 팀 플레이를 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대처는 이런 총리에 대한 관념을 깨뜨려버렸다. 대처는 균형을 무시했고 대통령과 같은 권한을 휘둘렀다. 사람들은 총리(prime minister)와 대통령(president)을 합친 것 같다고 해서 ‘수석대통령(prime president)’이라 불렀다. 측근들이나 고위 공직자, 기관장들에게 그녀는 엄청나게 혹독한 상관이었다. 제대로 회의 준비를 안 해오거나 보고서가 시원찮으면 그 자리에서 특유의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앙칼지게 야단치고, 그보다 약한 경우는 눈을 흘겼다. 여왕처럼 군림했고, 근신들에 의해 궁내 반란이 일어나 쫓겨나는 여왕처럼 물러났다. 그래서 그녀를 ‘선출된 여왕’이라 부르고자 한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은 대처를 ‘스탈린의 눈과 마릴린 먼로의 입’을 가졌다고 했다. 정말 그녀에게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눈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다. 대처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눈이 짝짝이다. 오른쪽 눈은 날카로워 보이고 왼쪽 눈은 부드럽다. 그래서인지 부드러운 어머니 모습과 세상을 바꾸는 철의 여인의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결혼해서 자고 가는 아들의 셔츠를 손수 빨아 다림질해서 반듯하게 접어 비닐봉투에 접어 주는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과,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수인들이 형무소에서 단식을 해서 10명이나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총리의 모습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녀의 목소리 또한 아주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나고 딱딱 부러지는 듯한 강함이 있지만 말하는 스타일은 금방 간이라도 내어줄 듯이 부드럽고 간드러진다.

그녀는 자신이 크게 성공했기(over achieved) 때문인지 성공 못한(under achiever)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각 동료들을 통치한 수단인 공포는 결국 공포를 넘어 증오로까지 발전했다.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었고, 측근 각료들마저 결국 마지막에는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대처는 자신이 하는 일이 국가를 위해 옳은 일이라 믿었고, 측근과 동료들이 자신과 같은 애국심과 열정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탔다면 자신이 험하게 다뤄도 이해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오른팔이던 제프리 하우 부총리마저도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유로화 관련 이견으로 사임하면서 들어올린 ‘배반의 불’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대처호의 침몰을 알렸다. 당시 인두세(poll tax)라 불리던 주민세(community charge)가 워낙 인기가 없자 동료 보수당 국회의원들의 손에 의해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장기 총리가 최초로 집권 중 밀려나는 불명예를 당한 것이다. 자신이 전임 대표 히스를 몰아낼 때 들고나왔던 ‘귀 기울이는 지도자’가 되지 못한 결과 당원들의 손에 의해 권좌에서 끌려 내려왔다.

가족은 대처의 이런 불행을 예상했었는지 모른다. 특히 남편 데니스는 아내의 총리 취임 10년이 되는 해에 ‘은퇴하라’고 권했다. 대처가 말을 듣지 않자 옆의 딸 캐롤에게 “일 년 내로 믿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1년 반 만에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났다. 결국 그녀는 “내가 들어오던 11년 반 전에 비해 훨씬 좋은 영국을 남기고 갈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남기고 붉어진 눈으로 다우닝가를 떠났다. 그래도 퇴임하는 순간 다우닝가 앞에서 차를 타는 대처 옆에는 남편이 있었고 차문을 잡고 있는 건 아들 마크였다.

대처가 취미가 없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같이 한담을 나누거나 식사를 같이 할 친지마저 없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에게 있어 취미와 친구는 오직 정치였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도 없었고 맺으려 하지 않았다. 대처에게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이용할 사람’과 ‘자신을 이용할 사람’ 두 종류밖에 없었다. 그런 인간관계에서 그녀의 유일한 탈출구는 가족밖에 없었다. 특히 대처 일생에 있어 아버지, 남편, 아들 세 남자는 중요했다. 특히 남편 데니스 대처와 아들 마크는 스트레스 많은 정치 세계에서 쓰러지지 않고 그녀를 버티게 만든 용도가 다른 두 개의 기둥이었다. 데니스는 ‘바위(rock)처럼’ 그녀가 기대게 해 주었고, 마크는 자신이 사랑을 줌으로써 긴장을 풀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대처는 자서전에서 ‘데니스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11년 동안의 총리직을 도저히 수행할 수 없었다’ ‘데니스의 기막히게 예리한 충고는 큰 도움이 되었고 그 충고를 나 말고는 아무도 밖에서 모르게 했다. 내가 힘들어서 아주 바보스러운 짓을 생각할 때 그와 한참 얘기하고 나면 내가 제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다’고 했다. 데니스는 대처의 총리 재임 11년간 한 번도 기자들과 인터뷰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인과 결혼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충성이라는 아주 작은 것밖에 없었다’고 아주 겸손하게 얘기했다.

