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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칼럼니스트우이혁 정신과 전문의 글짜크기  | 
청소년과 정신건강 94 어머니의 정신 건강
코리안위클리  2018/02/07, 07:53:01   
▲ 아기는 엄마에게서 생존에 필요한 음식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엄마의 우울증으로 인해서 험한 세상에 일찍 노출되게 됨으로서 많은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불안 반응이 과하거나 길어지게 되면 어린 나이에 정서적 문제로 굳어 버리게 된다.

요즘 영국 왕립 정신과 협회에서 거국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주산기 정신과(Perinatal Psychiatry)라고 불리는 영역이다. 이 번역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어쩌면 아직도 생소한 분야일 수도 있고 영국에서도 정신과 협회에서 인정한 6개의 전문 인정의 제도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영국에서 이런 생소한 영역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쏟는 이유는 생후 초기에 유아들이 엄마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인생 전반에 걸친 정신 건강에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넓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적으로 주산기에 있는 환자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발생하면 여러가지 곤란한 점들이 많다. 산모가 임신으로 인해서 임신 중 아니면 분만 후에 우울증이나 정신증이 생겼을 때 당장 보면 챙겨야 할 환자는 두 명이다. 엄마도 그렇고 아기도 문제다. 저명한 정신분석가인 Winnicott가 이야기 했듯이 엄마 없는 아기는 없다. 아기를 이야기 할 때는 항상 엄마하고 같이 있는 아기를 이야기 하기 때문이0다.
하지만 환자를 치료하거나 돌보는 입장에서는 아동과 엄마를 같이 볼만한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는 엄마는 성인 서비스, 아기는 아동 서비스 이렇게 어느 한 쪽만을 떨어 뜨려 놓고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말도 안되는 검사나 치료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다 보면 자꾸 ‘엄마가 문제다’ 혹은 ‘아기가 문제다’ 등등 편가르기가 되고 그러다 보면 적절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된다.
필자가 처음 아동이나 청소년 환자를 진찰할 때 어머니에게 산후 우울증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 보는 것이 생각 보다 싶지 않다. 환자는 아동인데 어머니에게 왜 우울증이 있었는지를 물어 보는지 불쾌해 하는 분도 있고 여러 정황상 질문 자체가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혼 후에 자식을 데리고 살고 있으면서 남편과 양육권에 대한 법정 다툼이 있었거나 아직도 진행 될 때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아주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 하나 하는 것도 살펴서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들이 예전의 상처를 들추거나 피해의식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다.
대개의 경우 엄마가 우울증이 있었던 경우에는 자신이 제대로 자식을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많다. 그런 이유로 잊어 버리고 있거나 덮어 두려고 하고 있는데 의사가 바로 물어 보면 당황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 어쩌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아도 우회적으로 체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아기를 낳고 나서 몸조리는 어떻게 했는냐, 누가 도와 주었느냐, 집안 사정은 어떠했느냐 등등 전후 사정을 듣다 보면 아기를 낳은 산모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사람인 경우에는 어느 정도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고 실제로 임상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이렇게 잘 설명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 당시에 대해서 기억이 거의 없다든지 아니면 아주 단편적인 기억에만 집착하고 있는 경우에는 산모의 마음상태는커녕 산모 마음속 안에 막 분만한 아기는 도대체 어디쯤에 있었는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장애가 있는 아기의 경우에는 엄마들이 더욱 이런 정신적 문제에 취약할 가능성이 더욱 더 많다. 어렵게 낳은 자식이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든가 아니면 건강상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많이 들락날락 한다든가 하면 엄마의 마음은 위축되고 힘들어 진다. 아기들이 엄마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에 산모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제는 상당히 많은 연구들이 산모들의 우울증이 얼마나 아동의 정신 건강에 위협이 되는지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협회에서 이런 캠페인을 한다는 것 또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사회적으로 산모에게 기대하는 것은 임신하고 있을 때처럼 자신들이 낳은 아기를 잘 문제 없이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산모들 자신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잘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산모들에게는 팽배해져 있다.
또한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따른 자신감의 감퇴 등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사랑을 더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주기도 한다. 거기다가 아기까지 잘 달래지지 않고 잠도 잘 자지 못하고 먹거나 소화시키는 것도 어려워하는 아기라면 산모들이 우울증에 빠질 확률은 더욱 더 높아지고 아기와의 관계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이제 촛점을 아기로 옮겨 오면 아기는 엄마에게서 생존에 필요한 음식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엄마의 우울증으로 인해서 험한 세상에 일찍 노출되게 됨으로서 많은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경우 아기는 감정을 차단시켜서 두려움을 없앨 수도 있고 또한 엄마가 조금만 안보여도 극렬한 불안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생존에 필요한 적응 과정이지만 이런 패턴이 과하거나 길어지게 되면 어린 나이에 정서적 문제로 굳어 버리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꼭 지금 태어난 아기 뿐만이 아니라 이미 제법 자란 자식들에게도 문제가 된다. 형이나 누나 오빠 같은 경우 동생이 태어 났을 때 엄마가 우울증에 빠져서 자신들에게 중요한 학령기 시기에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 형제들 또한 정서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만약에 아빠가 없거나 있어도 이런 자녀들의 양육에 신경 쓰지 못한다면 집안 전체 상황이 휘청거릴 만큼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경우 아동에게 병을 진단한다는 것은 엄마나 아빠가 아니고 아동만이 문제가 있다고 강조하게 되어 버리는 맹점이 있다. 유아가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엄청난 떼를 써야 하는데 익숙해졌다든가 아니면 어떻게 과제를 정리하고 차근차근 해 나가야 되는 지를 가르쳐 주는 엄마가 없다고 했을 때 병원에 가서 ‘주의 집중 장애’라고 진단만 받고 투약만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가만히 속 사정을 보면 엄마는 계속 해서 아동을 충동적으로 야단만 친다든지 아동이 필요할 때는 관심을 쏟아 주지 못한다든지 하는 양상이 자주 발견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주의 집중 장애의 경우에 부모 교육을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부모들이 이런 제안에 잘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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