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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103 의사 소통의 실패?
코리안위클리  2018/07/04, 05:33:29   

영국 NHS에서 의사로서 겪는 한 가지 고충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 환자를 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주 드물게 외국인 환자를 보았던 것에 반해서(1990년대) 영국에서는 특히 지역에 따라서는 거의 반수 넘는 환자들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환자나 보호자들을 만나야 될 수도 있다. 이는 특히 런던같이 외국인 분포가 높은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실제로 환자나 가족들을 도와야 하는 일선에 있는 임상가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통역을 쓴다 하더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한가지 사실은 이러한 의사 소통 장벽이 ‘영어’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영어만 도와주면 의사 소통이 잘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종종 이런 편견을 깨부시는 장면을 많이 맞닥뜨리게 된다. 즉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성장 환경이 영어권에서 자란 사람과는 많이 다를 수 있고 그들의 사고 구조가 서양사람처럼 합리적으로 만은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적으로 아주 다르고 이런 문화적 종교적 차이가 부모 자녀와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민자로서의 삶이란 자신의 모국에서 배운 가치관을 어떻게 새로운 환경에서 조화롭게 다시 살펴보고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하지만 여러가지 외부 그리고 내부요인에 따라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데 본인들의 성격 말고도 자녀들이 어떠한 만성적인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적응 과정이 심각한 변형을 겪을 수도 있다.
가족 면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일단 어머니들은 영어가 잘 안되고 특히 장애아동이 있는 경우는 아동을 전담하면서 키워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거의 24시간 매여 있다 시피 하기 때문에 사회 생활이 많이 축소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현지화가 진행이 더뎌 있고 다른 자녀들이 있다면 그 자녀들과의 정서적인 소통도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아버지들은 보통 영어를 좀 할 수 있기 때문에 컨설테이션에서 의료진과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이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들이다. 문제는 그 결과로 어머니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어 지는데 가족 당사자들은 워낙 이런 구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어머니들의 이러한 수동적인 태도를 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다른 자녀들이 성장한 경우에는 이 자녀들이 종종 통역 역할을 할 때가 많지만 대개 통역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들의 관점만을 피력하기 때문에 엄마들은 더욱 더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 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아니면 자신의 의견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자녀들이 성장한다는 것은 부모들에게 여러가지 도전을 던져 준다. 또한 얼마나 그 가정이 융통성이 있고 서로의 신뢰가 쌓여 있는지를 테스트하게 한다. 평상시 가족들 사이의 대화가 여러 레벨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서로에게 풀리지 않고 쌓인 앙금이 있다면 가족내에 변화가 생기거나 아픈 사람이 생긴다면 그 가족의 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종종 이러한 가족내의 갈등이나 문제가 청소년들에게 전가되어서 많은 비난이 문제를 일으키는 10대 자녀들에게 놓이게 되고 이는 더욱 더 자녀들이 빗나가게 되는 현상을 빚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가족 외의 다른 사람 예를 들어서 컨설턴트를 만난다는 것은 가족의 관점에서 보면 환영보다는 위협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종종 보게 되는 경우는 아들이 장애가 있었지만 초등학교까지는 잘 이끌어 왔는데 사춘기가 되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어떤 병이 생긴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오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 영어라는 큰 언어적 장벽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이런 가족과 치료적인 대화를 유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필자가 질문을 했는데 통역이 그 가족들 언어로 통역해서 질문을 해 주었지만 전혀 엉뚱한 대답만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통역에게 제대로 통역을 했는지를 몇 번이나 물어보았지만 통역사는 분명하게 통역을 했고 그렇지만 가족들이 질문에는 대답을 안하고 엉뚱하게 답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 필자에게 느껴지는 큰 깨달음은 ‘아, 지금까지 난 큰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 부모들과 그리고 자녀들과 의사 소통이 잘 되고 있었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깨달은 것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 아들이 너무나 소리를 지르고 가족들을 못살게 한다고 해서 투약도 하고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라는 반응이 생겨서 약을 중단했는데 이상하게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에서 더 이상 어떻게 대화를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필자가 의도한 것은 벌써 이런 적이 두 번이나 있었으니까 어떠한 원인이 있음에 틀림이 없고 그래서 어떠한 원인인지를 찾아서 다음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당사자 가족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이제는 나았으니까 괜찮고 그래서 별로 물어 볼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더 답답한 것은 내가 그 분들의 문화나 언어를 이해 못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분들이 필자랑 이런 대화를 더 이상 나누기 싫어하기 때문에 대화가 ‘안 통하는 척’ 하는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필자의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전체 가족들이 문화나 언어 장벽에 숨는 것처럼 느껴졌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 졌다. 이럴 때가 답답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는데 의사 소통 장애가 이제는 자폐아동인 아들 하고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가족이 의사 소통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만약에 다시 세번째 위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들이 크고 부모들이 더 이상 돌보기 힘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현재는 누나들이 아들을 잘 돌봐 주고 있고 그 딸들이 집을 나가고 나면 형들이 또 커서 돌볼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대답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부모들이 얼마나 장애가 있는 아들의 독립성을 키워 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완전한 독립성은 불가능 할 수도 있고 평생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아마 영국 부모들은 아들을 내보내는 것에 좀 더 익숙해져 있고 어느 정도 준비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이민 온 이 부모들은 영국사회의 시스템이 못 미더워서인지 아니면 인종차별을 두려워 해서 인지 아니면 신의 뜻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인지 여하튼 자신들이 스스로 아들의 평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너무나 강한 듯했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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