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잠은 오지 않고 이런저런 고민에 뒤척이다가 갑갑한 마음도 달랠 겸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뒤뜰로 나갔습니다. 그때가 새벽 두시쯤 되었는데, 온 집안이 조용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 세상이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밤하늘에 영롱한 별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릴 때 시골에서 보았던 마치 고운 금가루를 예쁘게 뿌려 놓은 것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별은 별이었습니다.
가을날, 밤하늘에 희미하나마 별이 반짝거리고 그 별빛으로 인해 우리집 안마당을 경건하게 꾸며놓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환해지면서 온갖 복잡한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도 별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한 폭의 낙원이었습니다.
비 개인 밤하늘에 헤아릴 수 없이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작은 욕심으로 사나웠던 하루해가 부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누워 별을 헤아리겠다던 당신의 바램이 영혼을 헤아리겠다는 마음인줄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아,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당신의 헤아림을 듣는 나는 슬플 수는 있지만 그 슬픔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습니다.
(나의 시 ‘비 개인 밤하늘에’)
둘.
이번 여름의 일입니다. 가장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절친한 지인의 배려로 경기도 포천 어느 호숫가에 있는 별장에서 하루를 쉬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지인의 어린 딸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별똥별 본적이 있어요?”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 나는 어려서 시골 외갓집에 자주 갔었는데, 그때는 하늘이 맑고 공기가 오염되지 않아서, 별들이 참 잘 보였단다. 또 그때는 가로등이나 전등이 없어서, 밤이 되면 불빛 없는 캄캄한 밤이 되었기 때문에 별이 잘 보였지. 그때 별똥별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단다. 하늘 중간에서 별 하나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별이 확 밝아지고는 그 별이 없어졌지. 그게 별똥별이야.”
“그리고 별똥별을 보는 순간 별똥별이 지기 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열심히 소원을 빌기도 했지”
내 이야기는 길어졌지만 아이는 별로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한번도 별똥별을 보지 못했으니까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물론 컴퓨터와 TV, 게임기 등을 비롯한 문명의 이기들을 마음껏 누리면서 사는 것은 좋겠지만, 자연이 주는 맛과 멋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로 살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데, 자연을 모른 채 인공의 섬에서만 살고 있고 있는 것입니다.
늦은 밤 공원에서
별을 본다
별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 진다
별은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반짝반짝 하는 거겠지만
지구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푸근해 진다
누군가
열심히 살고 있는 작은 사람 같아서
가족의 식탁에 깨끗이 씻은 식기를 늘어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찌개를
가운데 내려놓는 아내 같아서
별은 다정하다.
(나의 시 ‘별은 다정하다’)
셋.
이 땅의 젊은 청춘이 대개 그러했듯이 나 또한 스무 살 언저리에 윤동주 시인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을날이 되면,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조용히 읖조리곤 했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 시인의 시 ‘별을 헤는 밤’)
윤동주 시인은 그의 서시(序詩)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윤동주 시인처럼 살 수만 있다면, 이 땅은 더욱 더 행복해질 것이고, 또 지극히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나는 그대의 두 눈에 담긴 별이 되고 싶습니다
별이 되어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대의 길을 밝혀 주고 싶습니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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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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