데니스는 철저한 ‘대처주의자’였다. 성공한 기업가였으면서도 자신의 타고난 좋은 자질을 영국 최초의 여자 총리가 되는 부인을 위해 숨기고 희생했다. 1990년 대처가 사임하고 한 달 뒤 데니스는 2차대전 참전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데니스에게 주어진 작위는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으로 1964년 이후 왕족이 아닌 경우로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대처는 자작부인으로 불리게 됐다. 그리고 2년 뒤 대처 역시 하원에서 은퇴하면서 자신의 공적으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부부가 각자 힘으로 작위를 받은 아주 드문 경우다.

대처와 남편 데니스의 관계는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 사이와도 비교한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재위를 누린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 공을 보내고 상심한 나머지 거의 10년간을 외부와 단절하고 살았다.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나 사진은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다. 정상의 여인이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특별난 일은 아니다. 엘리자베스 2세도 자신의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남편 필립 공이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한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5살 연상인 필립 공이 먼저 죽으면 아주 큰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게 중평이다.

실제 대처도 데니스가 죽고 나서 심각한 충격을 받아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했다. 1990년 총리 자리를 내놓고 왕성한 활동을 하던 대처는 2003년 남편이 사망하자 건강이 급작스럽게 나빠져 이후 10년간 제대로 회복을 하지 못하다 죽었다. 버팀목이 사라지자 거목도 같이 쓰러져버렸다.

데니스에 비해 아들 마크는 대처의 속을 새카맣게 태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하라사막의 ‘죽음의 자동차 경기’에 참가해 어머니의 속을 태웠고, 아프리카 국가 쿠데타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기도 했다. 대처가 ‘데니스가 살아 있지 않아서 저런 모습을 안 보게 돼 다행이다’고 할 정도였다. 마크는 쿠데타 사건에 연루됐다가 석방된 후 가족이 살고 있는 미국행 비자가 거절돼 어머니 집에서 살기도 했는데, 대처는 아들이 먹고살지 못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2002년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마크를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남과 함께 ‘최악의 아들’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고를 치고 다녀도 마크에 대한 대처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마크 대처의 두 번째 부인은 영국 상류층 집안 출신 사라 제인 러셀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 귀족들의 전형적인 사업인 부동산 개발 및 임대업으로 돈을 번 거부다. 그녀는 한국과의 인연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로더미어 3세 자작부인으로 알려진 재일동포 출신 이정선씨의 며느리와 자매 간이다. 이정선씨는 런던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가수 조용필씨를 소록도에 초대해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무료 공연을 열어 한국에도 알려졌다.

대처의 마지막 몇 년은 일반인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 돈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데니스가 살아 있을 때부터 돈 걱정을 많이 했다. 마지막까지 살던, 버킹엄궁에서 멀지 않은 체스터스퀘어의 집도 장기 임대 집이었다. 은퇴 시점에는 돈도 많았고 수입도 많았지만 나가는 돈이 워낙 많다 보니 감당이 안 됐다. 특히 대처가 아프고부터는 외부 활동을 못해 강연 수입도 줄어들어 24시간 보살피는 간병인 월급 주기도 힘들어했다. 정말 불쌍한 사실은 말년에 대처가 귀가 어두웠는데도 불구하고 보청기도 사용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고통을 당했다는 점이다. 말년의 대처는 보청기 없이도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남의 입술을 읽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인’이 불쌍하게도 눈치 보는 아이처럼 생존법을 터득한 것이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던 대처는 동물을 싫어하던 남편이 죽고 나자 개를 키웠다. 대처는 ‘마빈’이라고 이름 붙인 개를 어디건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했다 돌아온 후로는 자기 집에 개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2005년 당시 총리 토니 블레어와 여왕까지 참석한 80세 생일 파티가 집에서 멀지 않은 오리엔탈 만다린호텔에서 열렸을 때 대처는 주어진 연설을 기가 막히게 했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볼 때 대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 듯했다고 한다. 당시 여왕이 대처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뒷모습을 카메라가 잡았는데, 나란히 손을 꼭 잡고 걷는 두 거인의 다정한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이 사진 이후 두 사람 사이가 거북했다는 말은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다.

퇴임 후 거창하게 시작됐던 대처재단마저도 이젠 사람들에게서 잊혀졌고, 현재는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거의 활동이 중단됐다. 대처의 사망이 전해진 후 그녀의 체스터스퀘어 집 앞에는 총을 든 경관도 볼 수 없었고 불만 환하게 켜져 있었다. 사람의 출입은커녕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 집 앞에 그녀의 안식을 비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 몇 개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화환에 꽂힌 ‘철의 여인! 평화 속에 안식을(Iron lady! Rest in peace!)’이라는 문구는 영국 신문에 실린 사진 속 문구인 ‘철의 여인? 평화 속에 녹슬어라(Iron Lady? Rust in peace!)’는 낙서와 대비되며 만감이 교차했다. 대처는 정말 이렇게 ‘사랑과 증오는 받았어도 무시는 당하지 않은(loved, loathed but never ignored)’ 주인공으로 인생의 막을 내렸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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