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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101 엄마는 어디 갔을까?
코리안위클리  2018/06/06, 06:09:42   
▲ 아동이 올바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삼시세끼만 잘 챙겨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안아주고 사랑을 먹여주는 것이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영국에서 청소년들의 일탈 행동에 관해서 정신의학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40년대부터라고 보여진다. 그 선발 주자로서 아동과 엄마와의 이별에 관심을 많이 둔 John Bowlby(정신분석가로 훈련을 받았지만 후에 자신은 애착이론이라는 정신분석과는 다소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다)와 소아과 의사로서 정신분석가로서 활동하던 Donald Winnicott를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 다 공통적으로 청소년 시기의 일탈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서 인생 초기에 있었던 엄마와의 이별이나 상실(나중에는 엄마가 우울증 같은 정서 장애 때문에 감정적으로 아기에게 반응을 해줄 수 없는 감정적 상실을 포함했다)을 꼽았으며 아동의 인격발달에 엄마와의 좋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의견을 같이했다. 또한 영국에서 그 당시 열심히 논의됐던 evacuation programme (2차세계대전 당시 자녀들을 런던에서 지방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아동의 정신발달에 어떠한 해를 줄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 당시에 또 영향을 미쳤던 영상은 2살된 아동이 병원에 장기 입원해 있으면서 처음엔 엄마를 그리워하고 울다가 나중에는 엄마가 와도 전혀 감정적인 동요나 변화가 없는 감정적 결여 상태를 보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인데 인생의 초기 시절에 엄마와의 안정적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었다. 이런 영국의 전통은 그 이후에 사회사업가들이 위탁 가정에 있는 아동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이혼과정에서 일어나는 부모와의 접촉, 그리고 입양된 아동의 생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시켜 줄 수 있을까 등등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이혼 가정이 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자녀 양육에 대한 문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할머니들의 역할이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한국에서는 양육권을 아버지가 가져가고 자녀들의 양육은 아버지의 어머니 즉 할머니가 담당한다. 이런 과정에서 원래부터 자녀양육에 관심이 많이 없었던 아버지는 특히 할머니에게 양육을 일임하고 자신은 총각시절때의 자유 분방함?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농담조로 이야기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이혼의 원인중의 하나로서 아버지 즉 남편의 부재나 무관심이라고 한다면 이혼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고 사실 더욱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식의 양육을 떠안게 되고 이혼의 과정에서 아버지의 어머니인 할머니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자녀들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부모 당사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드물지 않게 보는 현상은 부모들도 그렇지만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아동들이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접촉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 즉 먹고 사는 것이라고 보는 분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물론 우리가 기본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의식주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아동이 올바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삼시세끼만 잘 챙겨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안아주고 사랑을 먹여주는 것이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이 최근 반세기에 걸친 연구에서 여러 번 확인 되었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어버린 아동이 집단 시설에서 학교도 다니고 양육을 받는데 일반 가정에서 부모의 정상적인 양육을 받는 아동들과 틀린 점들이 몇 가지 눈에 띄는데 과거부터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감정적인 반응이 결여된 ‘냉동된 아동’(Frozen children)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정적인 교류가 활발하지 않고 주변에 사람들에 대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보고이다. 마치 이런 아동 청소년들은 부모와 장기간 떨어져 있을 때 부모가 다시 돌아와도 아무런 감정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동 처럼 주변과의 정서적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아동들이 청소년 시기가 되면 자주 보이는 행동이 반항행동, 폭행, 잔인한 양상을 보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이나 후회가 별로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미디어에 학폭을 일으키는 학생이나 SNS에 문제를 양산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형량을 늘려야 한다’, ‘본보기를 세워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지만 처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Bowlby는 예방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부모, 특히 엄마와 아동들의 초기 애착을 강조하면서 인생의 초반부에 좋은 양육을 제공하는 것이 나중에 자녀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일탈 행동을 덜 보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물론 이런 주장은 나중에 60년대와 70년대에 불기 시작하는 페미니즘과 맞물려서 여성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Winnicott는 이런 일탈행동들을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라고 보았고 이런 청소년들의 정서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 특징적이다.
소아 청소년 정신과 의사로서 이런 청소년들을 진료할 때의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청소년들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알아내서 ‘진단’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다. 즉 공감능력이 떨어지는데 이것이 과연 자폐증상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반사회적 장애’ 같이 있는 것인지 무엇인가 당사자들 마음속에 어떤 암적인 존재가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고 그것을 진단하고 또한 ‘도려내는 시술’을 요구한다. 사람들에게 ‘이 청소년은 초기의 부모와의 상실 아니면 관계의 왜곡이 있어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면 아주 구시대적이고 부모들을 비난하는 실력 없는 의사라고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그만하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이미 일어났던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인지 하고 있는 것은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서 시스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 당사자들에만 자꾸 초점을 맞추는 것은 너무 ‘치료’에만 집중할 우려가 있다. 어머니와 떨어져서 병원에만 몇 달 있어서 이제는 아무와도 감정적 접촉을 하지 않는 아동을 생각해 보라. 그래서 혼자 있을 때마다 벽에 머리를 박고 주변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아동에게 어떤 치료를 해줄 것인가? 이런 아동에게 놀이치료, 음악치료, 아니면 모래치료, 미술치료 등을 시킨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가? 혹시나 병원에서 소위 ‘병주고 약주는’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전 가는 학교마다 사고를 쳐서 쫓겨나는 14세 남학생을 보게 되었다. 필자와 앉아서 면담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이 있을 수가 없다. 집밖에서 약을 팔고 선생님 앞에서 책상을 걷어차면서 욕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믿기 어렵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아버지와 평생을 살아왔는데 이 아버지는 필자가 몇 달 동안 면담하는데도 계속 퇴학당하고 이제는 약에까지 손을 댄다고 필자에 대한 원망이 보통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이 학생 어떻게 해 달라고 필자에게 야단이다. 소아정신과 컨설턴트로서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이것은 필자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금 이 학생은 병원에서 어떤 시술을 통해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묵혀 왔던 ‘관계’가 악화돼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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