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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안주 ⓒ 주영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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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koli in Oxford English Dictionary
■ 정의 : A traditional Korean alcoholic drink, made from fermented rice. (쌀을 발효시켜 만든 한국의 전통주)
■ 용례 ① : While drinking Makgolli, you are not supposed to suck your beard.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쭉 빨지 말고)“The story of a yang ban.”, Korean Folklore & Classics. vol. 2, 1970, p.42.
■ 용례 ② : Domestic production [of wheat] is one-quarter the volume of imports and is used mainly for noodles and makkoli, the common alcoholic beverage. (밀의 국내 생산량은 수입량의 4분의 1 수준이며, 주로 국수나 서민의 술인 막걸리에 사용한다.) Bartz, Patricia M., South Korea, Oxford : Clarendon Press, 1972, p.73.
■ 용례 ③ : Mr Habib would drink makkoli..with Korean journalists. (하비브 씨는 한국 기자들과..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New York Times, 28 May 1981.
■ 용례 ④ : At the bar you can enjoy..an unfiltered Korean rice wine called makgeolli. (바에서는 막걸리라고 불리는 여과되지 않은 한국 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New York Magazine, 28 November 2011.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막걸리 정의
한국어사전에서는 막걸리를 “우리나라 고유한 술의 하나. 맑은 술을 떠내지 아니하고 그대로 걸러 짠 술로 빛깔이 흐리고 맛이 텁텁하다.”라고 정의해 놓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쌀을 발효시켜 만든 한국의 전통주”라는 정의와 달리 한국어사전에서는 재료와 제작 과정의 핵심인 발효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가장 종합적인 백과사전인 한국학중앙연구원 발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정의는 어떨까? 이 책의 막걸리 정의는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낸 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7498)이다. 하지만 독자 중에서 이와 같은 설명으로 막걸리를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청주가 무엇인지 모르면 앞의 정의를 제대로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나는 2021년 펴낸 《음식을 공부합니다》라는 책에서 ‘막걸리’라는 이름에 관해 정의했다. 막걸리는 “막 거른 술”을 가리킨다. 막걸리의 다른 이름은 ‘탁주(濁酒)’다. 술의 색이 맑지 않고 탁하다고 하여 붙여진 한자 이름이다. 탁주를 큰 대접에 붓는다고 ‘탁배기’라고도 부른다. 막걸리를 담근 후 술독에 ‘용수’라는 도구를 넣어두면 윗부분이 맑아진다. 용수는 가늘게 쪼갠 대나무, 싸리나무, 버드나무 가지, 칡덩굴의 속대, 짚 등으로 촘촘하게 엮어서 둥글고 깊은 원통형 바구니 모양으로 서로 엮어 만든 것이다. 용수를 박아 두면 윗부분에 맑은 색의 술이 떠 오른다. 이 술을 사람들은 ‘맑은 술’ 혹은 한자로 ‘청주(淸酒)’라고 부른다. 청주를 떠내고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붓고 막 걸러낸 술이 바로 막걸리다.
막걸리의 주재료는 멥쌀뿐만 아니라, 찹쌀, 보리, 밀, 좁쌀이라고 불리는 조, 생김새가 옥수수나무와 비슷한 수수, 심지어 메밀 등이다. 따라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에 나오는 “쌀을 발효”했다는 말은 찹쌀·멥쌀·보리·밀·조·수수·메밀을 발효한 술이라고 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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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주의 대표 술, 삼해주 ⓒ 주영하 |
전분 술에는 누룩이 있어야!
술은 당분이 변한 것이다. 만약 주재료 자체에 당분을 함유하고 있다면 술 재료로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꿀에 물을 섞어 발효시켜 만든 미드(mead), 포도 과실주인 와인(wine), 야자나무의 수액으로 만든 야자술, 용설란과 북아메리카의 백합목 용설란과의 상록관목인 유카(yucca)의 수액으로 만든 풀케(pulque), 말이나 낙타 따위의 젖으로 만든 유목사회의 쿠미스(kumys)와 아이락(airag) 등은 원료 자체에 당분을 포함하고 있는 ‘당분 술’이다.
하지만 ‘전분 술’에는 별도로 누룩을 마련해야 한다. 누룩은 곡물의 가루를 쳐내고 남은 속껍질인 ‘기울’을 반죽하여 공기 속의 좋은 곰팡이가 붙도록 하여 만든다. 누룩을 밥과 섞어 두면 가수분해가 일어난다. 여기에 물을 붓고 발효시키면 술이 만들어진다. 누룩을 누가 발명했는지를 두고,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논쟁이 심했다. 책마다 “의적(儀狄)이다”, “두강(杜康)이다”, “소강(小康)이다” 등의 주장이 나온다. 이 세 사람 중 누가 누룩의 발명자인지 지금도 확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초기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중국에서 누룩이 발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학자 대부분은 고대 중국의 누룩 제조법이 한반도로, 한반도에서 다시 일본열도로 전파되었다고 본다.
