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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90 우리 아이가 자꾸 불안해 해요
코리안위클리  2017/11/29, 06:24:34   
▲ 부모들은 자식이 수월하게 적응 잘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씩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동들이 타고 태어난 기질에 얼마나 맞춰서 양육을 해주느냐다.

영국에서 소아 정신과 컨설턴트로 일을 하면 위와 같은 호소를 하는 부모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드물다. 대개의 경우는 불안을 콘트롤하지 못해서 자해를 하거나 외부 활동을 전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 정도까지 이르면 약물 사용이라든지 강제 입원을 위한 정신과 평가를 위해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경우가 많고 어린 나이에 불안만을 호소하는 경우는 대개 학교 카운셀러를 만나서 상담을 하거나 그냥 나이가 들면 괜찮겠지 하고 지켜보자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초등학교 정도의 연령의 아동이 불안을 호소한다고 해서 선뜻 약물사용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의 경우는 심리치료쪽으로 권하는 것이 영국의 가이드 라인이다.
작금의 영국에 있어서 심리치료의 대세는 아마도 인지행동 치료(CBT)라고 하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이 인지 행동 치료는 탄탄한 임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반인도 쉽게 원리를 이해할 수 있고 치료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는 전체적인 치료 기간이 짧아서 비용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이기 때문에 NHS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심리 치료이다. 특히 불안이나 우울 장애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서 이제는 제법 보호자가 미리 알고 인지행동 치료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렇게 아동이 불안을 호소해서 고민을 제법 한 부모같으면 이런 저런 책 한두권은 읽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한 집에서 나름대로는 인지 행동 치료 비슷한(?) 것을 이미 시도해 본 적이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보면 예제나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엄마나 아빠가 가정에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소개되어 있다. 결국 자녀가 불안하다고 해서 정신과 의사한테 까지 온다는 것은 무언가 부모가 고민이 있다는 것이고 자신들이 해결을 하려고 나름대로 애썼는데도 안되었기 때문에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에게 찾아 오기 전까지의 배경상황에 대해서 나름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10년 전에 한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찾아온 젊은 부부인데 6살 아들이 영화에서 무서운 괴물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화장실도 혼자 안가려고 하고 밤에도 혼자서 자는 것을 너무 무서워 해서 부모에게 자꾸 오는 문제로 필자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분들은 제가 영국에서 트레이닝을 받아서 무언가 아주 효과적인 인지행동 치료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였고 자기들은 책을 보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았는데도 안되니까 제가 직접 환아를 진찰해 보고 치료를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가만히 얘기를 들어 보니까 아동이 불안해 할 때 엄마랑 아빠랑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서 어떻게 이런 의견 차이를 좁히냐고 물어 보니까 그 분들이 이런 논의가 부부사이의 갈등으로 튈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냥 묻어 버리고 지내고 있었고 서로가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그것과 더불어서 알아낸 사실은 아동이 태어났을 때 엄마가 휴직을 했는데 일년 후 직장에 복귀하는데 젖이 안떼어져서 엄마와 아동이 너무 고생을 했고 아빠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 머리로는 ‘그랬었나?’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힘든 감정을 회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당시 그 부부는 환아인 첫째애가 예상보다 빨리 임신이 되어 태어나는 바람에 엄마가 육아에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고 경제적으로 당시에 산 아파트 값을 빨리 갚아야 했기 때문에 밤에도 일하기가 일쑤였다. 당연히 육아는 아빠와 엄마가 번갈아 가면서 했는데 서로가 바빴기 때문에 당시에 유아였던 환아는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더우기 분리불안이 심해 밤에도 혼자서는 잠을 잘 안자고 엄마가 떨어진다 싶으면 자꾸 일어나고 해서 엄마도 일하랴 애 재우랴 너무 힘든 나날들을 보냈던 것으로 보고를 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빠는 거기에 대해서 별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것은 아빠의 어렸을 때의 양육 환경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아빠는 다소 대가족에서 태어났는데 거의 자급자족식으로 부모가 밥 차려 놓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크는 스타일이었고 엄마의 손길을 찾는다든지 이런 것은 마치 하나의 ‘사치’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러한 대화를 하면서 생겨나는 것은 부부가 서로의 양육 스타일에 대해서 정말로 다르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고 이는 서로가 상대방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결국에는 부모가 아동을 데리고 와서 보았는데 워낙 수줍음을 많이 보이고 말도 엄마 아빠에게만 하고 필자에게는 모기같은 소리로 답을 해서 평가 면담 자체가 불안했었다. 부모들은 이런 광경에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고 자기 아들이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처음 새로운 장소에 가면 늘상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이야기 한다. 원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어도 이렇게 수줍은 모습으로 자기를 감추는 아동들도 있는데 이는 어쩌면 의사의 나쁜 버릇중의 하나로 항상 제일 나쁘고 위중한 병만을 생각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실제로는 부모들과 자세한 문진을 통해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서 배제하였지만 필자 나름대로는 왜 부모들이 좀 자식이 수월하게 적응 잘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씩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들의 바람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아동들이 타고 태어난 기질에 얼마나 부모들이 맞춰서 양육을 해주느냐다. 어린 시절에 자신한테 맞추어진 양육을 받고 자란 아동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이런 불안은 자동적으로 없어질 수도 있고 어쩌면 아주 다른 모습의 청소년으로 자랄 수도 있다. 부모가 자신들의 죄책감이나 불안 때문에 아동의 기질에 맞는 양육을 하기가 힘들어 질 때는 적절한 컨설테이션으로 부모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것이 양육이라 한다면 이러한 대화를 통한 시행착오가 오히려 ‘정답처럼 포장된 치료’보다도 더 효과적일 수가 있다. 하지만 부모들이 ‘우리한테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이 설혹 큰 문제가 아니라 늘상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면 ‘우리 때문이다’ 라고 하는 경우는 더 큰 문제일 수도 있긴 하지만.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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