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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닝가 10번지 안으로 들어가다
코리안위클리  2013/05/22, 12:32:10   
▲ 매주 목요일 국무회의가 열리는 캐비닛 룸.

청교도 정신 듬뿍 담긴 절제의 극치… 공식과 비공식이 묘하게 섞인 건물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인가 보다. 지난 1월 말 평창에서 열렸던 지적장애인을 위한 스페셜올림픽 참가 영국팀 통역 자원봉사를 한 덕에 런던 다우닝가 10번지(10 Downing Street) 영국 총리 관저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솔직히 말하건대 말이 좋아 봉사지 사실 해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더 많았던 축복의 경험이었는데 말로만 듣던 다우닝가를 다녀오는 행운의 기회가 덤으로 따라왔으니 요즘 말로 대박이다.

다우닝가는 정말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다. 다우닝가는 현재 총리가 사무실로 쓰고 있는 건물인 데다 워낙 집이 좁아 일반인을 위한 투어 코스가 없다. 차라리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는 버킹엄궁전은 여왕이 휴가 간 8~9월 두 달간 일반에 유료로 공개되지만 다우닝가 10번지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 정말 업무 아니면 특별한 초대를 받아 가는 것 말고는 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런 연유로 다우닝가 방문 기회를 영국인들조차 ‘필생의 투어(Tour of Once in a Life Time)’라고 부른다.

필자 일행이 초대를 받은 날은 그 전 주말 대처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나 장례식 준비로 바쁠 때였다. 그래서 혹시 초대가 취소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했다. 다행히 1시간에 걸친 방문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의전실 직원이 나와서 정문에서부터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영국 어디를 가도 사전에 여권번호 같은 인적 사항을 신고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는데 총리 관저 방문을 앞두고는 수주 전에 여권번호, 주소를 제출했다. 이런 자료를 받아 신원조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다우닝가 10번지 앞을 지나면서 수도 없이 보았던 삼엄한 보안철책 안을 조금은 긴장한 마음으로 들어섰다. 운전면허와 명단 확인, 공항 소지품 검사대만큼 엄한 검색 절차를 거쳐 유명한 검은 벽돌집 앞에 섰다. 1980년대 중반 국교도 없던 당시, 상사 주재원 신분으로 소련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처음 섰을 때와 같은 정도의 감동이 일었다. 도저히 와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곳에 섰을 때 느끼는 기분은 30년 전의 감동 못지않았다.

관저는 런던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별다른 외부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의 18세기 조지안 타운하우스이다. 화려한 디자인과 다양한 장식의 19세기 빅토리아 건물과는 판연히 다르다. 영국을 휩쓸고 있던 청교도 정신이 듬뿍 담긴 듯한 절제의 극치를 이룬 건물 형식이다. 외관으로는 도저히 일국의 총리 관저라고 볼 수 없다. 원래 일반인의 집으로 지어진 건물을 관저로 쓰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330년 전 영국 역사에서 유일한 공화정을 이끌었던 올리버 크롬웰의 스파이로 불린 조지 다우닝이라는 사람이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지은, 거의 집장사 집 같은 건물이 현재의 총리 관저다. 이 건물은 1732년 조지 2세 국왕이 초대 총리이자 재무상이었던 로버트 월폴에게 하사하면서 총리 관저로 쓰이게 됐다.

관저를 다녀온 방문기에 보면 집 안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었다고 한 사람이 많은데 필자의 첫인상은 그 반대였다. ‘정말 좁기는 좁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조금 큰 크기의 일반인 집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대저택의 기본인 높은 천장도 그냥 가정집과 비슷한 수준이고 거실도 일반 여염집보다 작은 아담한 크기였다. 보통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라고 사진에 나오는 검은 3층 건물 중 현관 바로 위 2·3층이 총리와 가족이 사는 공간인데, 현관의 크기로 짐작해 아무리 커도 165㎡(약 50평) 아파트를 넘지 않는 크기일 것 같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는 10번지 거주 공간이 너무 좁아 바로 붙어 있는 옆집인 11번지 재무장관 관사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재무장관과 집을 바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족이 많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다우닝가 사진을 보면 10번지 왼쪽 건물이 11번지이며, 그 다음 붉은 벽돌 건물이 12번지 하원 원내총무 관사이다. 서열로는 분명 부총리나 외무장관이 재무장관보다 앞서는데도 다음 총리 후보 1순위인 재무장관이 총리 옆집에 산다. 그러고 보면 토니 블레어(3남1녀 중 막내), 고든 브라운(2남 모두)을 비롯해 캐머런 현 총리(2남2녀 중 막내)까지 최근 총리 3대가 다우닝가에서 재직할 때 자식을 보았다.

