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신규채용 16%감소… ‘묵은 새내기’늘어
“취직된 게 다행이지만 이젠 잡일 넘기고싶어”
“저도 이젠 후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2007년 12월 공기업에 입사한 김재경(가명·30)씨는 회사에서 2년째 막내다. 지난해 신규 채용이 없어 후배는 구경도 못했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오래 하니 익숙해지긴 했지만, 외부 전화·은행 업무·복사·회의실 뒷설거지 등 온갖 ‘잡일’이 모두 그의 차지다.
막내 몫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야근 때면 선배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일일이 확인하고 가장 무난한 메뉴를 골라 음식점에 주문해야 한다. 선배들 컴퓨터의 해결사 노릇도 그의 몫이다. 선배들은 작은 오류만 생겨도 그를 호출한다. 왠지 컴퓨터를 잘 다룰 것이란 지레짐작 때문이다. 김씨는 “불황에 취직한 게 어디냐는 생각에 열심히 한 게 벌써 2년째”라며 “내 신세가 좀 갑갑하다”고 말했다.
불경기로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으면서 사무실마다 ‘묵은 새내기’가 늘고 있다. 막내 생활이 2년을 넘긴 경우도 있지만, 올해 신규 채용이 없어 2년째로 접어드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6월 금융기관에 입사한 이민주(가명·25)씨가 그런 경우다. 회사는 올해 6월 신입사원 말고 인턴사원만 뽑았다. 그 덕분에 이씨는 아직도 매일 막내 몫의 ‘깔아주는 업무’를 한다.
이를테면 막내는 아침마다 회사 건물 현관에서 사무실까지 조간신문을 가져오는데, 팀장이 보는 신문은 따로 기억해뒀다 팀장 책상 위에 올려놔야 한다. 아침마다 신문을 가지러 내려가면 같은 건물의 다른 회사 막내들과 마주치기 마련인데, 간혹 다른 회사의 새 얼굴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이씨는 “인턴이 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 ‘손님’ 같은 존재”라며 “이젠 정말 막내 업무를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싶다”고 했다.
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4월 발표한 ‘2009 신규 인력 채용 동태 및 전망조사’를 보면, 올해 신규 인력 채용 예상 규모는 전년 대비 16.3%나 줄었다. 신규 채용을 하더라도 인턴 채용 비중이 22.4%(경력직 제외)에 이른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 탓에 한국철도공사 등 공공기관들은 신규 채용을 못하고 있다. 황선길 잡코리아 본부장은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려, 2007~2008년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막내 생활을 길게 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직장 생활 1년차를 넘어서면 자기 나름대로 생각도 갖게 되고 직업적인 욕심도 날 텐데 여전히 잡무라면 좌절감이 없지 않을 것”이라며 “선배들의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