조선 시대 누룩으로 빚은 곡물 술은 제조법에 따라 단양주(單釀酒), 이양주(二釀酒), 삼양주(三釀酒)의 세 가지 술이 있었다. 단양주는 한 번만 발효시킨 술이다. 막걸리가 바로 단양주다. 막걸리의 맛은 누룩 맛이 나는 텁텁하면서 거친 맛이다. 이양주는 단양주를 빚어 며칠 발효시킨 다음 여기에 다시 곡물과 누룩, 물을 부은 술이다. 조선 시대 요리책에 나오는 맑은 술인 청주 대부분은 이양주다. 이양주는 진한 단맛이 특징이다. 이양주에 다시 곡물과 누룩, 물을 부어 발효시킨 술이 삼양주다. 삼양주의 제조법으로 빚은 술은 색이 매우 맑고 맛도 진하면서 달지 않고 깊은 향을 지니고 있다.
곡물과 누룩의 양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술이 바로 단양주인 막걸리다. 이에 비해 삼양주에 들어가는 곡물과 누룩의 양은 단양주의 두세 배에 가깝다. 불행하게도 20세기 중반까지도 막걸리나 청주나 소주의 주재료는 밥을 짓는 데 쓰는 멥쌀이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 많은 왕은 흉년이 들면 서울의 사대부 가정에나 고위급 관료에게 술을 담그지도 마시지도 말라는 ‘금주령(禁酒令)’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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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문집인《연암집(燕巖集)》(권8)《양반전》1쪽 (사진 왼쪽)과 3쪽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3쪽 왼쪽에서 두 번째 위의 다섯 글자가“ 음료무최수(飮醪毋嘬鬚)”이다. |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용례 ① 검토
사실 막걸리는 금주령의 대상이 아니었다. 막걸리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곡물의 양이 청주나 소주보다 훨씬 적었고, 심지어 막걸리는 끼니가 되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걸리를 두고, ‘농주’, 곧 ‘농민의 술’이라고도 불렀다. 20세기 식민지기에도 서울을 비롯한 남한의 중상류층 사람들은 청주를, 서민들은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이에 비해 북한 지역 사람들은 쌀 생산량이 적었던 탓에 수수나 조로 빚은 밑술을 증류한 소주를 많이 마셨다.
남한의 벼농사 지역 농민들은 물을 댄 논에 어린 벼를 심는 모내기, 한여름 한참 자라는 논에 숨어 피는 잡초를 제거하는 김매기, 그리고 가을의 수확과 같은 힘든 노동 때 막걸리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막걸리의 이런 맥락은 1939년 1월 5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민요당선작 황용남(黃龍南)의 ‘농군(農軍)의 노래’에 나온다. “좋구나! 우리는 이름이 농군, 맑은 술 독해서 흘려 돌겠네, 막걸리 순해서 마음이 곱소, 뚝배기 넘도록 따라나 보세, 어깨춤 나도록 마셔나 보세, 얼씨구! 우리는 이름이 농군”
큰 술잔에 가득 부어 마시다. 막걸리의 다른 이름은 대포다. 대포는 큰 잔을 가리키는 한자다. 그런데 큰 잔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다 보면 술이 입 주변으로 넘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막걸리 항목에 나오는 용례①은 양반 남성이 점잖게 막걸리를 마셔야 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이 용례는 조선 후기 명문장가였던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한문으로 쓴 소설 《양반전(兩班傳)》에 나온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돈을 꽤 모은 강원도 정선의 한 상인이 군수에게 돈을 주고 양반 신분을 얻는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양반의 고약한 행동 양태를 듣고 포기하는 일화다. 그중 용례①이 나오는 전후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돈을 만지지 말고, 쌀값을 묻지 말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밥을 먹을 때 맨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국을 먼저 훌쩍훌쩍 떠먹지 말고, 물을 후루룩 마시지 말고, 젓가락으로 방아를 찧지 말고, 생파를 먹지 말고,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쭉 빨지 말고, 담배를 피울 때 볼에 우물이 파이게 하지 말고” 사실 《양반전》의 원문에서 앞의 막걸리 관련 내용의 한문은 “음료무최수(飮醪毋嘬鬚)”이다. 여기에서 ‘료(醪)’는 막걸리의 또다른 한자 이름이다.