다우닝가 10번지 현관으로 들어가 4~5m 길이의 복도를 지나면 총리 집무실이 있는 5층 건물로 연결된다. 10번지 뒤에 있던 두 집을 합치고 증축해서 만든 건물로, 크고 작은 방 100여개에서 20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영국 정치의 심장부이다.
복도를 지나 총리 집무실 건물로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돌면 유명한 ‘총리들의 계단’이 나온다. 총리가 실제 근무하는 2층으로 올라가는 이 계단 왼쪽 벽에는 역대 총리들의 서명이 밑에 들어간 A4 크기의 흑백 판화 초상화와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이 나오기 전 총리의 얼굴은 판화로 만들어진 초상화에 담겨 있고 그 이후는 흑백사진들이다. 이색적인 것은 컬러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흑백사진을 찍어 걸었다는 점이다. 계단 가장 높은 곳에 고든 브라운 직전 총리 사진이 붙어 있다. 바로 밑에는 토니 블레어와 존 메이저 총리 사진이 아래 위로 나란히 걸려 있다. 만일 현재의 캐머런 총리가 물러나면 그의 초상화가 가장 높은 곳을 혼자 차지하고 브라운 총리부터 그 전 총리들의 사진은 차례로 하나씩 밀려 내려간다. 전임 총리들의 수가 늘어나면 조금씩 자리를 좁혀서 단다. 일국의 총리 사진들이 좁은 계단 벽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모습은 앙증스럽다 못해 귀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영국 첫 총리 로버트 월폴(1730년)부터 고든 브라운 총리(2010년)까지 280년 동안 거쳐간 58명의 총리 얼굴이 다닥다닥 걸려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서 첫 번째 방문한 방이 모두의 관심이었던 캐비닛 룸(Cabinet Room)이다. 영국 내각이 매주 목요일 국무회의를 여는 곳이다. 방 중간에 긴 회의용 탁자가 놓여 있을 뿐 별다른 장식도 없는 아주 사무적인 분위기의 방이다. 캐비닛 룸에 들어서면 작은 크기에 놀란다. 영화나 드라마, 특히 영국 최고의 정치 드라마인 ‘예스 프라임미니스터’에서 보던 방보다 훨씬 작아 보인다. 길이 12m, 폭이 5.7m에 불과해 계산해 보면 68.4㎡(20.7평)에 불과하다. 탁자 외에 거창한 가구는 없고 ‘총리 책장(Prime Minister’s Library)’이라고 불리는 책장 두 개만 놓여 있다. 책장은 전통적으로 퇴임하는 내각 각료들이 총리에게 기증하는 책으로 채워진다. 물러가는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에 ‘내가 주는 이 책 보고 공부 좀 하라’는 뜻으로 주기 시작한 것이 전통으로 굳어졌다는 말이 있다.

회의용 탁자는 보통 ‘보트’ 혹은 ‘영국 관’ 형태라고 불리는데, 중간이 튀어 나오고 양쪽 끝이 좁아지는 모양이어서 중간에 앉은 총리가 굳이 몸을 앞으로 빼지 않더라도 양쪽 끝의 사람들이 다 보이게 설계되어 있다. 회의용 탁자는 1950년대에 바뀌었지만 탁자 앞에 놓인 참나무 의자들은 윌리엄 글래드스톤 총리(1868년) 때부터 쓰던 것이라고 한다. 거의 140년이 넘은 물건들이다. 영국 내각은 21명에서 23명의 월급받는 장관을 둘 수 있는데, 현재는 총리를 비롯해 23명이 정식 내각 구성원이라 23개의 의자가 탁자를 둘러싸고 있다. 총리가 앉는 의자는 크기는 똑같은데 양쪽 팔걸이가 달려 있다. 총리 의자는 항상 반 정도 뒤로 물러나 있다. “워낙 방이 좁아 의자와 의자 사이가 넓지 않기 때문에 총리가 먼저 들어가 앉기 쉽게 빼놓는다”는 게 안내인의 말이었다.

