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아파트에서 모자 눌러 쓴 40대 괴한 발·주먹으로 마구 폭행
경찰청이 ‘어린이 납치·성폭행 종합 치안대책’을 발표한 지난달 26일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에서 열 살짜리 여자 초등생 폭행·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신고를 받은 경찰은 피해 어린이인 A(10·여)양의 부모와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나선 뒤에도 단순 폭행 사건으로 몰고갔다. A양이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사건 발생 다음날 CCTV에 담긴 범인의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사건 발생 사흘 뒤에야 CCTV 화면을 확보했다.
◇잔인하게 폭행=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S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에 나타난 범행은 충격적이었다. 모자를 눌러 쓴 40대 괴한은 26일 오후 3시40분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탄 열 살밖에 안 된 A양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주먹과 발로 A양을 때리고 밟았다. 흉기를 들이대기도 했다.
A양이 엘리베이터에서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소리치자 머리채를 잡아 강제로 끌어냈다. 신발 한 짝이 벗겨질 정도였다. A양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온몸에 멍이 드는 상처를 입었다. 1층에 사는 여대생 C씨(20·여)가 3층으로 올라가는 인기척을 느끼자 그제서야 괴한은 폭행을 멈추고 달아났다.
A양의 어머니 B씨(40)는 30일 당시 상황과 관련,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괴한이 쫓아오는 것을 못 봤다. 손목을 잡고 큰 커터칼을 들이대면서 조용히 따라오라고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애가 살려달라고 울부짖자 발로 때리고 머리를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라고 했다”며 “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1층에 사는 여대생이 쫓아올라오자 범인이 도망쳤다”고 말했다.
◇뒤늦은 ‘호들갑 수사’=신고를 받은 일산경찰서 산하 대화지구대는 범행이 잔인하게 이뤄졌는데도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단순 폭행사건으로 몰아간 것이다. 대화지구대는 지난달 27일 이 사건을 단순 폭행사건이라고 일산경찰서에 보고한 뒤 “지문 확인이 어렵다”는 내용을 전화로 부모에게 알렸다. 단순 폭행사건으로 보고하는 바람에 사건 발생 사흘 뒤인 29일나 돼서야 CCTV 화면을 확보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일산경찰서 관계자는 “대화지구대에서 올라온 사건 서류의 죄명만 보고 판단하다보니 긴급을 요하는 강력사건으로 분류하고 대처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중앙일보
범인 잡았지만… 아직도 불안하다
A양(10·초등3년)을 폭행하고 납치하려 한 용의자 이씨가 서울 대치동 사우나에서 검거됐다. 주정식 일산경찰서 형사과장은 “성추행이나 성폭행하려고 했었느냐는 질문에 이씨가 그렇다고 인정했다”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성 범죄를 저지를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미성년자 상습강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2년전 출소했다. 경찰은 이씨가 추가 범행을 했는지 조사 중이다.
용의자는 검거됐지만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이 사건 발생 후 나흘 동안 허송세월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서야 부랴부랴 총력 수사에 돌입하는 등 허술한 치안 관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지 6시간 만에 이씨를 검거했다.
일선 초등학교에는 아이들을 데려가려는 학부모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 납치미수범 이씨 “성폭행 하려 대화역 인근 배회”
한편 납치미수범 이모(41)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 26일 성폭행을 하기 위해 대화역에서 내린 뒤, 고양시 대화동 S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며 범행대상을 물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정식 일산경찰서 형사과장은 1일 오후 브리핑에서 “이 씨가 성폭력 목적으로 대화역에서 하차했다고 진술했다”며 “CCTV 자료상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장면 등 애초 진술과 다른 사실이 나오자 자백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김사웅 수사과장은 같은날 오후 브리핑에서 “아파트 단지 안에 설치된 CCTV 화면을 분석한 결과 이씨는 범행 40분 전인 오후 3시4분부터 4개 동에서 계단을 오르 내리고 주변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장면이 나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