앞의 ‘농군의 노래’에 나오는 맑은 술, 곧 청주는 양반의 술이었다. 하지만 양반의 술 청주는 막걸리와 비교해 값이 비쌌다. 가령 1934년 경기도 문산 시내의 술도가에서 판 청주 한 말의 값은 5원인데 비해서 탁주 한 말의 값은 1원 80전밖에 하지 않았다. 양반도 돈이 없으면 막걸리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반임을 내세우는 표징이었던 긴 수염이 문제였다. 큰 잔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마시면서 수염에 묻은 막걸리를 쭉 빨면 양반이 될 수 없다는 경고가 옥스퍼드 영어사전 용례①의 《양반전》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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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M. 바츠의 South Korea 표지 |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용례 ② 검토
옥스퍼드 영어사전 막걸리 항목의 용례②는 1972년 영국에서 출판된 South Korea라는 책에 나온다. 이 책의 저자 패트리샤 M. 바츠(Patricia M. Bartz, 1921∼?)는 이 책의 1부 일반 지리에서 한국의 지리, 역사, 문화, 산업 등을, 2부 지역 지리에서 서울, 부산, 제주도에 이르는 지방을 소개하고 있다. 용례②의 “밀의 국내 생산량은 수입량의 4분의 1 수준이며, 주로 국수나 서민의 술인 막걸리에 사용한다.”라는 내용은 이 책이 집필된 1960년대 후반의 한국 막걸리 사정을 잘 보여준다.
식민지기, 조선총독부와 일본인 농장주들의 쌀 수탈은 극심했다. 쌀이 부족하여 막걸리를 제대로 빚을 수가 없었다. 이 문제는 해방 이후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10월 9일 어쩔 수 없이 ‘양곡관리법’이란 법률을 제정하여 쌀을 비롯한 곡물의 수급과 유통 가격을 관리하려 했다. 하지만 정부의 행정력이 약하여 ‘양곡관리법’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았다.
1962년 가을 벼농사가 큰 흉작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부는 이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려고 1963년 3월 1일부터 ‘탁주 제조자에 대한 원료 미곡의 사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정부의 이 조치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국 정부는 1965년 3월 규제를 약간 완화한 행정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의 인내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1966년 8월, 정부는 막걸리 제조에 멥쌀을 한 톨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령을 발포했다. 멥쌀 대신에 미국에서 공짜로 받은 밀을 제분한 밀가루로만 막걸리를 제조하도록 강제했다. 이때 ‘100% 밀막걸리’가 탄생했다.
밀막걸리의 탄생은 막걸리 제조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본래 전국의 막걸리 양조장에서는 스스로 제조한 재래식 누룩을 사용했다. 밀 막걸리를 만들어야 했던 1966년부터 일본의 누룩인 코우지(麴)와 비슷한 아스페르길루스균(Aspergillus shirousamii)을 사용하여 밀의 전분을 가수분해하여 당화시켰다. 그런데 막걸리 제조업자 대부분은 쌀막걸리와 달리 너무나 간단한 밀막걸리 제조법에 익숙해졌다. 쌀막걸리를 제조하는 데는 대략 120시간이 걸린 데 반해, 아스페르길루스균을 사용하여 밀막걸리를 만드는 데는 70시간이면 충분했다. 막걸리 양조업자들은 거의 공짜인 미국산 밀에 제조 시간도 단축되어 제조 원가가 엄청나게 낮아져서 이익도 많이 냈다.
또 밀막걸리에는 쌀막걸리에서 찾기 어려웠던 단맛이 났다. 막걸리 제조업자들은 이 단맛을 유지하려고 완전히 발효되지 않은 밀막걸리를 소매점에 팔았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완전히 발효되지 않은 상태였던 밀 막걸리가 유통 과정에서 발효되면서 예상치 않았던 탄산이 생겼다. 쌀막걸리의 텁텁한 맛에 익숙했던 막걸리 주당들은 탄산의 톡 쏘는 맛과 단맛이 강한 밀막걸리에 반해서 쌀막걸리를 바로 버렸다.
1975년 가을, 한국은 통일벼 재배를 통해서 역사상 최고의 쌀 수확량을 기록했다. 정부는 1977년 12월 15일, 막걸리 제조에 멥쌀을 넣지 못하도록 했던 행정조치를 폐지했다. 거의 10년 만에 쌀막걸리가 시중에 나왔다. 그런데 부활한 쌀막걸리에서 탄산의 톡 쏘는 맛이 없자, 주당들은 여기에 사이다를 섞어 그 맛을 재현했다. 요사이 한국에서 생산되는 쌀막걸리는 별도로 탄산을 넣어 주당들의 입맛을 따른다. 그래서 막걸리를 사서 아래에 가라앉은 찌꺼기를 없애려고 마구 흔든 후에 뚜껑을 열면 막걸리가 샴페인처럼 솟구친다. 심지어 막걸리 제조업자들은 찹쌀로 막걸리를 빚거나 감미료를 넣어 밀막걸리의 단맛을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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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72년 7월 17일자 3면에 실린 필립 하비브 대사 |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용례 ③+④ 검토
옥스퍼드 영어사전 막걸리 항목의 용례③과 ④는 미국의 뉴욕 타임즈와 뉴욕 매거진에 실린 기사다. 용례③에서 한국 기자들과 막걸리를 자주 마신 하비브 씨는 1971년 10월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필립 C. 하비브(Philip C. Habib, 1920∼1992)다. 《동아일보》 1972년 7월 17일자 3면 〈가교-주한공관 찾아서〉이란 기사에서 기자는 “이 박력에 찬 이 외교관은 한국과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인과 어울려 한국 속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적었다. 하비브는 인터뷰에서 “곧잘 한국인과 어울려 대폿집을 찾아들며 막걸리를 마셨지요.”라고 말했다. 이런 하비브의 막걸리 경험담이 1981년 뉴욕 타임즈에 실렸던 것이다. 하지만 하비브가 마신 막걸리는 밀로 만든 것이었다.