회의용 탁자 가장 끝이 아니라 중간에 총리가 앉는 것도 이채롭다. 실제 국무회의를 하는 사진을 보면 각료들이 서로 딱 붙어 앉아 어깨가 거의 닿을 정도이다. 그래서 권위를 가진 엄숙한 회의라기보다 격식 없이 머리를 맞대고 동아리 모임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원래 내각의 서열에 따라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다고 하나 많은 경우 이를 무시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다른 일이 있어 불참하는 각료 자리는 총리 가까이에 모여 앉기 위해 비워 놓지 않고 누군가 당겨서 앉게 되는데, 그 각료가 회의 중간에 참석하더라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지 않고 끝의 빈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는 전통에 따라 서열과는 관계 없이 내각 재직 기간이 긴 각료에게 신임 각료가 총리와 가까운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올해 초 엘리자베스 여왕이 역사상 처음 참석한 내각회의 때는 어떤 각료가 어느 자리에 앉는지를 표시한 종이 팻말이 놓여 있기도 했지만 자신들끼리 모이는 회의 때는 자리 표지가 없다.
다우닝가를 방문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캐비닛 룸의 각료들 의자에 방문객이 앉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안내직원이 앉아 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총리 자리에 앉아 보았다. 가문의 영광이다.

총리 관저에서 가장 인간적인 방이 화이트 룸(White Room)이다. 고상한 거실 같은 차분한 분위기다. 벽난로 앞에 크림색 천으로 된 안락의자가 비치되어 있고 벽난로 양쪽에는 영국의 대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 한 폭의 가격이 약 2000만파운드이니 이 방은 최소한 700억원짜리다. 영국 총리가 외국 수반을 만나 여유롭게 차를 마시면서 여담을 나누는 곳이다. 캐머런 총리는 이곳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고, 마거릿 대처 전 총리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이 방에서 만났다. 필자도 오바마와 레이건이 앉았던 그 자리에 당연히 앉아 보았다.

다우닝가에 가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총리 관저에 총리 사무실이 없고 책상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가 총리 사무실이다’라고 특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새로 취임한 총리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을 보면 그곳이 총리실이 되는 식이다. 그러나 총리 책상이 없다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개인 소지품과 서류를 넣어 둘 수 있는 서랍 달린 개인 책상까지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집무 공간 바로 옆에 거주 공간이 있으니 집무 공간에 굳이 개인 소유물을 둘 이유도 없다. 영국 총리가 만지는 모든 서류는 공적인 것이니 개인 서랍에 따로 보관할 일도 없다.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하면 위층 개인 서재에 올라가면 된다. 별다른 집무실이 없다는 데는 총리가 방에만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지 말라는 뜻도 깃들어 있는 듯하다.

영국 국회는 상시 국회라서 총리는 국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굳이 관저에 사무실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아무 사무실에나 들어가 앉아서 서류를 보고 결재를 하면 된다. 총리가 앉아서 일을 보면 그곳이 바로 총리 집무실이 된다. 대처 전 총리는 버킹엄궁과 세인트 제임스 파크가 보이는 전망 좋은 스터디룸에서 일을 보았다. 지금 그 방 벽난로 위에는 대처 총리의 유화 초상화가 걸려 있다. 2009년 11월 직접 개봉한 자신의 초상화이다. 이 방에서 많은 서류를 검토하고 결재했다고 한다. 또 이 방에서 1982년 1만3000㎞ 떨어진 포클랜드섬으로 항공모함을 보내는 결단을 내렸다. 안내인 말로는 이 방 이름이 곧 ‘대처 룸’으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했다.

