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8만9747건…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부모의 이혼으로 어린 시절 불우하게 보낸 47세의 김모씨는 성인이 된 후에도 빚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오랜 기간 채권자들로부터 시달린 끝에 운영하던 사업체를 팔아 넘겨야 했다. 김씨는 ‘혹시 이름을 바꾸면 이 모든 불행이 끝날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얼마전 서울가정법원을 찾아 개명 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름 때문에 되는 일 없다는 사람들에 의한 개명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진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법원에 자신의 이름을 바꿔달라는 개명 허가를 신청하고 있다.
3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 1월부터 6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명 허가 신청 건수는 8만9747건에 달했다. 이는 매년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이자 지난해 같은 기간 7만3054건에 비해 22.8% 증가한 것이다. 2년 전인 2007년 6만2954건에 비해서는 무려 43%나 증가했다.
연간 개명 허가 신청 건수는 지난 2006년 10만9567건에서 2007년 12만4364건, 2008년 14만6773건으로 매년 1만~2만건씩 늘어나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올 한해도 상반기 추세대로라면 개명 허가 신청 건수는 18만명을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가정법원 가족관계등록과 한 관계자는 “방학시즌 들어 개명허가 신청건수가 7월 셋째주(12~17일) 164건, 넷째주(20~24일) 178건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방학기간 중 자녀들의 이름을 바꿔주려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나 개명 허가 신청 건수가 올 상반기 최고치를 기록한 데에는 최근 경기침체, 청년 실업 등 좋지 않은 경제 사정이 단단히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법원측은 보고 있다. 법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개명 허가 신청서 사유난에 ‘일이 잘 안풀려서’라고 적어오는 경우가 현저히 늘었다”면서 “이는 최근 불황과 자신의 이름을 연결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