용례④는 미국의 레스토랑 평론가 아담 플랫(Adam Platt, 1958∼ )이 뉴욕 맨해튼의 ‘정식당’이란 한국 퓨전 레스토랑에 관해 쓴 글에 나온다. 아담이 쓴 ‘정식당’ 탐방기의 글 제목은 “Building a Better Bibimbap(더 나은 비빔밥 만들기)”다. 그는 ‘정식당’을 뉴욕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현대식 오트퀴진(haute cuisine) 한국레스토랑이라고 소개했다. 알다시피 오트퀴진은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개발된 최고급 요리의 형식이다. 아담이 정식당을 두고 오트퀴진 한식당이라고 한 이유는 “바(bar)에서 으깬 김으로 감싼 17달러짜리 칵테일과 청매실 같은 이국적인 재료를 섞은 막걸리라고 부르는 정제되지 않은 한국식 쌀 와인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농민의 술이었던 막걸리가 정식당이란 고급 한식 레스토랑에서 오트퀴진의 범주에 들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 막걸리를 오트퀴진으로 변신시키려면, 직접 술을 빚어야 한다. 맛있는 막걸리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값싼 대중적인 막걸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막걸리가 오트퀴진의 급수에 올라가려면, 한국산 멥쌀로 지은 고두밥에 밀이나 보리로 직접 만든 누룩과 샘물로 버무린 다음, 옹기로 만든 술독에 넣고 잘 발효시켜야 한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의 40∼50대 화이트칼라 중 막걸리 빚기에 몰두하다 양조장을 차린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크래프트 막걸리 중에는 500ml 알코올 도수 9%에 판매가가 한화로 2만 원에 가까운 것도 있다.
사실 지난 60여 년의 한국 역사에서 막걸리는 농민의 술에서 민주화운동의 술로 문화적 상징이 변해왔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들은 막걸리 대신에 희석식 소주를, 1990년대 이후 농민들은 막걸리 대신에 맥주를 마셨다. 한국 정부의 국가유산청에서는 2021년 국가무형유산으로 <막걸리 빚기>를 등재했다. 그만큼 재래식 막걸리 빚기가 어렵다는 증거다. 막걸리의 힘은 누룩에서 나온다. 하지만, 일본에서 수입한 누룩이 아닌 재래식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으면 제조할 때마다 막걸리의 맛이 약간씩 다르다. 맛이 달라도 좋다. 막걸리 빚으려면 누룩부터 직접 만들자. 그래야 발효 술 막걸리가 오트퀴진에 어울리는 고급 술로도 진화할 수 있다.
막걸리로 술떡을 만들자! 제주도 상외떡
■ 재료
밀가루 3kg, 막걸리 750ml, 설탕 4컵, 소금 1큰술
■ 요리법
① 그릇에 막걸리, 설탕, 소금을 잘 섞고 35℃가 되도록 중탕으로 데워 놓는다. 여기에 밀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따뜻한 방에서 6~8시간 발효시킨다.
② 눌렀을 때 탄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부풀어 오르면 밀대로 2cm 두께로 민 다음 칼로 썰어서 손으로 동글납작하게 모양을 만든다.
③ 다시 1시간 정도 부풀린 후 찜통에 면포를 깔고 찐다.
출처 :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제주 전통음식》, 제주특별자치도, 2007.
글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음식을 문화와 역사학, 사회과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문화인류학박사)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다. 2024년 9월부터 1년간 SOAS 한국학센터 방문학자로 런던에 체류 중이다.
저서 :
《음식 인문학: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2011),《식탁 위의 한국사: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2013, 베트남·일본·태국에서 번역출판),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2018, 타이완에서 번역출판), 《조선의 미식가들》(2019), 《백년식사: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2020), 《음식을 공부합니다》(2021),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2022, 중국에서 번역출판), 《분단 이전 북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일제강점기 북한 음식》(2023), 《글로벌푸드 한국사》(2023), 《국수: 사람의 이동이 만들어 낸 오딧세이》(2025)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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