총리 관저는 세 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식과 비공식이 묘하게 섞인 건물’이라는 느낌을 준다. 총리의 집무실, 총리 가족의 가정, 총리가 내빈을 접대하는 영빈관의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집치고는 정말 작다. 총리 관저에서 20년을 산 윌리엄 피트 전 총리는 이 건물에 대해 ‘초라하고 군색하다(shabby and destitute)’고 혹평까지 했다. 사실 화이트 홀 스트리트 좌우에 총리 관저와 나란히 이어져 있는 국방성, 외무성, 재무성 같은 건물들은 외관과 내부 모두 총리 관저에 비해 화려하고 웅장하다.
비좁긴 하지만 총리 관저가 비루할 만큼 초라하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실내 장식을 보면 초라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수준이다. ‘정말 있을 만큼만 있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정확한 중용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기준이다.

영국 총리 관저가 이렇게 군색한 이유를 영국인 특유의 합리주의나 절약 혹은 전통 중시로만 보면 너무 쉬운 해석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고 봐야 한다. 영국은 입헌 왕정국가이다. 그래서 국가수반은 왕이고 총리는 행정수반이다. 하지만 이건 현대에 들어와서의 얘기고 역사적으로 보면 왕정국가의 집사장(執事長)이 바로 총리의 위상이다. 왕의 살림살이나 돌보던 집사장, 특히 돈을 만지는 이가 사는 집이 크고 화려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랫사람으로서 맡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만 충분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다우닝가 대문에 아직도 붙어 있는 ‘재무대신(First Lord of Treasury)’이 영국 총리의 원래 직책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총리 관저가 평범해야 할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국민에게 총리도 자신들이 사는 집과 다를 바 없는 집에서 산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영국 총리는 다우닝가 10번지 대문 앞에 섰을 때 가장 친근하게 비쳐진다. 평범한 여염집 대문 같은 데서 관저를 방문한 보통사람들과 사진을 찍거나 격의 없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영국 국민은 친근감을 느낀다. 동네 아저씨가 이웃집 사람과 골목에 서서 환담을 나누는 모습은 영국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렇게 총리가 ‘보통사람’이라는 연출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사람들의 집 같은 관저가 반드시 필요하다.

총리 관저가 군색해진 또 다른 이유로 영국 총리의 독특한 위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에서는 총선에서 한 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순간 그 당의 대표가 총리로 취임한다. 선거일, 과반 의석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관저 앞에 대기하고 있던 야당 그림자 각료들이 정문으로 밀고 들어오면 현직 총리는 관저에서 일단 떠나야 한다. 다음 날 와서 개인 물건을 찾아가더라도 이날은 일단 관저를 떠나야 한다. 물론 총리 식구들은 이삿짐 정리를 위해 더 머물러야겠지만 그들 역시 아무리 길어도 하루이틀 사이에는 관저를 비워줘야 한다. 토니 블레어 노동당 대표에게 패한 보수당 존 메이저 전 총리의 부인 노르마는 이것을 “아주 비인간적인 전통(inhuman tradition)이고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아무리 전통적인 제도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선거에 졌다고 바로 살던 집을 비워 줘야 하는가라는 불만이었다.

에드워드 히스(1970~1974년 재임) 총리의 경우를 보면 이런 비판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예상 밖으로 선거에 패한 그는 거의 관저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당시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관저 밖 길거리 공중전화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룻밤을 재워 달라고 부탁한 후 택시를 타고 친구 집에 갔다는 얘기가 회자된다. 이미 선거에 졌기 때문에 총리 관저 전화를 쓰면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고 현직이 아니기 때문에 전용차를 이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히스 전 총리는 독신이었기 때문에 런던에 집도 없어 당장 잘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노르마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다. 영국 총리는 국민이 투표로 선출하는 자리가 아니어서 절대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총선에서 지지 않더라도 대표 자리를 빼앗기면 즉시 비워 줘야 하는 곳이 총리 관저이다.

영국 총리의 위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First among equal’이다. 같은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의 대표라는 말이다. 총리라고 결코 우위에 있지 않고 단지 내각을 대표하는 자리라는 표현이다. 국회의원 누구라도 당내 의원 총회를 거쳐 당수로 선출되면 국민의 승인 없이 총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총리나 총리 가족은 관저를 언제든지 비워줄 준비를 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그런 소모품 같은 총리가 사는 집인데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철학이 배어 나온다. 참 무서운 제도이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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