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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이 가까이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지난 겨울은 유난히 음습하고 답답하고 지루했기에 올 봄은 어느 해보다 밝고 찬란하고 아름다울 것으로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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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눈이 내렸다. 영국 남동부 지역에는 눈이 자주 내리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쪽 지방에는 매년 많은 눈이 내리지만 런던에서 눈을 보기는 쉽지 않다. 아마 4~5년에 한번 꼴로 드물게 내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들 들떠서 난리이다. 나도 조금은 흥분된 마음으로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 집밖의 설경을 바쁘게 담아보았다. 집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뒤뜰에는 눈발이 그치기 무섭게 한 가족이 달려 나와서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많은 양의 눈이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눈사람이 뭉쳐질 정도로 내린 것이 참 다행스럽다. 휴대폰으로 눈이 내리는 장면과 나뭇가지에 눈이 쌓인 설경을 몇 장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냈다. 그리곤 푼수처럼 여길까봐 런던에서 이 눈이 얼마나 귀한 눈인지 설명하는 문자를 이어서 실어 보냈다.
눈이 그친 뒤 산책길에 나섰다. 평상시 늘 다니는 카니자로 공원(Cannizaro Park)으로 들어가서 앞뜰을 지나 뒤뜰로 들어섰다. 숲길을 따라 걷다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려는데 무언가 눈에 띈다. 눈 덮인 잔디밭 가운데에서 푸른 식물의 새 움이 돋아나고 있었다. 곁에는 벌써 꽃봉오리들이 맺힌 작은 보라색 꽃들이 보인다. 모퉁이 길가 늘어진 나뭇가지에는 며칠 전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꽃잎들이 노랗게 돋아나 있다. 아직 1월이고 겨울인데,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저렇게 쌓여 있는데, 봄은 이미 겨울을 뚫고 솟아오르고 있다. 놀라서 달력을 열어보니 입춘이 겨우 일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이른 봄에 햄프튼 코트 궁전(Hampton Court Palace)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궁전의 뒤뜰을 가득 덮고 있는 수선화 꽃밭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던지!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 세계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감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다시 찾았더니 그 자리에 수선화 꽃밭은 간 곳이 없고 그 대신 튤립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곧 수선화의 계절이 찾아올 것이다. 우수 경칩이 지나면 수선화가 피었다 지고, 그 자리에 튤립이 피고 질 것이다. 그 다음엔 장미가 피어나는 그야말로 완연한 봄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햇살은 언제나 찬란하다.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불안의 구름을 걷어 버리고
그 은총의 찬란한 빛 가운데로 나아가자.
햇살처럼 찬란하게 새 봄을 맞이하자.
영국에서 첫봄을 맞던 생각이 난다. 한국에 비해 겨울이 길고 햇빛조차 잘 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해가 나서 비칠 때, 그 햇살은 눈부시게 밝고 아름다웠다. 런던 시내에서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공간에 있었는데도 빌딩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매우 찬란했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그것도 영어로 뱉어 낼 만큼 런던의 봄은 밝고 아름답고 찬란했다. “Oh! Thank God! I love this country. I wanna live here.” 춥고 긴 겨울을 보낸 사람만이 감동과 감탄과 감사함으로 새봄을 맞이할 수 있다. 그 빛이 실제로는 스페인 남부 지방의 햇살만 못하더라도 찬란하게 느끼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갑고 음습하고 을씨년스러웠던 런던의 지난겨울도 이제 따뜻한 시선으로 뒤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샤케드(Shaqed) 꽃이 생각난다. 샤케드 꽃은 겨울에 피는 꽃이다. 우리말 번역에 살구나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아몬드 과에 속하는 나무라고 한다. 샤케드는 겨울이 채 지나가기 전 봄을 알리듯 피어나는 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샤케드는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봄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려 주는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다. 더구나 “샤케드”와 같은 어근을 가진 동사는 지켜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추운 겨울과 같은 시대를 보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새봄과 같은 하나님의 은총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하나님은 외세의 압제로 고통 가운데 살아야했던 남 왕국 말기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 아몬드 나무의 가지를 환상으로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 나라를 지켜 주실 것을 예언하게 하셨다.
이제 2월이다. 사랑하는 우리 조국 땅에도 매화꽃이 피어날 때가 되었다. 온 땅이 하얀 눈으로 덮힌 가운데 팝콘을 터뜨리듯 꽃을 피우되, 가지에는 하얀 눈을 그대로 얹고 있는 시골 마을 매화나무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아몬드 꽃은 아주 빠르게 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침에 꽃봉오리가 맺혔으면 저녁이 오기 전에 만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코로나-19로 인해 답답한 일상을 뚫고 속히 아주 속히 임하실 것을 기대해본다.
재영한인교회연합회 회장
런던행복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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