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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에든버러 공연 축제 다이어리 ‘부츠를 채우라니?’
코리안위클리  2023/08/25, 21:00:53   
2023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 공식 포스터 및 프로그램북 디자인 ⓒ 프린지 사무국
영국엔 ‘필 유어 부츠Fill your boots’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로마 제국의 군단병들이 칼리게라고 불리는 장화를 신었는데 이와 유사하게 영국 탄광 노동자들도 장화 바닥에 머리가 둥근 못을 박은 호브네일 부츠를 신었다. 노동 현장에서 바닥이 빨리 닳아 없어지는 것을 막았다고 하지만 바닥이 둥근 철심으로 인해 자갈길에서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퇴근 후 미끄러지지 않도록 장화를 들고 다녔다 하는데 대신 한 가족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석탄을 장화에 채울 수 있었다 한다. 여기에서 유래해 ‘필 유어 부츠’라는 표현은 ‘원하는 만큼 다 가져가라’라는 뜻이 된다. 지금은 주식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이 가끔 이보다 더 저렴한 매수 기회는 없을 것이라며 고객들에게 부츠를 채우라고 간청하기도 하는 흔한 표현이 되었는데, 올 76주년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서 난데없이 이 말이 등장했다. 올 여름 에든버러를 방문한 예술가들과 프린지 관객들에게 갑자기 ‘부츠 채우기’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8월에는 72개 국가에서 3,535개의 공연이 등록되어 한 달 동안 52,000회 이상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코미디가 전체 프로그램의 38%를 차지했고, 연극 25%, 음악 13%, 가족극, 카바레, 서커스, 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준비되어 26일까지 아침부터 새벽까지 촘촘히 짜여져 있었다. 축제 공식 사무국인 ‘프린지 소사이어티’에서는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미디어 오피스를 통해 700명 이상의 평론가, 편집자, 저널리스트 및 방송인들이 인증했으며, 이들은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45개국에서 약 950명의 예술 업계 전문가가 인증을 받았으며, 프린지 공연 후 투어링 계약 또는 TV, 해외 공연권 및 영화 각색 기회를 가져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프린지 소사이어티는 프린지에 참가하는 아티스트들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며,우리 팀은 아티스트 허브에 8월 내내 상주하며 현장의 도움과 조언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아티스트들의 미래 커리어를 위한 야망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 프로그램이 진행 중입니다. 프린지 관객 여러분, 이미 잘 알려진 유명 공연자부터 수천 명의 신진 예술가까지 다양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는 이 멋진 축제에서 마음껏 뛰어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가서 부츠를 가득 채우세요!”
- 프린지 축제 조직위원장 쇼나 매카시 Shona McCarthy -

올해 에든버러 프린지의 슬로건은 ‘부츠 채우기’다. 예상밖에 길었던 팬데믹 기간동안 도시 곳곳에 빈 적자를 단기간에 축제로 메우려고 포장한 것일까? 예년과 비교하면 한국에서도 국립 창극단을 포함해 유난히 많은 공연 예술 단체와 행정가, 그리고 프로듀서들이 에든버러를 찾았다. 한영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려는 양국 문화 행정가들의 노력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2023 프린지 축제를 체험하고 평가하기도 전에 이미 영국의 언론에서는 질보다는 양을 강조하는 ‘무한 뷔페’를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한다. 물론 축제의 규모를 두고 매년 나오는 매우 철지난 논쟁이다. 하지만 특히 올해는 전반적으로 이런 입장에 설득이 되는 다른 차원의 기조가 있다. 축제가 자본주의 정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프린지 사무국에서 던지는 부츠 채우기 충동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이 중요한 공연축제를 계속 응원하고, 더 많은 티켓을 예매하고, 부츠를 채워주세요.” 라고 말하는 조직위원장의 고상한 말을 영국의 대표적인 공연 평론가 린가드너는 “트럭 뒤에서 떨어진 물건을 팔려고 애쓰는 시장 상인처럼 들리더라도 신경 쓰지 마세요. 예매, 예매, 예매는 우리의 의무입니다”라고 쉽게 해석했다.
축제의 성공 여부를 3,500여개의 참가작과 1주차가 지나면서 전체 티켓 판매량 100만장이 넘었다는 것(물론 중요한 요인이지만)만으로 측정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예술가들과 관객들이 지불한 엄청난 경비는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다.
지난주엔 축제 참여에 경비를 마련하게 위해 성노동을 했었다는 남성 예술가가 나타나 언론을 시끄럽게 했다. 필자를 포함해 항공료와 숙박비 때문에 참가자들 모두는 겁을 먹었고, 축제를 위해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고갈시키면 당연 조직위가 우려하는 매출이 줄어들 위험이 있다.
프린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지 주민들도 많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여름철 세계 공연 축제의 중심이 되는 에든버러는 이들의 도시이자 축제이며 조직위에게는 모두의 소비를 조장하는 매우 유용한 촉매이기 때문이다. 물론 매출이 없으면 예술가들, 그리고 프린지 사무국부터 공연장, 주요 공연장 임대주인 대학에 이르기까지 프린지 인프라 전체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여름엔 프로듀서부터 공연장 운영자,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프린지가 정말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려를 가장한 불평일까? 그 불평은 마치 한때 프린지의 황금기가 있었던 것처럼 향수에 젖어 있는 경우일까?
위기감은 관객이 축제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 액세스 정책’으로 축제의 규모가 더 커질 수만 있다면 더욱 좋다(또는 관망)는 사무국의 축제 철학에 있다. 지난 6월 ‘페스티벌 에든버러(도시 축제 전체를 총괄하는 기관)’에서의 발표처럼 월드컵과 동일한 수준의 관람객 숫자와 8,000개의 일자리 창출 및 축제의 경제적 여파(4억 9,200만 파운드 = 8,310억원)를 이야기 할 때마다 성공한 축제의 수혜자에 예술가와 프린지 축제 기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경우 빠져 있다는 점이 위기감을 대변할 뿐이다.
딱히 프린지 기간 축제 사무국에서 항공과 숙박료를 통제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부츠를 채우라고 차려 놓은 뷔페 테이블에서 늘 목마르고 배고픈 예술가들은 어떻게 팔을 뻗어 무엇을 잡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해를 거듭해 가면서 축제 성공에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2023년 여름 축제 현장에서 만난 한국의 프로듀서들과 행정가들의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오늘도 영국 현장의 목소리는 언제나 프린지의 위기를 논의하고 있다. ‘고도’는 정말 오는 것일까?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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